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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톡톡! 시사상식] 기업 문 닫는 법정관리, 기업 살리는 법정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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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추진방안 기자간담회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오른쪽)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최종구 수출입은행장. /사진=연합뉴스



아시아투데이 주성식 기자 =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진 대우조선해양 처리 문제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던 정부가 결국 회생 쪽을 선택했습니다. 2015년 10월 인력감축, 자산매각 등 자구노력을 전제로 4조2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한데 이어 지난 23일 또다시 2조9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지원을 실시키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간 대우조선은 노사분규 없이 전체 직영·사내외주 인력의 30%를 감축했을 뿐만 아니라 필수 생산설비를 제외한 모든 자산을 매각대상에 올려놓고 그 중 일부를 팔아 유동성을 확보하는 등 치열한 인적·물적 자구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추가 자금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유례없는 ‘수주절벽’으로 대우조선의 경영여건이 더욱 악화됐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우조선의 신규 수주량은 15억4000만달러로, 2015년 10월 당시 자금지원을 위한 회계법인 실사 결과 제시됐던 목표치(115억달러)의 10분의 1 수준에 그쳤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약속을 했고 경영상황도 이자 갚을 정도까지는 회복할 것으로 판단해 돈을 빌려준 건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장사가 안돼 회사 가치가 떨어지고 경영부실도 더 심화돼 또다시 회생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입니다.

3조원에 가까운 자금투입 결정이 발표되자 ‘밑빠진 독에 물붓기’ ‘혈세낭비’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물론 정부도 무조건 돈을 빌려주겠다는 입장은 아닙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외에 민간 금융사(시중은행), 사채권자(회사채 투자자), 근로자,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자율적으로 합의해 손실분담에 나설 것을 추가 자금지원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수주절벽 등 거듭된 악재로 산은·수은의 자금지원(혈세투입) 부담만으로는 대우조선 경영정상화가 불가능한 만큼 빌려준 채권액 규모가 상당한 시중은행과 사채권자에게도 채무를 깎아주는 희생을 요구한 것이죠. 정부가 표현한대로 ‘先 근원적 채무조정 & 後 유동성부족 자금지원’ 방식인 셈입니다.

정부는 채권단의 자율적 채무조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법정관리에 들어간다는 입장입니다. 대우조선에 자금을 빌려준 시중은행 등 이해관계자들이 손실분담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정부가 법적 강제력을 활용해 강도높은 구조조정 실행에 나서겠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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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세계 최초로 인도한 천연가스추진방식 LNG운반선. /제공=대우조선해양



법정관리란 부도를 내거나 경영부실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해 법원이 제3자를 경영인으로 지정해 채무조정 등을 통해 회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법원은 기업의 회생 가능성 여부 등을 심의해 이를 받아들이거나 기각하게 됩니다. 기각된다는 것은 법원이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므로 해당 기업은 바로 청산됩니다.

이처럼 회생을 전제로 신청하는 것이지만, 통상적인 법정관리는 일정기간 정상적 경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청산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 차원의 자구노력, 채권단 자율협약 추진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다 결국 지난해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가 현재 청산 절차가 진행 중인 한진해운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다만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법정관리는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실시해왔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인 ‘사전회생계획제도(P-Plan)’라는 점에서 눈에 띕니다. P-Plan은 공(公)·사(私) 복합형 구조조정제도(Pre-Packaged Plan)로서 법정관리의 일종입니다. 이 제도는 ‘통합도산법’상의 회생절차의 장점인 법원의 폭넓고 강제적인 채무조정 기능과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상 워크아웃의 장점인 신속성 및 원활한 신규자금지원 기능이 결합돼 있습니다.

즉 파산위기 기업이 채권단과 미리 협의해 회생계획안을 마련한 후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한다는 점이 기존 통상적 의미의 법정관리와 다른 점입니다. P-Plan은 기업 인수합병(M&A)이 잦은 미국을 중심으로 활성화돼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지난해 3월 당시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제안으로 처음 도입됐습니다.

물론 P-Plan 역시 법정관리의 일종인 만큼 신청 기업의 강도높은 인력구조조정 및 협력업체의 일시적 매출축소에 따른 직간접 실업증가 위험, 금융지원 지연 등으로 인한 협력업체의 유동성 부족 초래 등 단점도 있습니다. 대우조선의 경우 법정관리 돌입에 불안감을 느낀 선주사들의 ‘선박건조계약취소(Builder’s Default)’가 한꺼번에 몰릴 우려도 있습니다.

만약 채권단 내 여러 이해관계자들간 자율적 채무조정방안 합의가 무산될 경우 대우조선은 국내에서 P-Plan을 통해 회생절차를 밟게 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제반 업무는 지난 2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회생·파산전문법원인 ‘서울회생법원’이 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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