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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특전사 출신이라 군인들 보면 짠해…여혐? 여군이었어도 버스에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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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문병 가는 군인 태웠다가

‘여혐’ 논란 휘말린 고속버스 기사

추석 연휴에 한 고속버스 기사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다. 그는 추석 당일인 지난 15일 차표를 구하지 못한 군인에게 무료로 버스 안내양 자리를 내줬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 B사이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다 군인 양반’이라는 글에서 이 일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3일 뒤 게시글을 자진해 삭제했다. 그러면서 “군인을 공짜로 차에 태워주는 것은 ‘여혐(여성 혐오)’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앞으로 원리원칙대로 행동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같은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그 뒤 그에 대한 격려의 메시지가 여러 사이트에 쇄도했다. 여혐이라는 비판이 부당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당사자인 A씨(43)는 19일 전화통화에서 “나는 여혐이란 말도 몰랐다. 그 군인이 여군이었어도 똑같이 버스에 태워줬을 것이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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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15일 상황은.

A : “오후에 서울 터미널에서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군복을 입은 사병이 버스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두리번거렸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위독하셔서 청원휴가를 받아 나왔는데 명절이라 차표가 없다’고 했다. 차 안 승객들의 동의를 얻은 뒤 안내양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Q : 군인이라서 더 안타까웠나.

A : “군인들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든다. 나는 특전사 출신이다. 복무 중인 1996년 강릉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도 투입됐다. 버스 운전 10년 차인데 휴게소에서 군인을 만나면 꼭 뭐라도 사준다. 군대에 갈 아들도 있다. 그 군인이 여군이었어도 똑같이 대했을 것이다. 여성 혐오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Q : 인터넷에 왜 글을 올렸나.

A : “끼어드는 차량 문제 등 운전하는 사람들의 고민에 대해 그 사이트에 글을 써왔다. 내겐 일기장 같은 존재다.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한 마음에 글을 올렸다.”


Q : 논란이 되고 있다는 걸 언제 알았나.

A : “게시글에 댓글을 읽었는데 여혐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여혐이라는 말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찬찬히 읽어보니 ‘군인이라서 태워준 거면 여자였으면 안 태워줬을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Q : 18일에 글을 삭제한 이유는.

A : “‘당신 여혐하는 것이냐’는 내용의 쪽지를 열댓 통가량 받았는데 그중 열 통 이상은 한 사람이 보낸 것이었다. 그와 쪽지를 주고받다가 내가 ‘글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리면 이런 쪽지를 그만 보낼 거냐’고 묻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원래 소심한 성격이라 누구한테 비난받는 게 힘들었다.”


Q : 얼마 뒤에는 사과글까지 삭제했는데.

A : “사과하면 논란이 그칠 줄 알았다. 그런데 사과했다는 내용이 또 인터넷으로 보도되고, 그 보도에 댓글이 달리며 일이 커졌다. 그래서 사과글까지 지웠다.”


Q : 군인을 태워준 걸 후회하나.

A : “글을 올려서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후회한다. 회사에도 눈치가 보인다. 하지만 위독한 할머니 때문에 집에 가려는데 표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군인을 공짜로 버스에 태운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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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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