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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사법개혁 학술대회]판사 10명 중 9명 “법원장 뜻 안 따르면 불이익 받을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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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비교 통해 인사제도 모색…법관 500여명 설문 공개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 법관 독립성 저해 요소” 지적

경향신문

판사들의 학술모임 중 최대 규모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지난 25일 서울 연세대 광복관에서 ‘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 인사제도의 모색-법관 독립 강화의 관점에서’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김영훈 서울고법 판사가 법원 인사제도에 대한 판사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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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10명 중 9명은 대법원장과 법원장 등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했을 때 보직 등에서 불이익이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재판을 해야 할 판사들이 ‘윗선’의 눈치를 봐야 출세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법원의 관료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5일 연세대에서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세대 법학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 학술대회에서는 500여명의 법관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인사제도에 대한 설문조사에 법관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대법원이 이 학술대회를 축소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전국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개최되는 등 반발이 일고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한 상태다.

설문조사 결과 ‘대법원장·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한 법관이 보직 이동이나 근무평가, 사무분담(법원 내 판사의 보직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는 질문에 88.2%가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상급심 판결례의 판단 내용에 반하는 판결을 한 법관’에 대해서도 판사들은 47%가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했다. 소속 법원장을 의식하느냐는 질문에는 91.8%가 ‘그렇다’고 답했다. 법원장의 어떤 권한을 의식하느냐(복수응답)는 질문에는 98.3%가 근무평정, 67.4%가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 등을 꼽았다.

재판이 갖는 특성상 판결에 점수를 매길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판사들이 판결을 내리는 데 있어 대법원장이나 법원장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근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력이 있어야 ‘법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승진이 용이한 구조도 윗선을 의식하는 이유다. 이는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하는 ‘법관의 독립’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이 같은 문제는 ‘제왕적’이라고 불리는 대법원장의 막강한 인사권한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학술대회 내내 이어졌다.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제청할 수 있고 전국 3000여명 법관들의 인사권을 행사한다.

대법원장을 보좌하기 위해 법원행정처가 움직인다. 현재 법원행정처에는 차장 외에 총 34명의 판사들이 근무한다. 춘천지방법원의 평판사 수가 24명인 것을 감안하면 대형 법원 한 곳만큼의 판사들이 대법원장 보좌조직에 있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를 거친 판사들은 요직에 등용된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김영훈 서울고법 판사가 1970년 이후 임명된 현직 판사 출신 대법관 81명을 분석한 결과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이 21명, 국장급 이상 출신 34명, 경력 5년 이상 10명으로 대부분 법원행정처를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 사건을 다루는 영장전담이나 형사합의부도 마찬가지다. 올해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3명 중 2명이, 형사합의부는 13명 중 10명이 법원행정처 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력자다.

차성안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는 “상근판사 중심의 법원행정처를 해체하고 법관이 아닌 법률전문가나 직원으로 채우도록 법원조직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법원장이 주도하는 사무분담은 판사회의 운영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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