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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송혁기의 책상물림]아름다움을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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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상한 일이다. 멀리서 찾는 이들이 몰릴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는데, 정작 그 근방에 사는 이들은 그런 풍경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왜 그럴까? 늘 권력과 이익을 다투는 자리에 갇혀 살다 보니 아름다움이 눈앞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슴을 쫓아가다 보면 주변의 산은 보이지 않고 황금을 움켜쥐려다 보면 옆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마음이 온통 어딘가에 쏠리면 다른 데에는 눈이 갈 겨를이 없는 법이다. 고려시대 문인 이제현의 설명이다.

아름다움이 지금 여기와는 아주 다르고 먼 어떤 곳에 있다는 생각은, 각박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때로 위안을 주기도 한다. 그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품고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라고 가르치려 들면서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을 무시하는 데에서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을 내기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의 일상 따위는 희생시켜도 좋다고 여기는 순간, 아름다움은 누군가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아름다움 자체도 마음이 쏠리게 만드는 무엇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제현의 지인 가운데 권세와 부를 누릴 만한 지위에 있는 이가 있었다. 그런데 외딴 산수 어딘가에 터를 잡고 근사한 누각을 지어 노니는 것을 고상하게 여기던 시절, 그는 도심 주변 민가 즐비한 연못가에 누각을 지었다. 오가는 사람이 왁자지껄 이어지는 곳이어서, 다들 거기 제법 널찍하고 호젓한 공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곳을 발견한 그는 주춧돌 없이 기둥을 세우고 기와 대신 띠 풀을 덮고는, 다듬지 않은 통나무로 서까래를 삼고, 벽은 도색 없이 그대로 두었다. 못에 핀 연꽃만이 누각을 감싸며 빛을 발한다.

잔잔한 물결 위로 낮게 퍼지는 물안개,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하는 푸른 산봉우리뿐 아니라, 이고 지고 타고 걸으며 오가는 이들, 뛰는 이, 쉬는 이, 부르고 돌아보는 이, 서서 이야기하는 이, 어른에게 달려가 인사하는 이들 역시 풍경의 일부다. 아무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즐기는, 별것 아닌 것들의 아름다움. 그것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회복하는 데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마음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 돌아보며, 잠시 멈춰 서서 하늘 한 번 바라보며.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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