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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엄존하는 하청노조 블랙리스트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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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울산 성내고가차도 교각 고공농성 21일째 이성호·전영수씨 인터뷰

”하청 노동자도 노조활동 보장받고 일한 만큼 대접받아야”

대선 후보들에겐 “1천만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도 국민, 외면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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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성내고가차도 20m 높이 교각 위에서 21일째 고공농성 중인 폐업한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이성호·전영수씨(왼쪽부터) 이성호·전영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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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정규직으로 일하던 지인한테서 조선소 도장공으로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 들어가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부산에서 사업에 실패한 그는 아내와 1남3녀의 자녀를 모두 경북 구미의 친지집에 맡기고는 울산에 혼자 떨어져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가 됐다. 도장부에서 선박 외벽의 페인트 벗기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분진과 유독가스 등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1년 만에 다시 용접 뒷처리작업을 하는 곳으로 옮겼다. 그는 이렇게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15년째 일해왔다. 그러던 지난 9일 갑자기 그가 속한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업체 동양산업개발이 폐업하면서 그는 일자리를 잃었다. 같은 업체에 속한 70여명의 동료 노동자 대부분이 다른 업체로 고용이 승계됐지만 그를 비롯한 4명은 제외됐다. 하청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이성호(47), 이씨는 같은 처지의 동료조합원 전영수(42)씨와 함께 지난 11일 새벽 5시 울산 북구 염포동 성내고가차도의 20m 높이 교각 위에 올랐다. 1일로 21일째 고공농성 중이다. 이씨와 전씨는 각각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대의원과 조직부장을 맡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28일 교각 밑에서 이들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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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이성호씨(왼쪽부터)의 고공농성장 밑으로 도로와 이들을 응원하는 펼침막 등이 보인다. 전영수·이성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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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이곳에 오르기 전 현대미포조선에선 안된다고 해서 현대중공업을 찾아 몇몇 하청업체에 이력서를 냈다”며 “그런데 원청이 직접 막고 있어서 고용이 불가하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했다. 이어 “원청(현대중공업)이 하청지회 조합원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며, 구조조정과 물량감소를 이유로 고용승계에서 배제하고, 개별 구직을 통한 취업조차 막고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하청지회 주요 간부 80%가 업체 폐업으로 해고됐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20m 높이 교각과 상판 고가도로 사이 철제 난간으로 둘러싸인 틈새에서 수시로 부는 강풍에다 쉴 새 없이 달리는 차량의 소음과 진동, 먼지 등에 시달리면서도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평소 겪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들은 하루 두 차례씩 하청지회에서 밧줄로 올려 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가져간 침낭에 의지해 밤의 추위를 견디고 있다.

이씨 등은 “우리가 뭐 잘난 게 있어서 이곳에 올라온 게 아니다. 원청 관리책임자와 면담을 요청하며 대화도 여러 번 시도했고, 회사 정문 앞에서 농성하며 고민도 참 많이 했다. 하지만 원청 쪽은 ‘하청 내부문제’라며 만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홀대와 차별, 무관심을 더는 참을 수 없어 거리의 고공농성까지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구조조정이 2년 넘게 계속돼 이미 2만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쫓겨났고, 앞으로도 1만여명 더 해고 위기에 놓여 있다”며 “정규직은 그나마 희망퇴직으로 위로금과 일부 보상도 받지만 하청노동자는 어떠한 보상이나 위로도 없이 그냥 쫓겨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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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한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이성호·전영수씨가 지난 11일부터 21일째 울산 성내고가차도 20m 높이 교각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신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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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특히 “블랙리스트는 하청노동자에게 노조가 보호막은커녕 공포와 두려움이 되게 하는, 노동기본권을 말살하는 범죄행위로, 적폐 중의 적폐”라고 했다. 이어 “이런 적폐와 차별이 척결돼 하청 노동자도 노조활동을 보장받고 일한 만큼 대접받길 바랄 뿐”이라고 털어놨다. 또 “현대중공업이 지난해부터 흑자도 내고 최근 수주실적도 크게 올렸다고 발표했는데, 이제 더이상 노동자를 대량해고시키는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고용안정기금을 출연해 영세한 하청업체를 대신한 하청 노동자 고용보장에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퇴근 뒤 동료조합원과 노동자들이 찾아와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데 큰 힘을 얻고 있다. 꼭 승리해서 내려가겠다”며 대선 후보들에게 “하청·비정규직 노동자가 전국적으로 1000만명을 넘는데, 이들도 이 나라 국민이다. 결코 외면하거나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울산/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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