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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최후수단" vs "시장왜곡 심화"…배출권시장 정부개입 두고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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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자료=기획재정부



아시아투데이 주성식 기자(세종) = 정부가 수급 불균형으로 거래가 부진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활성화를 위해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기업이 잉여 배출권을 시장에 내놓지 않는 게 거래 부진의 주된 원인인 만큼 수요대비 공급이 현저하게 부족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 경우 정부 보유 예비물량을 푸는 등 적극 개입할 수 있다는 여지를 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배출권거래 부진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먼저 정확히 진단하는 게 중요하다며 공급확대를 통한 정부의 시장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1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주재로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시장안정화 조치 기준 추가 등의 내용을 담은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배출거래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의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기획재정부가 지난 1월 중순 발표한 ‘제2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2018~2020년)’의 후속조치 일환으로 마련된 것으로, 항공기 운항업체에 대한 배출권 추가할당, 해외 온실가스 감축실적 인정, 과징금 부과 및 배출권 무상할당비율 기준 명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부득이한 사유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한 항공업체를 배출권 추가할당 대상에 추가했다. 고장이나 안전상의 이유로 항공기를 회항하는 과정에서 배출량이 늘어난 경우 즉각 배출권 추가할당 신청을 해 보전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업의 해외 온실가스 감축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2016년 6월 이후 발생한 감축량에 대해서는 당초 계획(2013년)보다 3년 앞당긴 내년부터 외부사업 온실가스 감축량(상쇄배출권)으로 인증해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할당받은 배출권을 초과해 배출한 기업에 대한 과징금 부과 기준을 ‘장내시장(탄소배출권거래소) 내에서 거래된’ 배출권의 평균가격으로, 내년부터 시작되는 배출권 유상할당과 관련해 이의 적용을 받지 않는 무상할당 대상업종 선정 기준을 통계청·관세청 등 국가기관이 생산한 관련 통계수치를 최우선 순위 근거로 산정하도록 규정했다.

발전, 석유화학, 시멘트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일부 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항이었던 시장안정화 조치 기준에 대한 조항도 신설됐다. 정부로부터 배출권을 할당받은 기업이 사용하고 남은 여유분을 시장에 내놓지 않아 공급이 수요보다 현저하게 부족할 경우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시행령 개정령안에 시장안정화 조치 기준을 추가한 것은 심각한 공급부족 상황이 지속될 경우에 대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게 그 취지”라며 “올해 안에 마련키로 한 배출권 경매 및 시장조성자 제도가 도입될 경우 수급 불균형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시행령 개정이 부진한 배출권 거래를 촉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는 분위기다. 특히 장내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출권 공급 부족을 시장안정화 조치 추진 사유에 추가한 게 과연 타당한 것이냐는 지적이 나왔다.

기재부에 따르면 배출권 공급 부족 시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시장안정화 조치로는 △국가 예비보유량 조기공급(유상판매) △상쇄배출권 한도 상향 △기업 보유배출권 물량 제한 △배출권 상·하한가 설정 등이 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유럽의 경우 배출권의 과잉공급으로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경매시기를 늦추는 등 정부가 매물을 사들이는 방향으로 시장안정화를 취하고 있다”며 “시장안정화 조치가 어떤 경우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정부가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성훈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도 “지금의 국내 탄소배출권 시장은 2015년 제도 도입 초기 정부가 지나치게 낮은 수준의 (톤당)가격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탓에 수급이 왜곡돼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또 언제든 개입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배출권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은 오히려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 연구위원은 “앞으로도 계속 공급부족 상황이 지속돼 배출권거래제가 잘 작동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정부 개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다만 공급부족 지속으로 가격상승 압력이 있는 만큼 정부의 개입에 시장(기업)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안 소장은 “현재 지속적인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업이 보유 배출권을 지금 시장에 내놓을 이유가 없다”며 “잉여 배출권 보유 기업들이 왜 (매도)거래에 나서지 않는지를 진단하고 문제가 되는 원인을 제거하려는 작업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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