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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칼럼] 한국 술 산업의 현실과 발전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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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정대영 우리술문화원 향음 이사장


한국의 술 시장 규모는 출고가격 기준으로 9조4000억원, 최종 소비자 가격 기준으로 약 25조~3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기자재, 유통 등 전·후방 연관 산업까지 생각하면 규모가 훨씬 더 클 뿐 아니라 많은 고용이 창출될 수 있는 산업이다.

그러나 소주와 맥주 시장은 대기업이 주도하고, 고급 술 시장은 수입주류가 압도적이다. 이들 사이에서 탁주·약주·증류식소주 등 전통주라 불리는 술의 비중은 미미하기만 하다.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막걸리도 저가 제품이라는 이미지와 가격경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외국산 원료를 사용하고 제조방식도 전통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술산업의 후진적인 행태는 집집마다 술을 빚었던 가양주 문화의 단절과 전통주 쇠퇴, 일제침탈 및 해방 이후 규제에 기인한다.

일제는 1906년 통감부 설치 이후부터 단계적으로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고 고율의 세금을 매겨 민족을 수탈했다. 1930년대 중반 조세수입의 약 30%가 주세수입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일제 정책기조의 답습 등이 겹쳐 우리 술 산업을 계속 뒤처지게 만들었다.

고급 술, 맛있는 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수입이 증가하는 등 시장은 급변하고 있지만, 술 관련 정책·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전 특파원인 다니엘 튜더가 ‘한국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고 혹평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국세청이 발급하는 주류 제조면허는 허가요건·절차·제출 서류 등이 복잡한 데다, 제조방법, 원료와 배합비율, 첨가물 종류 등에 대해 허가를 받고 가격과 용기도 사전에 신고해야 한다. 또한 주세구조도 불합리하다. 제조원가에 판매관리비·포장비·이윤까지 포함한 출고가격에 세금을 매기다보니 고급술이 나오기도 어렵다.

게다가, 주종의 구분과 제조기준도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통누룩을 사용한 한국 청주는 약주로 편입돼 청주 명칭을 사용할 수 없고 일본 사케 방식의 청주에만 청주라는 이름이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주세법에 의한 규제 외에 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위생기준 적용도 한국 술 제조업체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식약처는 일반 식품과 똑같이 술에도 HACCP 등 기준을 적용하며, 3개월에 한 번씩 자가품질검사를 요구한다.

외견 상 식품안전이라는 측면에서 타당해보이지만, HACCP 기준 적용은 역사성이 바탕이 되는 명주 제조에는 맞지 않으며, 잦은 품질검사는 1년에 한 번 양조하는 과실주 등에 과도한 비용부담으로 작용한다.

유명 사케와 백주는 맛을 유지하고 역사성을 홍보하기 위해 오래된 곰팡이까지도 그대로 둔다. 명주의 조건은 깨끗한 공장과 자동화설비, 까다로운 규제가 아니라 맛, 문화와 전통 그리고 스토리다.

명주가 등장하기에는 현재 생산자에 대한 규제가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규제의 관성을 고려할 때, 술 산업 관련 주무기관이 바뀌지 않는 한 혁신적인 제도개혁도 쉽지 않은 이야기다.

한국 술 산업의 도약을 위해서 술 산업 관련 주무관청을 바꾸는 것을 포함해 전면적인 규제개선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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