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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소설 기계` 장강명의 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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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문학동네→은행나무→위즈덤하우스→에픽로그. 출판사의 규모와 국내 문단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이 '역주행'은 좀 의아할 법도 하다. 1년에 서너 편씩 장편을 쏟아내고 있는 '소설 기계' 장강명 작가(41)가 첫 SF 소설 '아스타틴'을 장르소설 전문 1인 출판사 에픽로그에서 출간한다. 스타 작가의 또 한 번의 실험이다. 그는 2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소위 '주류' 문단에 안착할 기회를 잡았지만, 장르소설에 강한 은행나무, 위즈덤하우스, 에픽로그를 차례로 선택했다. 에픽로그는 손바닥만 한 크기(A6 사이즈)의 '디스에픽 노벨라'를 출간해온 SF 전문 출판사다. 자사의 책을 대형서점에는 공급하지 않고,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만화책 전문서점 북새통에서만 팔고 있다.

송한별 에픽로그 대표는 "SF어워드 행사에서 작가를 처음 만나 1년에 한 번 열리는 '에픽나이트'라는 송년회에 초대한 인연이 있었다. 그 당시 작가가 디스에픽 노벨라 시리즈를 좋아한다는 말을 해서 작품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아스타틴'은 소설 속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초인의 경지에 이른 첫 인간의 이름이다. 21세기 초 싱가포르 태생인 아스타틴은 뇌과학을 전공해 초지능을 얻었다. 초인공머신을 설계한 뒤엔 인간의 일을 대체해버렸고, 인류에게 불멸을 선물로 줬다. 이 스페이스오페라에서 아스타틴은 그리스 시대의 신처럼 추앙되는 지도자가 된다. 주인공 사마륨을 비롯해 원소의 이름을 딴 열다섯 명의 등장인물들은 아스타틴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후계자로, '대권'을 잡아 차기 아스타틴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대장장이 신에 불과한 사마륨은 형제들에게 암살 시도를 당하지만 강화된 운동신경과 인공 근육으로 살아남는다. 이후 벌어지는 후계자들 간의 암살과 동맹, 배신 등이 이뤄지고 목숨을 건 전쟁 '아스타틴 게임' 속에서 사마륨은 홀로 살아남으려 필사적으로 싸운다. 잔인한 서바이벌 게임이 흥미로워지는 건 사마륨이 아스타틴이 창조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면서다.

생명 복제와 기억 이식의 윤리성을 여전히 묻는 지구와 달리 자동적으로 부활의 권리를 누리는 신세계인 목성과 토성의 위성들은 대비되는 두 문명으로 묘사된다. 초지능 사회에 대한 고찰과 과학이 만든 절대권력 계급사회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흥미로운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레이저 채찍을 사용하는 전투는 '스타워즈',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은 '헝거 게임'을 연상시킬 만큼 액션의 비중이 큰 소설이기도 하다.

장 작가는 최근 문학상 상금을 기부해 서평 전자책인 '한국 소설이 좋아서'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문단의 궤도 밖에서 다양한 실험을 벌이고, 신작을 쓸 때마다 장르를 전환해온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 궁금해진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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