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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왔어? 이런 낙원은 처음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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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의 섬, 갈라파고스 제도

갈라파고스를 찾기 전, 떠오르는 말은 '고립'이었다. 오랜 세월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진화 과정을 밟아 온 독특한 생명들이 살고 있는 섬. '갈라파고스화(Galapagos Syndrome)'라는 말처럼 세상과 동떨어진 채 고립을 자초한 이들을 일컬을 때 우리가 비유를 끌어오곤 했던 그 섬. 하지만 에콰도르 과야킬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갈라파고스 제도 산크리스토발섬에 내린 지 30분 만에 그 이미지는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아, 이런 낙원이 아직 지구 상에 남아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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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모래밭을 뒹구는 녀석의 눈빛이 사랑스럽다. 갈라파고스 해변에 누워 오후 햇살을 즐기던 바다사자는 이방인의 발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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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을 빠져나와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인 푸에르토 바케리소의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이방인을 반긴 건 현지인의 따스한 미소가 아닌 '끄으윽 끄으윽' 하는 바다사자의 울음소리였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는 커다란 바다사자 한 마리가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해안가 바위에도 바다사자들이 무리를 지어 낮잠을 즐기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왔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슬쩍 눈을 뜨고는 이내 감아버렸다.

갈라파고스는 19개 섬으로 이루어진 제도다. 화산 폭발이 일어나면서 바다 밑에 있던 땅이 솟아올랐고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물의 씨앗이 날아 들어와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새들과 파충류가 바다를 건너왔다. 이들은 오직 갈라파고스만의 방식으로 진화했다. 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도록 목이 길게 진화한 갈라파고스거북과 이끼를 먹고 살아가는 바다이구아나는 오직 갈라파고스에서만 볼 수 있는 동물이다. 1835년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찰스 다윈은 이곳에서 섬마다 등딱지가 다른 거북과 부리의 생김새가 다른 새를 발견하면서 종이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이는 훗날 진화론의 단초가 된다.

갈라파고스의 독특한 식생을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해 에콰도르 정부는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엄격히 여행객들을 통제하고 있다. 입장객 수도 제한하고 있어 여행을 하려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갈라파고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특별 검역을 받아야 한다. 짐 수색도 철저해서 말린 꽃송이조차 들여갈 수 없다.

도착해서도 엄격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 공항에 도착하면 국립공원 입장료 100달러와 자연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모든 방문객은 국립공원공단에서 훈련을 받은 투어 가이드와 함께 방문해야 하며 일단 배에서 내리면 정해진 경로에서 절대로 이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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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산을 따라 트레킹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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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산타크루스섬이다. 거북이 번식 센터(Tortoise Breeding Center)를 비롯해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본부가 이곳에 있다. 거북이 번식 센터 내 거북이들은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데, 가이드에 따르면 한때 이 거북은 멸종될 뻔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기름을 짜고 잡아먹었고 쥐와 개가 거북이 알을 깨트렸기 때문. 지금은 원래의 규모를 회복해가고 있는 중이다. 센터에서는 한 살 난 아기 거북에서부터 150세가 넘은 할아버지 거북까지 다양한 크기의 거북을 볼 수 있다. 또한 다른 모양의 등딱지를 가진 13종의 거북이도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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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발부비새. 갈라파고스에 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새이자 사랑받는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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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협곡 사이로 난 트레킹 코스를 따라가며 갈라파고스의 희귀 동식물들을 관찰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수풀 사이를 걷다 보면 푸른발부비새를 심심찮게 만난다. 갈라파고스에 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새이자 사랑받는 새다. 가마우짓과에 속하는 새로 갈라파고스에는 푸른발부비, 붉은발부비, 나스카부비 등 3종이 서식한다. 푸른발부비는 이름 그대로 발이 푸른색을 띤다. 마치 푸른 장화를 신은 것 같다. 알을 품고 있는 암컷도 있고 짝짓기 놀이를 하는 커플도 있다.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동물들이 먼저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는 한 2m 이내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먹을 것도 절대로 주어서는 안 돼요. 외부에서 들여온 음식물을 잘못 먹고 동물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병에 걸릴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예요. 길을 막아서거나 큰 소리로 놀래 줘서도 안 되고요." 탐방객들이 부비새 가까이 가자 가이드가 주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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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바위 어디서든 바다이구아나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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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뇰라섬은 갈라파고스앨버트로스와 바다이구아나를 관찰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에 사는 앨버트로스는 몸길이가 90㎝가 넘고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2m에 달한다. 하늘을 날 때면 긴 날개와 바람을 이용해 날아오르는데, 수천㎞의 거리를 날갯짓 한 번 하지 않고 날 수 있다고 한다.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가다 보면 갈라파고스앨버트로스가 알을 품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앨버트로스가 둥지를 튼 바닷가 옆 바위는 온통 바다이구아나 천지다. 바닷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바다이구아나는 전 세계 유일하게 갈라파고스에만 있다. 갈라파고스로 건너와 불모의 화산 지대에서 살아남고자 바닷속 해조류를 먹기 시작하면서 현무암 바위처럼 검은색 피부를 갖게 됐다고 한다. 겉모습은 괴수 영화에 등장한 '고질라' 비슷하게 생겼지만 성격은 순하기만 하다. 사람이 다가가면 눈을 끔뻑이며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등을 보이고는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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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너 베이. 갈색펠리컨과 순진한 표정의 바다사자를 원 없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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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뇰라섬의 가드너 베이는 갈라파고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다. 갈색펠리컨과 순진한 표정의 바다사자를 원 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순백의 모래사장에는 바다사자들이 떼를 지어 누워 잠자고 있다. 가끔 기지개를 켜기 위해 몸을 일으킬 뿐 사람이 나란히 옆에 누워 기념사진을 찍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들을 보면 먼저 다가와 장난을 걸기도 한다.

갈라파고스 여행에서 하루 종일 동식물 탐방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쿠버다이빙, 스노클링, 카야킹 등 다양한 해양 액티비티를 즐기는 일도 즐겁다. 굳이 스쿠버다이빙까지는 아니더라도 스노클링만으로도 바다거북, 망치상어 같은 진귀한 바다 생물과 눈을 마주칠 수 있다.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은 사람들을 믿는다. 경계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신들을 해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갈라파고스를 여행하고 나면 '갈라파고스화'라는 말은 '고립'이 아니라 '조화'와 '어울림'을 상징하는 말로 바뀌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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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19개로 이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는 에콰도르 본토에서 약 965㎞ 떨어져 있다. 에콰도르까지 가는 직항은 없으며 뉴욕을 거쳐 남미 최대 항공사 라탐항공으로 갈아탄 후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 에콰도르 최대 도시인 과야킬을 거쳐 갈라파고스로 들어가야 한다.

■ 시차는 에콰도르 본토에 비해 1시간 늦다.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관광 목적으로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에콰도르는 지난 2002년부터 미국 화폐인 달러화를 사용하고 있다. 자외선이 강해 모자, 선글라스, 선크림은 필수. 수영복과 트레킹화, 해변에서 신을 신발도 챙겨야 한다. 전압은 110볼트.갈라파고스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크루즈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다.

[갈라파고스=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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