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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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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날 문득]

신문사 출근 시각은 다른 데보다 좀 늦어서, 아침을 먹은 뒤 중학생 아이가 가장 먼저 집을 나서고 아내가 뒤이어 출근하는 것이 그다음이다. 그 뒤에 설거지하고 각종 전열기구와 전등 스위치를 껐는지 확인한 뒤 출근하는 것이 보통의 일상이다(도대체 신문사는 몇시 출근인가 하고 놀랄 것까지는 없다. 퇴근 시각은 훨씬 더 놀랍기 때문이다). 그게 아마도 어린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 시각인 것 같다. 정확히는 아파트에 노란 어린이집 버스가 당도하는 시각이다.

2분만 빨리 나가거나 늦게 나가도 같은 동에 사는 모든 어린이와 그 보호자들을 피할 수 있는데, 대개는 엘리베이터에서 그들과 만난다. 안녕하세요 아하하, 네네 애기 많이 컸네요, 넌 어쩜 그렇게 예쁘니, 영혼 없(는 것처럼 들리)는 대화가 엘리베이터를 가득 메운다. 이렇게 매일 어린이들과 만나다 보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올 것 같기도 하다.

엄마와 아이, 할머니와 아이, (아마도) 가사도우미와 아이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서 유일한 아저씨 신분으로 1층까지 내려가는 일은, 이상하지는 않지만 쭈뼛거리게 되는 경험이다. 아이들은 그저 '저 아저씨 또 탔네' 하는 얼굴인데 그 보호자들 얼굴에는 '저 인간은 왜 이제야 어딘가 나가는 것인가' 하는 기운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김훈을 표절하고 싶다. "엘리베이터는 누구나 다 타야 하는 것이지만, 제각각 원하는 층의 버튼을 눌러야만 각자의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 있다. 엘리베이터는 누구나 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면서도 그 각자가 원하는 층에 내릴 때만 각자를 만족시킨다. 엘리베이터는 그러므로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엘리베이터의 그 짧은 시간은 문득 고요하고 평화롭다."

오늘 엘리베이터에 젊은 엄마가 어린 딸을 태우고 탔다. "어머, 아저씨가 계셨네. 안녕하세요, 인사해야지?" 하고 아이와 나에게 동시에 말했다. 인형 같은 아이가 "아녕하에요" 하고 인사했다. 으응, 그래. 너는 어린이집으로 엄마는 다시 집으로 나는 회사로, 그러나 우리 모두는 지금 같은 엘리베이터에 있구나. 그것이 인생의 개별성과 보편성이란다. 잘 갔다 오렴.

[한현우·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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