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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개봉일 잡으러 점집? 이젠 빅데이터에 물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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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일의 숨은 과학]

事前관객 설문·경쟁작 등 조사… 개봉 전부터 예상 관객수 산출

비수기인 10월 개봉해서 두 배 성적 거둔 '럭키' 대표적

한 해 관객 2억명 돌파 시대… "성수기·비수기 구분 희미해져"

지난해 697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럭키'. 배급사 쇼박스는 당초 추석 연휴 개봉 작품으로 이 영화를 점찍었다. 하지만 '밀정'과 '고산자, 대동여지도' 등 경쟁사들의 대작이 쏟아지자, 쇼박스는 '럭키'의 개봉일을 추석 한 달 뒤인 10월 13일로 미루는 승부수를 던졌다.

'개봉일 변경 작전'은 적중했다. '럭키'는 전통적 비수기로 꼽히는 10월 중순에 1158개의 넉넉한 스크린을 확보했고, 결국 지난해 흥행 성적 7위에 올랐다. 문영우 쇼박스 배급팀장은 "경쟁이 치열한 추석을 피하는 대신, 스크린 확보가 상대적으로 쉬운 비수기를 택하는 방식으로 '럭키'는 당초 예상 관객(300만명) 두 배를 넘는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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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을 찍고 나면 제작자들이 '손 없는 날'이나 '길일(吉日)'을 개봉일로 잡기 위해 점집으로 달려갔다는 말은 옛말이다. 최근에는 영화 개봉일을 잡기 이전부터 빅데이터 분석과 사전(事前) 관객 설문 조사, 경쟁 작품 조사 등을 거친다. 개봉 이전부터 영화 배급사들 사이에 '치열한 샅바 싸움'이 벌어진다는 의미다.

대형 멀티플렉스인 CJ CGV는 영화 개봉 2~3개월 이전부터 매주 상영 예정작에 대한 관객 인지도와 관람 의향을 조사한다. 이 자료들은 고스란히 자체 개발한 예상 관객 숫자 산출 프로그램으로 들어간다. CGV는 2013년 출범한 리서치센터를 통해서 ▲감독과 출연진·주제 ▲성수기와 비수기 개봉 여부 ▲경쟁 작품 상황 ▲티켓 예매 상황 ▲사전 관객 조사 ▲시사회 직후 반응 같은 6가지 지표를 통해서 예상 관객 숫자를 산출한다.

지난해 최대 흥행작인 '부산행'(1156만명)과 '터널'(712만명) '인천상륙작전'(704만명) '덕혜옹주'(559만명) 역시 예상 관객 수와 실제 관객 수가 대부분 일치했다. 이승원 리서치센터장은 "영화 개봉일이 가까워질수록 예상 관객 숫자의 정확도는 높아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향후에는 개봉 시기 결정과 마케팅 전략에도 빅데이터 자료를 활용할 계획이다.

전통적으로 7~8월 여름방학 시즌은 한 해 영화계에서도 최대 성수기다. 영화 개봉 주간을 기준으로 '칠말팔초(七末八初)'라고 한다. 관객들이 몸을 비비면서 극장에 입장한다고 해서 속칭 '몸비 시즌'으로도 부른다. 올해에도 '택시운전사'와 '군함도' 같은 대작들이 여름 성수기 개봉을 앞두고 있다. 문영우 팀장은 "한 해 영화 관객 2억명 가운데 5600만명(28%) 정도가 7~8월 시즌에 몰린다"면서 "여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면 곧바로 한 해 최다 관객을 모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영화사들의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름 시즌에 이어서 설과 추석 연휴, 크리스마스가 '4대 성수기'로 꼽힌다.

하지만 한 해 극장 관객 2억명을 돌파한 2013년 이후에는 성수기와 비수기의 구분도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 영화계의 분석이다. 10월 개봉했던 '럭키'나 5월 개봉에도 687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곡성'이 대표적이다. 김홍민 CGV 편성전략팀장은 "4~5월에 개봉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년)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년) 같은 대작들이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 비수기라는 표현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상황이 복잡한 올해는 영화 개봉일을 잡거나 마케팅 전략을 짜는 데도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문영우 팀장은 "일시적 위축은 있겠지만 한국 영화 시장은 단일한 이슈에 좌우되지 않을 만큼 성장하고 성숙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정치·사회적으로 무거운 이슈들이 많을수록 영화는 거꾸로 밝고 따뜻한 작품이 사랑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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