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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책과 삶]‘털털’한 여자가 어때서…젠더 규범 뒤흔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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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다운 게 어딨어

에머 오툴 지음·박다솜 옮김 |창비 | 408쪽 | 1만6000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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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아들은 크게 다쳐 응급실로 실려간다. 그런데 환자의 얼굴을 본 의사가 “이 아이는 내 아들”이라며 수술을 거부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게이부부였을까? 아니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간 의사가 헛소리를 한 걸까?

정답은 의사가 이 아이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대학생과 어린이 3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정답자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의사=남자’라는 고정관념이 워낙 강하게 뿌리박혀 있어 빚어지는 일이다. 심지어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한 이들 가운데서도 정답을 맞힌 사람은 22%에 불과했다.

경향신문

아일랜드 출신 페미니스트인 에머 오툴의 <여자다운 게 어딨어>는 흔히 사회에서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특질들이 성차별적 각본에 의해 여성에게 주입된 역할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고정된 성역할을 거부함으로써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렌즈에 균열을 내자고 말하는 책이다.

저자 오툴은 2012년 영국의 한 아침 프로그램에서 18개월 동안 제모하지 않은 겨드랑이 털을 드러내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도발적 행동은 삭발, 남장과 여장을 번갈아 하고 출근하기, 양성애 실험 등 그가 지난 10여년 동안 해온 성역할 뒤흔들기 시도의 일부일 뿐이다.

여자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여성의 체모는 비위생적이며 보기에 추하다는 교육을 받는다. 반면 남자아이들에게 체모는 남자다움의 자랑스러운 징표로 여겨진다. 물론 여성의 겨드랑이 털이 남성의 그것에 비해 더 비위생적이거나 아름답지 않다고 보는 인식에는 유전적이거나 윤리적인 근거가 없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여성혐오적 시선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돼온 문화적 편견일 뿐이다.

옷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스커트를 입는 데는 생물학적 필연성이 없다. 저자는 10대 시절 핼러윈파티 때의 경험을 소개한다. 그가 남장을 하고 남자들처럼 춤을 추자 가까운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그가 여성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는 우리가 특정인의 정체성을 파악할 때 몇 가지 상징적 표지(옷, 헤어스타일, 말투, 행동 등)에 간편하게 의존한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성 정체성의 지표들을 바꾸면 젠더에 대한 인식의 틀에 균열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행동방식을 비틀거나 뒤집어 젠더 규범을 뒤흔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수행성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버틀러는 “젠더는 리허설을 거친 연기이고, 그것을 써먹는 특정 연기자들보다 더 오래 존속하는 각본으로서, 다시 한번 현실에 실현되고 재생산되기 위해 연기자들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생물학적 성(섹스)과 달리 젠더는 특정 행동양식을 잘 훈육시킨 결과일 뿐이라는 얘기다.

저자가 본래부터 페미니스트였던 것은 아니다. 열여덟살 무렵 펍에서 서빙을 하던 그는 ‘가사보다는 커리어가 더 중요하다’는 30대 초반 여성 뮤지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는 아이를 낳으면 집에 있고 싶어요. 너무 멋지지 않아요? 하루 종일 아기들이랑 놀고, 나가서 일 같은 건 안 해도 되잖아요. 남자들에겐 이런 선택권이 없으니 사실 여자들은 행운이죠.” 이런 말도 했다. “지금이 1950년대는 아니잖아요! 성차별 같은 건 이제 없어요. 저는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항상 남자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았어요. 이제는 누구나 남녀가 평등하다는 걸 알죠.”

대학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그는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글을 읽으면서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남성 철학자들의 글을 읽을 때는 별다른 비판적 견해 없이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던 것과 달리, 아렌트의 글을 읽으면서는 논리적 허점을 찾기 위해 애쓰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남성 철학자들과 달리) 여성 철학자들의 지적 능력이 나와 동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처럼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 순간 나 자신도 성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는 자신의 반페미니스트적 발언들이 “스스로의 논리로 생각해낸 게 아니라 가부장제에서 요긴하게 써먹는 단골 대사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저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차별주의자가 된 것은 그의 선택이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이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는 사회는 어릴 때부터 남자들에게는 능력이, 여자들에게는 미모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주입한다.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에게는 ‘끼 부리는 여자’ 등 온갖 비하적 표현들이 따라붙지만 문란한 남성에게는 고작 ‘바람둥이’라는 말이 전부다. 고등교육 과정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의 철학자와 소설가들 또한 남자들이다.

젠더 규범을 깨는 시도에는 희생이 따른다. ‘별종’이라는 듯 쳐다보는 삐딱한 시선과 노골적인 모욕을 견뎌야 하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불화도 감수해야 한다. 방송에서 겨드랑이 털을 보여준 후 저자는 팬이라는 한 남성으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e메일 속 링크를 클릭했더니 저자의 사진이 올려진 게시물에서 남자들이 “얘랑 섹스할 수 있는지”를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가족 모임에서는 “페미니스트라는 것들이 다 그렇지 어쩌겠냐. 요리랑 청소는 여자들이 하고, 남자들은 진짜 중요한 일을 하는 거야. 다들 그건 알잖아”라는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는다.

성역할의 규범에 도전하다 보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공격적인 잔소리꾼, 갈등을 몰고 다니는 사람, 대하기 어렵고 이기적인 사람, 다른 사람들은 더 심한 것도 견디는 판에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 취급”이 전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메시지를 부드럽게 전달해야 한다고, 보다 상냥하게 굴어서 남자들도 이 운동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충고한다. 저자는 그러나 “헛소리”라고 일축한다. 갈등 없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고 고치려 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과 다른 여성들을 마음 가득 사랑하는 것,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비록 내 감정은 정반대를 바랄지라도, 때로는 가슴이 찢어지더라도, 나는 정말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믿는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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