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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만물상] FBI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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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수사국(FBI)은 법무부에서 독립한 뒤 81년 동안 국장 7명이 이끌었다. 그동안 자기 뜻에 반해 해임된 국장은 1993년 윌리엄 세션스 한 명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FBI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진 사임과 해임 중 택하라"는 법무장관 통보를 받고 돌아가다가 넘어져 팔이 부러진 세션스에게 직접 두 번 전화했다. 첫 통화는 해고 사실 통보, 다음 통화는 해고가 즉시 효력을 발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해고 사유는 FBI 국장의 신분 보장이 어느 정도인지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관용기로 부부 동반 여행, 공금으로 자택에 울타리 설치, 아내 미장원 예약과 애완견 산책에 FBI 요원 동원, 애인의 주택 융자에 영향력 행사 등. 세션스는 레이건 대통령이 이란-콘트라 스캔들을 수습하기 위해 유능한 윌리엄 웹스터 국장을 황급히 CIA 국장으로 보내고 그 자리에 앉힌 인물이다. 그의 시대 FBI는 무능과 내분으로 기능을 잃었다. FBI 국장이 중도에 물러나려면 세션스 정도로 막가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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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국장 임기는 10년이다. 48년 동안 국장을 지낸 에드거 후버의 급사(急死) 이후 정년을 만들었다. 여야·민관 가리지 않고 수집한 비밀 정보를 무기로 FBI 국장은 언제든 '막후의 제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후버가 증명했기 때문이다. 30대 쿨리지부터 37대 닉슨까지 미 대통령 8명 대부분이 그를 싫어했지만 자르지 못했다. 후버가 가진 정적(政敵)의 비밀 파일은 탐났고, 그가 가진 자신의 비밀 파일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미 대통령들은 그 후 FBI 국장을 가급적 후버와 반대 성향을 가진 인물로 골랐다. 임기 10년을 채우고도 오바마 대통령 요청으로 2년 더 자리를 지킨 로버트 뮬러 국장은 재임 시 골프를 아내하고만 칠 정도로 결벽스럽게 자기를 관리했다. 뮬러 후임인 제임스 코미 국장은 법무차관 재임 때 부시 정부의 불법 도청 인가를 거부한 원칙론자다. 공화당원인 그가 민주당 정권에서 등용된 것은 강직함 덕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게 강펀치를 맞았다. 트럼프의 대선 캠프가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심을 내비쳤다. 코미 국장의 임기는 2023년까지다. 트럼프의 대통령 임기(2021년)보다 길다. 그의 존재는 트럼프에게 4년 내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듯하다. 코미 국장은 대선 때는 힐러리 이메일 스캔들 수사를 재개해 타격을 안기더니 선거가 끝나자 트럼프를 겨냥한다. 코미 국장은 "(트럼프 측을) 끝까지 수사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FBI 국장은 이럴 수 있는 모양이다.

[선우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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