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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6년 전 오늘…한국 패션계의 큰 별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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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한국 최초 남성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 향년 75세 일기로 별세]

머니투데이

2010년 8월15일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난 앙드레 김의 발인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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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오늘(2010년 8월12일) 저녁 7시40분 한국 패션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대한민국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별세한 것.

앙드레 김은 대장암과 폐렴 합병증으로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 거인이 남긴 굵직한 흔적들을 추억하며 그와 인연을 맺었던 많은 연예인들은 큰 슬픔에 빠졌고 국민들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1935년 8월24일 태어난 앙드레 김은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1961년 디자이너 최경자가 세운 국제복장학원에 1기로 입학해 이듬해인 1962년 졸업했다.

같은 해 소공동에 '살롱 드 앙드레'를 열어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남성 패션디자이너가 됐다. '앙드레'라는 이름은 당시 주한 프랑스외교관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려면 부르기 쉬운 외국 이름이 있어야 한다면서 붙여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본명은 김봉남(金鳳男)이다.

앙드레 김은 1964년 당시 톱스타였던 영화배우 엄앵란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도 개성 있는 디자인과 노력으로 의상 디자인계를 개척해나갔다. 1966년엔 프랑스의상협회의 초청으로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어 '선경(仙境)의 마술'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패션 행보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뻗어 나갔다. 1966년 워싱턴, 1968년과 1970년 뉴욕, 1972년 볼티모어, 1975년 싱가포르·인도네시아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1980년에는 미스유니버스 대회의 지명 디자이너로 활약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수복을 디자인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공식 초청으로 바르셀로나에서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지난 2004년에는 자신의 명의로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있는 건물을 하나 샀다. 당시 '디자이너 생활 40년의 결실'이라며 무척 즐거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바닥부터 벽면까지 온통 순백색인 이른바 '앙드레 김 빌딩'에서 의상을 디자인하고 제작, 전시, 판매했다.

이후 그는 패션뿐만 아니라 보석과 도자기, 속옷, 안경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특허청에 등록된 '앙드레 김' 상표가 무려 17가지에 이를 정도다. 해외 유출 문화재 반환에 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2006년에 '문화재 환수 기금 마련을 위한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앙드레 김' 하면 익숙하게 떠오르는 것은 흰옷, 독특한 화장법, 그리고 특유의 말투다. 한영 혼용체와 독특한 말투는 그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앙드레 김 성대모사는 사람들의 개인기 소재로 많이 쓰이기도 했다.

앙드레 김은 패션쇼에 당대 최고 스타들을 모델로 섭외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의 무대에 서야 비로소 최고의 스타로 인정받는다는 말까지 있었다.

또한 그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인정받은 명실상부 패션계의 거장이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배우 나스타샤 킨스키, 브룩 실즈 등 해외 유명스타도 그가 디자인한 옷을 입었다.

특히 미국 가수 고 마이클 잭슨이 앙드레 김의 의상을 매우 좋아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마이클 잭슨은 앙드레 김에게 백지 수표를 내밀며 전속 디자이너를 제안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서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대신 매년 옷을 보내줬고 마이클 잭슨은 용 무늬 자수가 들어간 앙드레 김의 옷을 입고 각종 시상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 세계는 앙드레 김의 패션에 대한 열정과 공로를 인정했다. 1977년 패션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고 1982년 이탈리아 문화공로훈장, 1997년 화관문화훈장, 2000년 프랑스 예술문학훈장, 2008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차례로 수상했다.

세상을 떠난 다음날인 2010년 8월13일에는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한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1등급)이 추서됐다. 평생 독신으로 살던 그는 입양한 아들 한 명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슈팀 권용범 기자 dragon9tig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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