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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대충 말해도 영어로 술술… 한국어 동시통역기 연내 첫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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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I 지능정보연구본부 가보니

조선일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김현기 책임연구원·김영길 그룹장·이윤근 그룹장(왼쪽부터)이 인공지능 동시통역기의 시험 버전을 시연하고 있다. ETRI는 강연이나 대화 전체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주는 이 시스템을 올해 내에 출시할 계획이다./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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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에서는 주어를 빼먹고 번역을 하네요. 비슷한 문장이 반복되니까 주어를 찾기 어려운 것 같은데요.”

지난 17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능정보연구본부. 이윤근 음성지능 연구그룹장과 김영길 언어지능 연구그룹장이 연구원들과 노트북을 가운데 두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캐나다 과학자 라라 보이드의 지식 강연 ‘테드(TED)’ 동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동영상이 나오는 창 옆에는 보이드의 말을 실시간으로 인식해 영어 자막으로 표현하는 창과, 이를 번역해 한국어로 보여주는 창이 띄워져 있었다. ETRI가 지난해부터 개발 중인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동시 통역 프로그램의 시험용 버전이다.

김영길 그룹장은 “구글·네이버가 AI를 이용해 자동 번역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단어·문장이 아닌 대화나 강연 전체를 한국어로 실시간 통역하는 AI는 이 프로그램이 처음”이라며 “기술 보완을 거쳐 올해 안에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한국어·영어·중국어 AI 동시통역기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어 기반 AI 동시통역기 올해 첫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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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동시통역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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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대의 정보기술(IT) 정부 연구소인 ETRI가 AI 동시통역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네이버와 구글의 문장 자동 번역도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동시통역은 기술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 김영길 그룹장은 “문장 번역은 번역된 문장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만 해도 정확도가 크게 높아진다”면서 “반면 사람의 대화나 강연은 말이 어디에서 끊어지는지 파악하기 어렵고 비문(非文)도 많아 AI가 더 똑똑해야 한다”고 말했다. AI가 문장을 정확한 단위로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생략된 단어까지 유추해야 한다는 것이다. ETRI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음성 인식, 문장 분류, 자동 번역, 문장 재구성, 음성 합성 등 다양한 기술을 조합했다.

ETRI는 AI 동시통역기를 3개월째 현장에서 시험하면서 보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전 한밭대 강의에 활용하기도 했다. 교수가 한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면 대형 스크린과 학생들의 태블릿PC에 영어와 중국어로 바꾼 자막이 3~5초 정도 간격을 두고 표시되는 식이다. 태블릿PC에 이어폰을 꽂으면 강의가 외국 학생들의 모국어로 바뀌어 들린다. 김영길 그룹장은 “동시통역의 정확도는 아직 떨어지지만 연말까지는 완성도가 80%는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AI 동시통역은 ETRI가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AI 분야를 고민한 끝에 얻어낸 결론이다. 한국어 데이터는 한국에 가장 많고 한국어의 미묘한 특징을 잡아내 프로그램을 최적화하는 것도 한국 연구자들이 가장 잘할 수 있다는 것. ETRI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자동 번역 인공지능을 연구해 상당한 노하우도 쌓여 있다. ETRI는 AI 동시통역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올 초 각 부서에 흩어져 있던 AI 연구자 50명을 모두 지능정보연구본부에 모았다. 이윤근 그룹장은 “음성 인식과 한국어를 중심으로 한 AI 동시통역에서는 구글·MS·IBM 같은 글로벌 기업에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서 “콜센터용 AI를 통해 이미 경쟁력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금융사·쇼핑몰 등에서는 콜센터 관리를 위해 AI를 사용한다. 녹음되는 고객 상담 내역이나 불만 사항을 AI가 인식해 문서로 변환하고 분류·분석하는 식이다. 이윤근 그룹장은 “2014년까지만 해도 베린트·뉘앙스 등 해외 기업들이 콜센터 AI 시장을 장악했지만 현재는 한국 기업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ETRI가 한국어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해 공개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아마존·알렉사 뛰어넘겠다”

김영길 그룹장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마존의 AI ‘알렉사’나 애플의 ‘시리’ 등은 쇼핑이나 일정 관리 등 정해진 형태의 문답에만 특화된 반면 AI 동시통역 기술은 이런 한계도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아마존과 애플이 먼저 음성 인식 AI 기기를 선보였지만 사람의 일상 대화까지 알아듣고 동시통역도 해내는 기술력은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다. 김현기 책임연구원은 “사람의 말을 더 잘 알아듣게 되면 금융상품 판매, 법률·의료 상담 등을 하는 AI 상담원도 만들 수 있다”며 “지금은 PC 기반으로 작동하지만 연말쯤이면 스마트폰용 버전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박건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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