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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모범생 수제자'는 어쩌다 테러범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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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드 2년 연속 수상한 과학 영재에서 구속자로]

과학고도 2년 만에 조기 졸업

대학원 4학기 땐 주요 저자로 SCI급 학술지에 논문 게재

- 논문 지도 중 질책 받았다고…

투명망토 연구하다 스승과 이견

"교수 기대 부응하려 압박받다 스트레스 쌓여 범행 저지른 듯"

조선일보

‘연세대 사제 폭탄 사건’의 피의자인 이 학교 대학원생 김모(25)씨가 15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김씨는 이날 오후 구속됐다. /김지호 기자


연세대에서 발생한 '사제(私製) 폭탄 사건'의 피의자로 15일 구속된 김모(25· 기계공학과 대학원생)씨는 피해자 김모(47·기계공학과) 교수가 특별히 아끼던 제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와 함께 김씨의 논문 지도를 맡아온 홍익대 A교수는 본지에 "김씨는 교수가 시킨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해오는 완벽주의자 같은 학생이었다"며 "김 교수가 '성실하고 잘하는 학생'이라고 여러 번 칭찬한 수제자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런 김씨가 김 교수를 테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15일 "김씨가 김 교수의 심한 질책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중 지난달 말 논문 지도를 받다가 크게 꾸중을 듣자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밝혔다. A교수는 "김씨가 교수의 지시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성격이라 교수 앞에서는 말을 더듬기도 했다"며 "교수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 그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다 그런 일을 꾸민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탄탄대로 걷던 우등생… "그렇게 혼나본 적 없었을 것"

김씨는 중학교 때부터 우등생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중학교 3학년 시절엔 2006년 한국물리올림피아드 중등부에 출전해 동상을 받았다. 2007년 인천의 한 과학고에 입학한 뒤 고교 1학년 때도 한국물리올림피아드에서 장려상을 탔다. 고등학교 시절 김씨를 가르쳤던 김모 교사는 "선생님에게 반항 한 번 하지 않았고 매우 순종적이었다"고 말했다.

2년 만에 과학고를 조기 졸업한 김씨는 2009년 연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고, 2014년 학부 졸업 후 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에 입학했다.

이후 줄곧 지도교수인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일했다. 김씨는 4학기 때 이미 1저자로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연구실 동료 B씨는 "1년 휴학을 했지만 학부도 4년 만에 끝내고 바로 대학원을 갔으니 다른 학생들에 비해 학업 속도가 빨랐던 편"이라며 "연구도 무척 잘해서 늘 인정받았다"고 했다. B씨에 따르면 김 교수는 대학원생들과 함께한 회식 자리에서 "김○○(피의자)은 내가 연구자로서 인정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씨는 최근 김 교수의 주력 연구 분야인 '투명망토 개발'에 사용되는 메타물질(특별한 전기적 성질을 갖는 인공 물질) 관련 논문을 쓰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연구 결과 해석을 두고 이견을 보여 김 교수로부터 크게 질책을 받은 게 범행의 계기가 됐다. B씨는 "아마 김씨가 평생 심하게 질책을 받은 건 김 교수 밑에서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연구실 동료들에게 "대학원 생활이 힘들다"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아 힘들다"고 토로해왔다고 한다.

주변인들 "착하고 성실한 김씨가 그런 일을…"

김씨는 학부 시절 학내 동아리 회장을 맡을 정도로 활발했다고 한다. 김씨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했던 한 학생(26)은 "유난히 착실하고 순수한 친구였다"며 "그가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충격에 빠졌다"고 말했다. 김씨가 사는 하숙집 주인은 "착하고 예의가 발랐던 학생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대학원에 진학한 뒤로는 성격이 바뀌었다.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 주변에 "나는 김 교수를 만나고 성격이 바뀌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씨는 경찰에서 "김 교수에게 부상을 입히고 겁을 주고 싶어 폭발물을 교수 연구실 문 앞에 두었다"며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자백했다.

김씨와 함께 연구실에서 일했던 한 대학원 졸업생은 "어려운 점을 선배들이나 주변에 이야기하고 상의했더라면 극단적인 범행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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