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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 홍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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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동네에 현수막을 걸었다. ‘주민 안전 위협하는 개발사업 반대한다.’ 다음날 그것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내 존재가 내쳐진 듯 모멸감을 느꼈다. 지나가는 주민들을 쳐다보며 범인을 상상하는 일은 괴로웠다. 다시 걸 땐 ‘주민자치 회의의 승인을 얻은 것’이라는 쪽지를 매달았다. 며칠 뒤 주민자치 위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항의가 들어오니 쪽지를 떼 달라 했다. 이것은 공무원이나 건설사를 상대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싸움임을 그때 알았다. 적은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바로 ‘이웃’. 이 싸움의 특징은 ‘내상’을 입는다는 것이다. 그때 호성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녀의 이웃들에 의해 이리저리 내쳐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은 아들의 유골이 아닌가.

문성준 감독의 다큐 <기억의 손길>에서 보았다. 안산 화랑유원지에 세월호 추모공원 조성을 반대하는 아파트 재건축 조합의 ‘이웃’들이 유가족에게 고성을 지르는 장면. ‘피로감, 혐오시설, 주민 재산권 침해’ 같은 현기증 나는 말들이 빗발치는데도 마치 입이 없는 존재들처럼 묵묵히 견디는 사람들 중에 호성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발 벗고 뛰면 그거라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거라도’라는 말에 가슴이 시렸다. 나는 그녀가 아들에게 못 해준 것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2014년 11월, 호성 어머니를 만났었다. 어머니는 처음 보는 내 앞에서 여러 번 통곡했다. 4월15일, 여행 떠나는 아들에게 준 용돈 3만원이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아, 돈을 뽑아 학교로 찾아간 그녀에게 아들이 도리어 2만원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5월1일, 시신의 인상착의 정보가 잘못 기재되는 바람에 보름 만에 물 밖으로 나온 아들을 곧바로 안아주지 못해서, 죽은 아들이 하루 동안 또 엄마를 찾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아들이 좋은 곳에 간다는 말을 듣고 아들의 물건을 모아 태워주었는데, 몇 개 없는 신발을 호성이가 다 신고 가버려서 태울 신발이 없었다는 말을 할 때. 어머니는 먼 길 떠나는 아들에게 신발 하나 사주지 못한 자신을 쥐어뜯으며 울었다.

진상규명을 위해 울며불며 전국을 돌아다니던 어머니는 작년부터 추모공원 조성을 위해 안산 시민들을 만나러 다닌다. 국회로, 청와대로 쫓아다닐 땐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를 수 있었지만 안산에서는 그럴 수 없다.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므로. ‘진도로 떠나라’는 막말에도, ‘보상금 얼마 받았느냐’는 비아냥에도 속시원히 대거리할 수 없다. 대신 떡을 해서 주민들을 찾아간다. 할머니들의 어깨도 주물러드리고, “정치하는 놈들 다 똑같다” 욕하면서도 귀찮은 일에는 휘말려 들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머리를 조아린다.

“혐오스럽지 않게 지을 거예요.” 자식의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는 어머니가 이렇게 말해야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3년 전 4월15일, 엄마에게 2만원을 주며 “나 수학여행 간다고 돈 많이 썼지? 엄마 맛있는 거 사먹어” 했던 그 예쁜 아들에게 혐오라니. 밖으로 표출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안으로 파고들어 어머니를 괴롭힐까 걱정이다. 이 기구한 시간은 언제쯤 끝날까. 6월 말 추모공원의 부지가 결정된다고 한다. 부디 안산의 이웃들이 별이 된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기를, 그리하여 어머니가 이제 그만 아이의 유골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제발 ‘그거라도’ 해줘서 어머니가 아주 조금이라도 편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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