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임의진의 시골편지]머시락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전라도에선 꾸지람을 “머시락 한다”고 표현한다.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지청구를 좀 해야겠다 싶으면 “자네가 자꼬자꼬 머시락을 잔 해야 안쓰겄능가. 아조 이참에 버르쟁이를 단다니 고채놔야 쓰네잉. 항시 그라고 싸고만 동께로 아그들이 저 모냥 아닝가배.” 아부지 어무니가 앉아서 이런 말씀을 나눌 때는 잽싸게 자리를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겠다. 거시기 머시기 할 때 그 머시기가 머시락이 되기도 하는데, 머시락 할 때 마음을 닫아걸고 삐져버린 아이는 부처님도 대책이 없는 것이다.

제 자식이라고 끼고돌며 버르장머리 없이 키우면 큰 화근덩어리가 된다. 따끔하게 꾸중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 반듯하고 성실하다. 아이를 망치려면 칭찬을 트럭으로 갖다가 해주고, 원하는 대로 청을 다 들어주고, 버르장머리 없이 살게코롬 두둔해주면 된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들의 입이 궁금해진다. 국정농단 사태의 한 축이 된 아이도 줄줄이 욕 사탕이더군. 엄마 아빠 이모 삼촌 아저씨님들 입들은 거기다가 곱빼기 짜장 짬뽕이겠지. 교양은 스테이크 고기나 썰 때 나오는 것일 테고.

눈보라가 뿌려놓고 간 설경 위로 철새들 날고 별은 배나 붉어졌어라. 시와 노래로 입을 헹구고 새와 별로 눈을 씻는다. 곧 설 명절. 꼬까옷 입고 가족들 만나 같이 밥 한 끼 먹다가 괜한 말 한마디에 울상이 되고. 누가 좀 머시락 했다고 삐지고 그러지 말고 “넹! 알았엉!” 하고 웃어넘기면 다 인생에 좋은 보약이 된다. 좋아하고 그러니까 잔소리도 하고 머시락도 하는 것이지. 밉고 싫으면 포기해버리고 납부닥(얼굴)을 안 봐버리는 것이다. 날 넘어 가부렀다, 날 넘 묵었다, 날 넘어가꼬 어쩌고 할 때 ‘날 넘다’라는 말도 재미있다. 칼날을 너무 잘 갈아도 문제. 날 넘었다는 건 그런 뜻.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고 귀한 조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어영부영 살다보면 인생 망가지는 거 그거 급행열차다.

<임의진 목사·시인>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