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3 (목)

강제동원 조선인의 생지옥 ‘군함도’…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출간

경향신문

징용자가 하시마 탄광 갱도 안에서 누워서 탄을 캐고 있다. 생각정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자 얼굴을 아는 면서기와 순사 두 명이 있었다. ‘너 일본에 간다’라며 엽서만 한 종이를 나에게 건넸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나는 그것을 웅덩이에다 버렸다. 화난 순사가 내 팔을 잡자 할머니가 울며 순사 손을 물었다. 순사는 할머니를 뿌리치고 가까운 도로변에 세웠던 트럭에 나를 태웠다. 같은 마을의 남기석도 잡혀갔다. 열여섯 살 때였다.”

1943년 봄 경남 의령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끌려간 서정우는 그 길로 부산으로 이송됐다. 그는 각지에서 붙잡혀온 징용자들과 함께 굴비 엮듯 손을 묶인 채 관부연락선에 부려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징용자들은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나가사키역으로, 거기서 다시 나가사키항으로 이동했다. 얼마 후 배는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섬에 도착했다. 조선인들이 ‘지옥섬’이라 부른 하시마, 일명 ‘군함도’였다.

경향신문

전북 여자근로정신대에 징용됐던 여성들이 1945년 10월 일본 하카타항에서 귀환을 앞두고 사진을 찍고 있다. 생각정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3·1절을 앞두고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 유족, 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생각정원)을 펴냈다.

책은 강제동원 관련 역사적 사실, 강제로 끌려간 피해자들의 증언과 사진 자료, 아직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속 연구원 7명, 피해자 유족인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 추진협의회 대표, 일본 시민운동가 8명, 한국 변호사 2명 등 18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젊은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강제동원 피해자 운동을 기록한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43년부터 1945년 사이에 500~800명의 조선인들이 하시마 탄광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쓰비시는 1890년대부터 하시마에서 해저 석탄을 캐고 있었고, 이를 위해 필요한 노동자를 식민지에서 강제 동원한 것이다. 노동 환경은 가혹했다.

경향신문

2013년 3월 촬영된 군함도 모습. 생각정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인 징용자들은 50~60센티미터밖에 안되는 비좁은 막장에서 곡괭이를 들고 계속 누운 채로 탄을 캤다. 10분도 안돼 하반신이 저려오고 등뼈가 점점 변형될 만큼 고된 중노동이었다.” 징용자들은 다쳐서 죽거나 병들어서 죽었다. 화장된 유골은 폐쇄된 갱도나 바다에 버려졌다. 절에 안치됐던 일부 유골은 미쓰비시가 1974년 하시마를 폐광할 때 다른 곳의 납골당으로 옮겨졌으나, 이마저도 1988년 파괴됐다.

하시마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당시 유네스코 총회 현장에서 항의집회를 벌였던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유네스코 총회 현장은 국제질서의 냉정한 현실을 실감나게 확인시켜주었다.” 일본은 유네스코의 가장 큰 돈줄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도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왔다.

식민지 시기 조선인 강제동원은 하시마 탄광 같은 국외 동원과 국내 동원으로 나뉜다. 국외 동원 규모는 68만명으로 추산된다. 국내 군수공장과 탄광에는 연인원 500만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일본 측 자료를 사용해 추산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외 강제동원 규모는 약 112만명에 이른다. 징용자들은 지역적으로는 훗카이도와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일본은 물론이고 시베리아에서 파푸아뉴기니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 투입됐다. 그중 귀환하지 못한 이들은 소련군 포로가 되거나 피폭 당하거나, 심지어 전범으로까지 몰렸다.

경향신문

여자근로정신대는 1944~1945년 사이 후지코시 강재 도야마공장,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도쿄 아사이토 누마즈공장 등 3곳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자근로정신대의 경우 일본의 패전으로 귀국한 후에도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2017년 현재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관련 소송 6건이 진행되고 있다.

김승은 책임연구원은 ‘에필로그’에서 “과거를 아예 지우려는 일본정부와 과거를 묻지 말자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싸우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싸우고 있는 상대는 막을 수 없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며 “일제 식민지 피해가 오늘도 계속되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의 인세는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보태진다. 내년 3월1일 개관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김구, 이봉창,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의 묘소가 있는 서울시 용산구 효창원 근처에 자리잡을 예정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