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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알파고, 바둑 은퇴 선언…의료·과학으로 영역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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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가 지나치게 냉정해 그와 바둑을 두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현 '인간 바둑계 최고수'라는 커제 9단(20)이 27일 중국 우전(烏鎭) 인터넷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바둑의 미래 포럼' 알파고와의 세 번째 대국마저 209수 만에 백 불계패하고 나서 신음소리처럼 내뱉은 말이다. 커제는 대국 도중 제한 시간 1시간여를 남겨두고 돌연 자리를 벗어났다가 10여 분 만에 충혈된 눈으로 돌아왔다.

3전 전패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크게 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국 후에는 "전날 밤에 잠을 자지 못해 매우 긴장됐다. 줄곧 어떤 수를 써서 알파고에 대응해야 할지 생각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남겼다. "이번 인공지능(AI)과 치른 바둑은 그동안 인류가 뒀던 그 어느 대결보다 의미가 크다."

과연 알파고는 인간 바둑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건 절망인가, 희망인가.

한바탕 '인간 바둑계'를 흔들어 놓은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커제와 대국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바둑을 두지 않겠다고 깜짝 은퇴 선언을 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이 남긴 공과를 평가하느라 분주하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 대결을 펼치며 홀연히 등장한 알파고는 가히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신의 경지'에 가까운 바둑을 두면서 이세돌 9단과 5번기 중 단 한 번만 패했을 뿐, 연초 인터넷 대국 60판, 커제 9단과 3번기, 단체 상담기까지 합쳐 모두 68승1패를 기록했다. 지난해 1월 네이처 논문으로 정식 데뷔하기 전 판후이 2단에게 5전 전승을 거둔 것까지 합하면 73승1패다.

'무적' 알파고는 분명 바둑의 신비감을 사라지게 하는 영향을 미쳤다. 알파고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심오한 바둑의 세계는 인공지능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야로 인식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바둑판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파격적이며 독창적인 수에 대한 연구가 뒤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알파고가 바둑 발전에 크게 공헌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알파고의 수가 너무 '안정적'이어서 '인간 바둑'만이 줄 수 있는 짜릿함이나 뜨거움은 없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유일하게 '알파고를 이긴 인간'으로 남게 된 이세돌 9단은 "알파고는 너무 안정적이다. 나빴던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을 때 확 몰아치는 맛이 없다. 그런 점에서는 불완전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커제 9단도 "앞으로도 계속 바둑을 즐겁게 두겠지만, 인간과 바둑을 둘 때가 더 즐거운 것 같다"고 했다.

'딱 이길 만큼만 둔다'는 알파고 바둑 스타일은 안정적이고 계산적이지만 너무 '인공지능적'이라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인간 바둑의 참맛이 알파고 바둑에는 없다는 것이다.

알파고는 떠났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알파고는 자신이 최고라는 것을 확인하고 미련 없이 바둑계를 떠났다. 알파고 개발사인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인공지능은 인류가 새로운 지식영역을 개척하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과학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범용 인공지능으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알파고 은퇴로 바둑은 이제 '알파고 이전'과 '알파고 이후'로 나뉘게 됐다. 인기가 점점 하락하고 있는 바둑이 과연 알파고로 인해 높아진 관심을 '비상'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새로운 숙제를 안게 됐다.

[오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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