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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사설]잠적 8개월 만에 검찰 나타난 홍기택, 누가 뒤 봐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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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이 잠적 8개월 만인 지난달 27일 검찰에 출두해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의 조사를 받았다. 홍 씨는 지난해 6월 23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을 돌연 사임한 뒤 검찰 수사를 피해 미국과 유럽 등을 돌아다녔다. 종적이 묘연하던 그가 대통령 탄핵심판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틈을 타 검찰에 불쑥 자진 출두한 것이다.

홍 씨는 대우조선해양이 2015년 5월 사내 회계비리 정황을 파악해 3조 원대의 회사 손실을 공개했는데도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같은 해 10월 대우조선해양에 2조2000억 원을 지원해 산업은행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다. 홍 씨는 AIIB 부총재로 있던 지난해 6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2015년 10월 중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대통령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이 모여 (지원을) 결정했으며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며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발을 뺐다.

산업은행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그가 의사결정 과정이 문제라고 판단했다면 자리를 걸고서라도 막았어야 했다. 하지만 홍 씨는 파장이 확산되자 AIIB에 취임 4개월 만에 휴직계를 내고 잠적해 버렸다. 그의 무책임한 처신 때문에 4조3000억 원의 분담금을 내고 한국이 맡았던 AIIB 부총재 자리는 프랑스 몫으로 넘어갔다. 홍 씨가 8개월간 잠적한 동안 정부는 ‘연락 두절’이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지원이 정부 결정이라는 홍 씨의 말 때문에 정치적 논란이 커질 것을 우려해 그가 외국을 돌아다니도록 방조했다는 의구심이 든다. 홍 씨가 자진 출두할 때까지 검찰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하다. 문제가 터지면 일단 도주하는 것이 상책이 돼서야 어떻게 사법 정의를 세우겠나.

검찰은 먼저 대우조선해양 지원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들러리만 선 것인지 파헤쳐야 한다. 차제에 홍 씨가 산은 회장에 이어 AIIB 부총재라는 요직에 낙점되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밝혀야 한다. 홍 씨 사례는 낙하산 인사가 국가 경제뿐 아니라 국제 경쟁력에서도 얼마나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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