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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공약 부랴부랴 반영… 벼락치기 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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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어요. 예산안 제출 마감이 12일밖에 안 남았는데. 휴일 반납하고 매일 야근해서 벼락치기로라도 만들어야죠."

기획재정부가 내년 예산안 편성 지침을 확정 발표한 19일, 중앙 부처 예산 담당 공무원들은 "탄핵과 조기 대선의 불똥이 예산편성까지 튈 줄은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해 나라 살림 계획을 짜는 작업은 통상 3월 말 시작된다. 기재부 예산실이 매년 3월 31일까지 예산안 편성 지침을 확정해 각 부처로 통보하는 것이 신호탄이다. 각 부처는 4~5월 두 달간 이 지침에 맞춘 예산 요구서를 만들어 5월 말까지 기재부에 보내야 한다. 그런데 올해는 대선이 5월 9일에 치러지면서 기재부의 지침 확정 자체가 늦어졌고, 이에 따라 각 부처가 예산 요구서를 만들 수 있는 시간도 대폭 짧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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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가 예산안 지침을 일부러 늦게 마련한 것은 아니다. 기재부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지난 3월 31일 예산안 편성 지침을 각 부처로 보냈다. 그런데 3월 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대선이 치러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새 정부의 주요 공약을 예산안에 반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지침은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 대응 ▲저출산 극복 ▲양극화 완화 등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추진할 수밖에 없는 공통 정책을 4대 기조로 내세웠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수석 등의 인선이 늦어지는 것도 예산안 지침을 조기에 확정할 수 없었던 이유로 꼽힌다.

기재부가 19일 발표한 '2018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추가 지침'에는 "새 정부의 정책 과제를 반영하라"는 주문이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경제 공약인 '소득 주도 성장'과 환경 공약인 '미세 먼지 저감'을 뒷받침할 정책을 예산안에 포함시키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1호 업무 지시 사항인 일자리 창출도 이번 추가 지침을 통해 더 구체화됐다.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해 일자리 격차를 완화하고, 신산업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ICT(정보통신기술) 기반을 확충하고 사람 중심 과학기술에 더 투자하라는 것이다.

기재부는 예산안 지침 확정이 늦어짐에 따라 각 부처가 예산 요구서를 만들어 제출하는 기한을 당초 26일에서 31일로 5일 연장해줬다. 일선 부처들은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는 입장이다. 한 중앙부처 예산 담당 과장은 "새 정부 첫 예산안에 주요 공약을 누락시키면 찍힐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반영시켜야 하는 분위기"라며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칫 충분히 검토 안 된 사업이 예산 요구서에 포함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예산 요구서 제출 이후에도 6~8월 석 달 동안 예산실과 각 부처가 협의를 거치기 때문에 누락된 사업은 그때 포함시켜도 된다"고 밝혔다.

특히 일선 부처들은 기재부가 이번 추가 지침에 "재량 지출을 10% 감축하라"는 방침을 넣은 데 대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량 지출은 도로·철도 같은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나 R&D(연구개발) 지원처럼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정책 예산을 말한다. 예산실 관계자는 "공약 사항을 이행하려면 자동적으로 예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시급하지 않은 다른 지출을 미리 줄여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국장급 간부는 "일자리 창출 사업을 많이 하라면서 재량 지출을 줄이라는 것은 모순"이라며 "다른 일자리 예산을 깎아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눈 가리고 아웅'식 정책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지홍 기자(jhra@chosun.com);윤주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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