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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김수진 국선변호사 "보람·고충…국선 변호사의 삶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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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택시 운전기사가 승객을 한 사람 태웠다. 그런데 승객은 택시에 탄 뒤 얼마 되지도 않아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갑작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택시비도 내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승객의 하차를 위해 보도에 차를 붙여 세울 여유도 없었다. 그 순간 뒤에서 달려오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택시 뒷문을 들이받았다. 자신의 차에서 내린 승객 때문에 일어난 사고이긴 했지만 오토바이 운전자가 크게 다친 것 같지 않아 택시 운전자는 현장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택시기사는 뺑소니범으로 몰렸다. 신고자는 바로 뒤에서 사고를 목격한 또 다른 택시기사였다.

국선 6년차 김수진 변호사(47·사시 48회)는 이 사건을 맡은 후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들의 생각을 물었다. 동종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마저도 이는 기사의 잘못이라고 할 정도로 대부분 사람들은 뺑소니라고 생각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 사건에서 배심원단 전원일치 무죄 평결을 이끌어냈다. 택시 승객이 예상치 못하게 내리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라면 운전자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변론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당시 택시기사가 유죄 판결을 받았으면 4년간 택시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생계가 달린 문제였는데 억울함도 풀고 경제적 문제도 해결됐다며 무척 고마워했죠."

김 변호사가 그간 국선변호사로 맡은 사건들은 종종 세간에 화제가 됐다. 사건의 초반을 맡았던 '여자친구, 시멘트 암매장한 20대 남자친구 사건'은 김 변호사 마음을 내내 힘들게 했다. 피해자 측이 겪은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사업 실패로 동반 자살 결심 후 아내 목 조른 가장' 사건 역시 쉽지 않았지만 평소에 화목했던 가정이라는 점과 가장이 범행을 스스로 멈추고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 등을 바탕으로 선처를 호소했다. 또 피의자 아내도 남편을 법의 끝자락으로 내몰고 싶어하지 않았다.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집행유예를 평결했다.

김 변호사는 "국선변호사가 이렇듯 보람도 크지만 동시에 고충도 만만치 않다"고 털어놨다. "국선변호사로 일하다 보면 사회적으로 공분을 사는 사건의 변호도 맡게 되죠. 이럴 땐 오히려 피해자 측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죠. 하지만 한 번도 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기회를 얻는 모습을 보거나 해체될 뻔한 가족들이 다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뒤늦게 사법고시에 도전해 법조인의 길을 걷는 김 변호사의 열정은 젊은 변호사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최근엔 서울대 로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그의 도전은 잠시도 쉴 새가 없다.

늘 마음에 새겨 놓고 산다는 '대학(大學) 제7장'의 문구는 그가 국선변호사로서 약자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으려는 자세와 통해 보였다.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마음에 있지 않으면 눈으로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아니하며, 귀로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아니하고, 입으로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이윤재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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