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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어차피 알파고에 질텐데… 바둑 배워서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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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인기 뒤 시들해진 이유는

단기간 배우기 어려운 종목, 입문 6개월간 실력 안 늘면 금방 그만두는 경우 많아

바둑계 "인공지능 때문에 바둑 인기 줄거란 예측은 기우"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 이기윤(24·아마추어 6급)씨는 졸업 전 바둑 아마추어 1단을 따겠다는 꿈을 지난달 접었다. 작년 이세돌 9단을 꺾은 구글의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가 더 업그레이드돼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한·중·일 프로기사를 상대로 60전 전승을 거두고 난 뒤다. 그는 평소 좋아하던 박정환 9단이 알파고에 완패했을 때 페이스북에 "허탈해서 계절학기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이씨는 "시험 전날에도 짬을 내서 바둑을 둘 정도로 좋아했다"면서 "인간이 발버둥쳐봤자 안 되는데 바둑 배워서 뭐하느냐는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 이후 반짝했던 바둑 인기가 다시 시들고 있다. 최근 바둑 애호가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비관적인 글들이 올라온다. "알파고 60국 이후 바둑 TV 시청을 완전히 끊었다" "바둑 해설가들이 말하는 좋은 수와 나쁜 수를 못 믿겠다" 같은 반응이다. 실제 알파고는 최근 60국 중 중국 프로기사인 구리 9단과의 대결에서 "내 제자가 이렇게 뒀으면 뒤통수 한 대 때렸다"(김성룡 9단)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악수(惡手)를 여러 차례 두고도 승리했다. 대학생 김모(24·아마추어 2급)씨는 "인간이 수천 년 동안 쌓아온 바둑의 정석(定石)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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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미도어린이바둑교실. 10년 전 바둑돌 소리 가득했던 학원엔 적막이 흐른다. / 김다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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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학원가도 울상이다. 서울시 마포구에서 미도어린이바둑교실을 운영하는 윤건영(66) 원장은 "작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대국을 치렀을 때 바둑학원 미래에 잠깐 희망을 품었다"고 했다. 그는 "2007년 80여명에 달했던 원생 수가 33명까지 계속 줄기만 했는데 그때 이례적으로 신입생이 2명이나 더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 원장은 "하지만 정말 반짝 인기였다"며 "지금은 5명이 줄어 30명이 됐다"고 했다. 이정상(60) 한국바둑협회장은 "알파고 열풍 덕분에 당시 학원가 원생 수가 10~15% 증가했다고 추정했지만 지금은 이전 수준이거나 더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알파고 특수가 오래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명지대 바둑학과 정수현(61) 교수는 "바둑이 단기간에 배우기 어려운 종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밌어 보여 입문했지만 6개월간 배워도 실력이 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금방 그만두는 인원이 많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에 무릎을 꿇은 체스의 운명이 바둑에서 그대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보다 근본적인 우려도 있다. 1997년 IBM의 인공지능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개리 카스파로프에게 승리했을 때 체스에 대한 관심이 반짝 증가했지만 이후 인간 고수가 연전연패하면서 인기가 크게 감소했었다. 심우상(54) 대한바둑협회 사무처장은 그러나 "인공지능 때문에 바둑 인기가 앞으로 더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은 기우"라며 "미래 바둑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집중력·인내력 향상 등 바둑의 교육적 측면을 강화하고 오히려 인공지능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바둑계가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Why?' 조선일보 土日 섹션 보기

[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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