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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아이 적응 열쇠는 한글보다 생활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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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베이비트리] 안식월 쓰고 ‘초등 입학’ 엄마 해보니



베이비트리에서 어느 순간 양선아 기자가 보이지 않아 의아해하셨나요? 지금 저는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그동안 아껴두었던 안식월 휴가를 쓰고 있습니다. 눈 깜짝할 새 벌써 20일이 지나갔네요. 오늘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어떤 생활이 펼쳐지는지 알려드리고,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지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또 워킹맘 기자가 한 달 동안 전업맘 생활을 해본 뒤의 짧은 소회도 남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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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모님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글에 관한 걱정을 많이 합니다.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도 못하는데 아이가 알림장이나 제대로 적어올지, 수업 시간에 집중은 잘할 수 있을지 등등 걱정이 많지요.

그런데 두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 보니 초등학교 1학년 적응의 열쇠는 생활 습관에 달려 있더군요. 제자리에 앉아 밥 잘 먹고, 스스로 화장실 잘 다녀오고, 다른 사람이 말할 때 귀 기울이기만 잘해도, 입학 초기 적응 절반은 성공입니다. 아무리 한글 공부가 완벽하게 돼 있어도 생활 습관과 태도가 엉망이면 선생님께 계속 지적을 당할 수밖에 없거든요.

밥 먼저 먹고 책 읽고 칭찬받고

2년 전 첫째 아이는 입학해서 2주 정도는 아침마다 울면서 학교 정문에 들어섰습니다. “엄마, 나 밥 다 못 먹으면 어떡하지~”, “엄마, 오늘은 내가 싫어하는 반찬이 나오는데…” 하면서요. 딸은 급식 도우미 선생님에게 “밥 조금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어려워했습니다. 한 달 정도 ‘밥 스트레스’를 받던 딸은 담임 선생님의 사려 깊은 급식 지도와 엄마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밥 걱정’이라는 산을 넘었지요. 지금은 누구보다도 학교 급식을 맛있게 잘 먹고 있습니다.

둘째 아이는 이유식도 넙죽넙죽 잘 받아먹고, 어린이집에서도 무엇이든지 잘 먹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들은 학교 급식을 맛본 첫날 “엄마~ 학교 밥 너무 맛있어!”라고 외쳤습니다. 학교 밥이 맛있으니 아들은 학교 가는 것이 마냥 즐거워 보였습니다. 며칠 뒤 아들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는 제일 먼저 밥 먹는다~ 밥 다 먹은 사람은 선생님이 책을 읽으라고 해서 책을 봤어. 다른 친구들은 떠들면서 교실 돌아다니고 식판도 엎고 그랬는데, 나는 책 잘 읽었다고 칭찬도 받고 스티커도 받고 우유 사탕도 받았어.”

학부모총회 날 학교에 가니 담임 선생님께서 부모님들에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어머님들, 아이들 밥 먹는 습관 좀 신경 써 주세요. 제가 점심시간만 되면 속이 터질 것 같아요. 밥 한 숟가락 먹고 친구들과 얘기하고 교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30분이나 시간을 주는데도 밥을 다 못 먹는 아이도 있답니다. 정해진 시간에 밥 잘 먹는 훈련 좀 시켜주세요.”

선생님의 난감해하는 표정을 보면서 초등학교 1학년 땐 식습관만 좋아도 선생님에게 사랑받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아들은 지난 주말엔 “엄마, 나 학교 얼른 가고 싶어~ 학교 너무 재밌어~”라고 말했습니다. 밥도 맛있고, 선생님에게 칭찬도 듣고, 어린이집 다닐 때보다 더 빨리 하교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으니 아들에게는 학교가 천국처럼 느껴지는 거지요.

점심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정문으로

아들이 학교를 그렇게 좋아하니 안식월을 제대로 즐기겠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 아이들을 만나다 아이들 곁에 온전히 있는 전업맘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심 기대했습니다. 비록 한 달이지만 아이 둘 다 학교 가면 나만의 시간도 갖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들도 틈틈이 만나겠다고요. 그런데 그런 계획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전업맘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바쁘고 정신없더군요. 무엇인가 시도해볼 수 있는 뭉텅이 시간은 없고, 오로지 조각조각 찢어진 시간만 제게 주어집니다. 아이들의 요구 사항은 끝도 없어서 밤이 되면 워킹맘 때보다 더 파김치가 되곤 합니다.

담임선생님의 간곡한 첫 부탁
“어머님들 제발 밥 먹는 습관 좀…”

그런데 우리아이는 학교 급식 첫날
“엄마~ 학교 밥 너무 맛있어!”
그러니 학교 가는 게 마냥 즐거워

학교 끝나면 기분 따라 다양한 요구
이것저것 들어주다보면 곧 저녁

알림장 확인·숙제·책읽기하다보면
아이는 꿈나라, 엄마는 파김치

내심 기대한 전업맘 여유는 물거품
뭉텅이 시간 없고 조각난 시간만

“이제 엄마는 4월이면 회사 가야지?
그러면 이렇게 엄마랑…못하잖아”
10살 큰애 말에 울컥해 눈물이 핑


초등학교 아이들은 오전 8시50분까지 등교합니다. 3월 한 달 동안은 입학 적응기라 4교시만 수업합니다. 다행인 것은 급식을 먹고 하교한다는 사실입니다. 점심 먹고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은 낮 12시 반.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집안 정리 좀 하고 운동 1시간 정도 하면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됩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학교 정문으로 향합니다. 학교 앞 정문엔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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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생 부모는 이때야말로 같은 반 엄마들과 인사하면서 안면을 틀 절호의 기회입니다. 안테나를 곧추세우고 같은 반 엄마를 찾아 인사한 뒤 학교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들은 하교하면 곧바로 집에 가는 법이 없습니다. 입학 일주일 정도 지나자 친구들과 학교 놀이터로 직행하더군요. 저는 아이에게 한 시간 정도 친구들과 놀 시간을 줍니다. 가끔 학교 앞에서 파는 솜사탕, 요구르트, 호떡도 사주면서요. 지난 13일부터는 학교 방과후수업도 시작했습니다. 아직 1학년이라 매일 50분씩 하는 영어와 목요일 하루 2시간 진행되는 로봇 제작 수업만 신청했습니다. 저는 집에 돌보미가 계셔서 두 개만 신청했지만, 돌봐줄 이가 없는 워킹맘들은 돌봄 교실이나 피아노와 태권도 등 각종 학원으로 아이 스케줄을 짜느라 머리를 쥐어짜지요.

방과후수업이 오후 3시께 끝나면 아이는 학교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그때부터 아이는 엄마에게 그날 기분에 따라 다양한 요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날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어떤 날은 학교 앞에서 친구들과 놀고 싶어합니다. 어떤 날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하고, 어떤 날은 집 근처에 새로 생긴 핫도그 가게에 가서 핫도그를 사먹자고 제안합니다.

딱 한 달 아이들과 온전하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가급적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돌아옵니다. 저녁 먹고 두 아이의 알림장 확인하고, 학교 숙제와 방과후수업 숙제를 시키고, 그림책 몇 권 읽다 보면 잠잘 시간이 됩니다. 하루 종일 두 아이 쫓아다니느라 바빴던 저는 녹초가 돼 아이들을 재우면서 동시에 꿈나라로 가곤 하지요.

아이들 원하고 필요한 것 잘 보여

주변에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해 육아휴직을 한 워킹맘 몇 명이 있습니다. 그분들과 만나면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요”,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잘도 가네요”, “정신없지만 그래도 쉬겠다고 한 것은 잘한 것 같아요”.

입학생 부모는 3월 한 달 동안 학교에 가야 할 일이 많습니다. 입학식부터 시작해 학부모총회,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공개 수업까지 적어도 4번은 가야 합니다. 워킹맘들은 한 달에 네 번이나 휴가를 내기 어려우니 선택과 포기를 하곤 하지요. 3월 한 달이라도 안식월을 낸 저는 마음 편하게 학교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있어 좋고, 아이의 학교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어 안심합니다. 또 같은 반 엄마들과 안면도 트고 인사라도 나눠 마음이 든든하고요.

“엄마, 이제 엄마는 4월이면 회사 가야 하지? 그러면 학원 가기 전에 나 이렇게 엄마랑 커피숍에 앉아서 와플이랑 코코아 못 먹는 거잖아. 나 지금을 즐겨야 하는 것 맞지?”

며칠 전 피아노 학원 가기 전에 집 앞 커피숍에 앉아 엄마와 함께 와플을 맛있게 먹던 딸이 뱉은 말입니다. 10살 아이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니, 괜스레 마음이 울컥해지더군요. 엄마와 간식 먹는 그 소박한 시간이 얼마나 좋았으면 아이가 그런 얘기를 할까 싶더라고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지만, 환하게 웃으며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그럼, 지금이 가장 중요해. 지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거든. 엄마가 쉬는 동안 마음껏 즐겨. 그래도 넌 엄청나게 행복한 거야.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다고 안식월 쓸 수 있는 회사도 많지 않거든. 동생 덕분에 이런 시간도 가지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리고 엄마가 회사 나가더라도 간식은 챙길게. 엄마가 쉬면서 지켜보니 알겠네. 작은 초콜릿 따위로는 간식이 안 되겠다. 앞으로도 네가 필요한 것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줘. 엄마가 항상 너희들 곁에 없으니 잘 모를 수도 있거든. 너희들이 항상 엄마한테 귀띔해줘야 해.”

회사를 쉬면서 아이들 곁에 있어 보니 아이가 원하는 것과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잘 보였습니다. 학원과 학원 사이에 먹는 간식, 친구들과 마음껏 뛰노는 시간, 가끔 학원 빠지고 엄마와 뒹굴거리는 시간과 같은 것이지요. 이제 딱 열흘만 지나면 회사에 복귀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아이들과 지금을 즐기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습니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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