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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한반도 한우의 맛을 비교하다… '대동牛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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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8개 브랜드 맛을 보니…

경상도는 깊은 풍미, 전라도는 부드러워… 토질·물따라 맛 달라져

天高牛肥, 하늘은 높고 소는 살찐다… 물 좋은 지역에서 자란 소, 맛도 최고

가을을 흔히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을에는 말만 살 찌는 게 아닙니다. 소도 살이 찝니다.
추운 겨울을 대비해 몸에 살을 찌우고 지방을 비축하는 겁니다.
식품 전문 MD 김진영씨는
“그래서 소고기는 늦가을에 가장 맛이 좋다”고 합니다.
전국을 다니며 만난 한우 사육농가에서는
“우리 지역 한우가 최고”라고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이 좁은 한반도에서, 같은 한우 품종을, 수입된 사료를 주로 먹여가며
키우는데 과연 맛이 다를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음식 전문가들을 모아 전국의 한우를 맛봤습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모든 지역의 한우가 다 맛있었습니다만,
지역마다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더군요.
지역별 한우 맛을 비교한 ‘대동우(牛)지도’를 그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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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다채로운 자연과 문화, 음식을 가진 한반도. 지역마다 다른 한우 맛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도(道) 모양으로 자른 소 등심으로 대한민국을 형상화했다. 촬영 협조=한육감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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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맛이 정말 다르긴 다르네."

전국 한우 맛을 비교해보자고 모인 전문가들도 놀랐다. 사실 처음 모이자고 했을 때만 해도 '과연 맛 차이가 날까' '맛이 다르더라도 구분해낼 정도는 안 되지 않을까'란 의심을 했었다. 그런데 한자리에 전국 8개 브랜드 한우를 모아놓고 시식해보니, 맛 차이가 확연했다.

시식은 8월 29일 서울 광화문 한우 전문점 '한육감'에서 진행됐다. 레스토랑 컨설턴트 김인복씨와 식품 전문 MD 김진영씨, 음식칼럼니스트 박정배씨, 뉴욕 3대 스테이크집 중 하나로 꼽히는 BLT 서울지점 헤드셰프 박홍희씨, 본지 음식전문기자 등 5명이 참여했다. 맛을 비교할 기준은 풍미(flavor)와 연도(tenderness), 다즙성(juiciness) 세 가지로 잡았다. 시식자마다 항목별로 1~10점을 매긴 뒤 평균을 냈다. 각 한우 고기를 1㎝ 두께로 자른 뒤 숯불에서 한 면을 1분 25초 구운 다음 뒤집어서 2분을 구웠다. 구운 고기는 1.5㎠ 크기 정사각형으로 잘라 2점씩 시식자에게 제공됐다. 한 점은 간하지 않고 그대로, 나머지 한 점은 천일염만 찍어 맛봤다. 다음 고기로 넘어갈 때는 탄산수로 입을 헹궜다.

◇풍미 짙은 경북 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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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구우면 '마이야르 현상'으로 인해 비로소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풍미가 완성된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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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미란 흔히 말하는 '맛'이다. 혀에서 느끼는 맛(taste)과 코에서 느끼는 냄새(aroma)를 종합한 것이다. 혀로 인지하는 맛은 다섯 가지(단맛·짠맛·신맛·쓴맛·감칠맛)지만, 냄새는 수백 가지가 된다. 미식 경험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코로 느끼는 향이 혀로 느끼는 맛 이상으로 중요한 이유다. 고기를 굽지 않은 상태에선 '맛'밖에 없지만, 고기를 구우면 열이 가해지며 방향 성분이 활성화되고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는 '마이야르 현상'으로 인해 비로소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풍미가 완성된다.

시식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경북 지역 고기의 풍미가 높게 나타났다. 다섯 명의 시식자 모두 경북 의성에서 생산하는 '의성마늘소'의 풍미가 가장 진하다고 느꼈다. 소고기 특유의 구수한 풍미는 유리아미노산, 핵산물질, 지방산 등의 화학적 성분이 결정한다. 강원도 '횡성한우'와 '대관령한우'도 진한 풍미를 지니고 있었다.〈D2~3면 표 참조〉 특히 횡성한우는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한우 맛"이란 평가가 많았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가장 쉽게 맛볼 수 있는 고급 한우가 횡성산이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풍미가 강하다고 반드시 우수한 소고기는 아니다. 개인 입맛에 따라서 너무 짙은 고기맛을 싫어하고 섬세한 맛을 선호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 선호하는 송아지고기는 매우 부드럽지만 돼지 안심이나 심지어 닭고기에 가깝다 할 정도로 풍미가 약하다.

◇연하고 육즙 많은 전라도 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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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 함량만 많다고 우수한 고기가 아니라 지방이 적당량 있어야 입속에서 즙기를 계속 느끼게 된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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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라도 한우는 서양인 입에 더 맞을 수도 있다. 전북 ‘고산미소한우’(완주)와 전남 ‘함평천지한우’는 풍미는 약하지만 다른 어떤 고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특히 송아지를 낳지 않은 암소인 고산미소한우는 ‘살살 녹는다’는 표현에 딱 맞다 싶을 정도로 연하면서 육즙이 풍부했다.

연도 , 즉 고기가 얼마나 연하냐는 서양인들이 고기 품질을 판단할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 연도는 가축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느냐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운송이나 도살 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질긴 고기가 생산된다. 도살 후 온도 등을 제대로 관리 못 해도 고기가 질겨진다. 다즙성은 고기를 씹을 때 육즙이 얼마나 느껴지느냐를 뜻한다. 수분 함량만 많다고 다즙성이 우수한 것이 아니라 지방이 적당량 있어야 입속에서 즙기를 계속 느끼게 된다. 지방이 침 분비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충청도는 대한민국의 중심에 있는 지역답게 풍미·연도·다즙성에서 두루 중간 정도의 수치를 나타냈다. 튀는 개성이 없는 소고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보면 맛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너무 달거나 시거나 짠 음식을 잘 만들어졌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정배씨는 충남 홍성에서 생산하는 ‘토바우한우’에 대해 “밸런스(균형)가 훌륭하다”, 충북 보은 ‘조바우랑한우’는 “씹는 맛이 좋고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음식 전문 MD인 김진영씨는 토바우한우가 “첫맛부터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며 “소금과 함께 먹었을 때 가장 맛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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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차이는 물·해발고도에서

소고기 맛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전국으로 소를 사러 다니는 서울 용산구 한우전문점 ‘참숯고깃골’ 안병칠 대표는 “토질이나 물에 따라 고기 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물 좋은 지역에서 자란 소가 고기 맛도 좋아요. 물 좋은 깊은 산 속에서 키운 소가 좋죠. 너무 더운 지역보다는 날씨 선선한 곳에서 자란 소의 고기 품질이 좋고요. 바닷가는 해풍을 맞아서 소가 크게 자라지 않고 질기기 쉬워요.” 그는 “암소보다 수소가 낫다”고도 했다. “거세해야 살이 많이 찌고 마블링이 잘 되기 때문이지만, 사실 거세하지 않은 수소가 고소해요. 암소는 대개 새끼를 낳으려고 키우기 때문에, 시장에 나오는 건 새끼를 낳지 못하거나 3배·4배(송아지를 3·4차례 출산한) 나이 든 암소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면 누린내가 날 수 있어요.”

◇지역별 맛 차이 확인 의미 있지만, 맹신 마세요

이번 시식은 같은 한우라도 어떤 지역에서 생산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절대적인 평가 기준은 아니다. 우선 동일한 조건에서 비교 시식이 이뤄져야 하는데, 대부분 한우가 2+ 등급이었지만 토바우·조바우랑한우는 1+ 등급이었다. 또 대부분 수소를 거세해 비육한 거세우였지만 완주 고산미소한우는 암소다. 김진영씨는 “우리 형과 나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왔지만 외모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며 “소도 마찬가지로 같은 지역, 농장에서 자랐더라도 맛 차이가 있다”고 했다. 시식 인원이 5명에 불과해 개인 입맛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시중보다 싸고 푸짐… 전국 한우 직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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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지만 값비싼 한우를 부담 없이 맛보고 싶다면 한우 직판장이 있다. 한우 생산자들이 중간 마진 없이 직접 판매해 20~30%가량 싸다. 직판장에는 대개 판매장과 식당이 붙어 있어서, 고기를 사들고 식당으로 가서 쌈채소와 양념, 식사 따위를 챙겨주는 상차림비를 내면 바로 먹을 수도 있다. 고산미소는 전북 완주한우협동조합이 직접 유통하는 정육점식당. 1등급 한우 등심 1근(600g)이 4만1400원(본점 기준)으로 일반 소비자가보다 20%가량 저렴하다.

강원도 영월 영월동강한우타운은 국내 최초로 축산물 이력제를 적용·시행했다. 전북 무주 반햇소는 자체 개발한 산머루 생균제를 먹여 키워 건강하고 질 좋은 한우를 맛볼 수 있다. 구이뿐 아니라 만두·떡갈비, 차돌냉면, 화덕피자 등 이색 한우 요리도 맛볼 수 있다. 마늘목장한우타운은 마늘 산지로 유명한 경북 의성에 있는 한우 구이 전문점이다. 의성 마늘을 섞은 사료를 먹인 한우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전국 3대 불고기 중 하나로 꼽히는 언양불고기를 맛보고 싶다면 울산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한우직판장 갈비구락부에 가볼 만하다. 언양불고기뿐 아니라 꽃등심, 채끝살, 목살, 살치살 등 질 좋은 구이용 한우 6가지 부위도 판다. 이런 곳까지 가기 힘들다면 한우자조금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직거래장터 한우 114 할인몰(http://www.hanwoo114.co.kr)에 들른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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