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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천경자' 이름 빼고 방탄유리 쓴 '미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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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만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서 공개

천경자 화백 위작 주장 제기 이후

1991년부터 미술관 수장고에 보관

미술관장 "논란 대상 아닌 감상 대상 되길"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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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1991년 천경자(1924∼2015) 화백이 위작을 주장한 지 26년.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 안에서 길고 긴 세월을 보낸 ‘미인도’가 18일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이 19일부터 내년 4월 29일까지 여는 ‘소장품전: 균열’을 통해서다.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마지막 전시 이후 처음으로 전시실에 걸린 ‘미인도’는 ‘천경자’란 작가이름을 빼고 방탄유리를 쓴 채 세상과 만났다.

진위여부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미술관은 아무런 설명 없이 그림만 내걸었다. 미술관 고문변호사인 박성재 변호사는 작가 표시를 하지 않은 데 대해 “저작권법상 저작인격권과 공표권, 성명표시권에 대해 유족 측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술관은 여전히 작품을 진품으로 생각하지만 법적인 다툼이 있고 유족을 배려한다는 차원,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작가를 명확하게 표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인도는 1990년 4∼11월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인 ‘움직이는 미술관’에서 전시됐을 당시 천 화백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미술관은 전국 순회전이란 점을 고려해 실물이 아닌 2.5배 확대한 복제품을 전시했다. 천 화백은 복제품을 보고 의심을 품기 시작해 원본을 보여줄 것을 미술관에 요구했고 1991년 원본을 본 뒤 줄곧 위작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 천 화백이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출국한 뒤 한동안 잠잠했던 ‘미인도’ 논란은 2015년 천 화백이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재점화했다. 천 화백 유족들이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을 고소·고발하면서 논란이 가열됐고 끝내 검찰수사로까지 위작논란은 이어진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최종적으로 ‘미인도는 진품’이란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이에 수긍하지 못한 유족들의 강렬한 반발이 이어지고 상태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는 앞서 “전시를 할 경우 사자명예훼손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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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미술관은 진위 논란을 둘러싼 경과를 보여주는 각종 자료와 함께 ‘아카이브’ 전 형식으로 그림을 내놨다. 1980년 당시 재무부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이관될 당시 작성된 물품 대장과 소장품 기록대장 등부터 1990년 전시에 나온 복제 포스터, 당시 신문기사, 최근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관련 자료까지 다양한 자료를 출품했다. 장엽 미술관 소장품자료관리과장은 “그간의 위작 논란을 다 보여준다는 목표에 따라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위작논란 속에서도 ‘미인도’를 공개한 이유에 대해 “진위를 가리거나 특정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전시를 계기로 미인도가 논란의 대상이 아닌 감상의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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