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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혈세 쏟아붓는 대우조선해양 놓고 부처간 氣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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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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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조원 vs 17조원' 해프닝이 정부의 비밀주의와 부처 간 장벽이라는 해묵은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대우조선해양 처리를 놓고 금융위원회와 채권단은 주요 수치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채 '파산 땐 59조원 손실'이라는 공포 마케팅을 펼쳤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주요 회의 때마다 금융위와 기 싸움을 벌이며 결국 '17조원'이란 숫자가 외부로 흘러나오도록 방치해 불필요한 논란만 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이런 과정에서 지난해 6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게 된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는 사실상 중재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앞서 금융위와 KDB산업은행은 회계법인 삼정KPMG와 법무법인 태평양을 통해 다양한 가정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피해 규모와 신규 자금을 분석했지만, 외부에는 일절 공개하지 않은 채 유독 '파산 땐 59조원'이란 숫자만 강조해 왔다.

전통적인 법정관리나 사전회생계획안제도(Pre-packaged Plan·P플랜)를 거쳐 많게는 40척이 선주의 요청에 따라 계약 취소 사태를 맞더라도 대우조선해양이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법정관리에 따른 구조조정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선수금환급청구(RG콜) 때문이다. 법정관리에 따른 계약 취소 사유로 법무법인 태평양은 최대 40척에서 이 같은 RG콜 사유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금융위와 산업은행마저도 전통적인 법정관리와 달리 신규 자금 지원을 전제한 P플랜의 경우 이 규모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시장에서 '법정관리'는 사실상 '파산'과 동의어로 인식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금융위와 산업은행이 이번 3·23 경영 정상화 방안 무산에 따라 법정관리의 일종인 P플랜에 들어간다는 배수진을 치기 전까지는 대우조선의 법정관리를 반대했고, '법정관리=파산'이라는 주장에 침묵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돌입하기 전에도 "파산 수준의 국가 경제적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발표를 공식·비공식적으로 되풀이한 전례가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정관리만 가면 파산될 것처럼 공포 마케팅에 열을 올리던 금융위가 이제 와서 법정관리와 파산을 구분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금융위가 그간 자율협약, 워크아웃 등 금융위 주도 구조조정에 대한 미련을 보여왔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요 결정을 놓고 오랫동안 갈등한 금융위와 산업부는 3·23 경영 정상화 방안 결정을 앞두고 폭발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31일 '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 발표 나흘 전인 같은 달 27일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대우조선해양 처리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당시 주 장관은 맥킨지 보고서를 토대로 빅3 체제를 '2강 1중' 체제로 재편하자고 주장한 반면, 임 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한 빅3 체제 유지를 고집했다. 결국 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은 금융위 의견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지난 23일 발표를 앞두고는 주 장관이 참석해야 할 두 번의 회의에 모두 불참해 관가에서는 금융위 주도의 구조조정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비공개 장관회의가 열린 지난 21일 주 장관은 제9차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조찬 모임 외에는 특별한 공식 일정이 없었지만 결국 회의에 불참하고 정만기 산업부 1차관이 대신 참석했다. 이어 23일 열린 제11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참석 때문에 불참했다는 게 산업부 측 해명이다. 산업부는 지난 19일 분과 회의 때도 차관 대신 실장급이 참석했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위는 산업부가 비협조적이라고 생각하고, 산업부는 금융위가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을 살리기 위해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고집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두 부처 간 엇박자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부처 입장을 교통정리해야 할 공식적인 권한을 가진 기재부는 사실상 컨트롤타워 역할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구조조정을 총괄하는 '산업경쟁력 강화 장관회의' 수장이지만 결국 금융위·산업부 간 힘겨루기가 끝난 다음에 형식상 회의만 주재했다는 것이다.

[고재만 기자 / 정석우 기자 /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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