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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취재일기] 공무원 사기 떨어뜨리는 순직 처리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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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호 내셔널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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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A경사(39)는 2014년 2월 실종·가출 업무를 맡았다. 장애인이나 자살 의심자, 치매 노인 관련 신고는 밤낮없이 들어왔다. 퇴근한 뒤에도 종종 출동해 수색에 나서야 했다. ‘염전 노예’ 사건으로 업무 부담은 커졌다. 관할 지역의 인구 10만여 명에 대한 실종·가출 업무를 혼자 맡았던 A경사는 그해 4월 자신의 차 안에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A경사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며 유족보상금을 신청했다. 그러나 공무원연금공단은 자살 원인이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한 개인 문제라며 거부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유족의 주장처럼 과도한 업무량과 출퇴근의 경계가 모호한 업무 특성 등의 영향을 받아 정신적 고통을 겪다가 자살에 이른 것이라며 연금공단의 유족보상금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유족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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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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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재해 보상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연금공단의 판단이 도마에 오른 사례는 더 있다. 지난해 10월 숨진 채 발견된 울릉경비대장 조영찬(당시 50세) 총경도 그런 사례다. 경찰은 그가 지형을 파악하려고 산을 오르다가 추락사했다고 판단했지만 연금공단은 순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초과근무 시간 이후에 사고가 발생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관련 규정상 4시간만 초과근무로 인정돼 사고 시각은 어쩔 수 없이 제외됐던 점, 당일 직원 면담 일정을 잡아놓은 점을 공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전남의 한 해양경비안전서(해경) 소속 직원은 2015년 관내에서 열린 바다 수영 대회에 안전 관리를 하러 가서는 선수 자격으로 출전했다가 숨졌다. 연금공단이 순직으로 인정하자 해경 일각에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순직 처리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연금공단의 순직 결정에 대해 “대체 기준이 뭐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공무원이 많다. 연금공단은 의료·법률 등 각계 전문가로 꾸려진 공무원연금급여심의회를 열어 공무상 재해 관련 결정이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순직 관련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준에만 얽매여 순직 판단을 (보수적으로)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찰관·소방관을 비롯한 사건·사고 현장 의 공무원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일한다. 불합리한 현재의 순직 처리 기준 때문에 유족들이 억울해하는 사례가 자주 생긴다. 공무원들의 사기와 희생정신을 고려해 순직 처리 기준을 더 명확하고 현실성 있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

김 호 내셔널부 기자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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