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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코리아] '독수리 5형제'보다 '첩혈쌍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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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토론 횟수 늘수록 '뽑을 사람 없다' 오히려 한탄

기득권 보호하는 多者 토론 탓… 후보 '실체' 파고들지 못해

다자 대결보다 양자 중심인 美 대선 '메이저 대결' 방식은 스타 낳고, 역사도 만들어

조선일보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취객으로 붐비는 자정 무렵의 서울시청과 북창동은 19일 유난히 한가했다. 택시 기사는 "대선 후보 TV 토론 때문"이라고 했다. 심상정 후보의 뚝심, 유승민 후보의 공격력이 좋았다는 평이 있다. 홍준표 후보가 수시로 던지는 유머와 논란성 발언 때문에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지 못했다. 역시나 20일 KBS 대선 후보 토론회는 시청률 26.4%였다. 앞서 기자협회·SBS의 후보 토론회도 11%였다. 그런데 "TV 토론을 보고 나니 투표하기가 더 싫어졌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TV 토론에서 시청자들은 보고 싶은 걸 못 봤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머릿속,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싶다. 그런데 그건 볼 수 없으니 '말'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 그게 참말인지, 거짓인지 알려면 압박 질문이 필요하다. 20일 토론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사드 배치'를 두고 유승민·홍준표 후보는 '진짜 어쩔 거냐'며, 심상정 후보는 '되돌리라'고 문재인 후보를 압박하고 있었다. 얼굴이 굳은 채 당황하던 문 후보는 '안철수 후보야말로…' 하며 타깃을 돌렸다. 아직도 유력한 후보의 입장을 잘 모르겠다.

물론 프랑스보다는 낫다. 18일 프랑스 대선 후보 TV 토론에는 후보 11명이 나왔다. 유권자 '알 권리'와 '균등한 기회' 원칙 때문이다. 토론회는 4시간이 넘었지만 1인당 평균 발언 시간은 약 17분이었다. '기회의 균등'이 가져온 결과는 '난장판' 혹은 '부실함'이었다.

'1960년 9월 26일 오전까지 매사추세츠주(州) 상원의원 케네디는 상대적으로 무명이었다. 그 젊은 가톨릭 신자는 현직 부통령(닉슨)의 공격을 받아냈다. 밤이 되자 그는 스타가 됐다.' 미국 타임지는 미 최연소 대통령의 수정(受精) 시간을 1960년 9월 26일 첫 TV 토론 날이라고 썼다. '맞짱'식 미국 대선 토론은 스타와 파란을 낳는다. 1992년 '공화당 조지 부시-민주당 빌 클린턴-무소속 로스 페로' 3각 토론도 있었지만, 그건 예외였다. '대통령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미국 TV 토론은 1987년부터 전국 주요 5개 여론조사에서 15%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만 초청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론조사 5% 이상 ▲의석 5석 이상 ▲총선 득표율 3% 이상 중 하나만 충족하면 된다. 중앙선관위가 주최하는 세 번의 TV 토론(23·28일, 5월 2일)에 15명 대선 후보 중 다섯 명이 나오게 된 건 그런 이유다. 방송사가 따로 주최하는 토론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니 '독수리 5형제' 토론회가 반복된다.

이 방식의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다중토론은 몇 번을 계속해도 '제자리 맴맴'이어서 "찍을 X 하나 없다"는 정치 혐오만 부추긴다. 토론의 질적 향상을 위해 선관위가 ▲2차는 지지율 10% 이상 ▲3차는 양자 토론으로 방식을 바꾸려 했지만, 정치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둘째, '마이너' 차별이다. 기탁금 '3억원'을 똑같이 낸 이른바 '군소 후보 10명'은 24일 한밤중 단 한 번 TV 토론을 한다. 우리 방식은 프랑스처럼 '기회 균등'도 아니고, 미국처럼 '될 사람만 알아보자' 방식도 아니다. 그저 '의석' 가진 정당의 기득권 파티다.

이런 법률을 정할 때 상상하지 못했던 '인터넷, 모바일' 시대다. 후보들은 인터넷 방송에 나와 지지자들 피가 끓도록 할 말, 못할 말 다 한다.

그래 놓고 TV에 나와서는 표를 의식해 가식적인 말만 한다. 인터넷에는 '쌩얼', TV에서는 분장 아니 '변장'한 얼굴만 보여준다. 선관위 TV 토론은 후보의 민낯을 볼 수 있게 원칙과 방식 싹 다 바꾸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면 각 매체가 '양자 토론' '국민 면접 토론' 등 알아서 방법을 찾을 것이다.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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