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Why] 中·베트남 포기하고 의류 공장을 미국에?… "실 하나부터 다 달라야 하니까요"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웃소싱 안하는 美브랜드 '센존' 공장 가보니…

남다른 품질 추구… 특별한 디자인 하려면 중국산 재료로는 한계

근로자들이 회사의 꽃… 숙련 기술자에 인센티브, 주4일 근무·운동 지원

"옷 만드는 회사들은 대부분 공장을 중국이나 베트남에 두지 않나요?" 지난 3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공장에서 만난 패션회사 센존(St. John)의 CEO 브루스 페터(Fetter·61)씨는 이 질문에 눈을 찡긋했다. "대부분이 그렇다고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죠. 우린 인건비 때문에 아웃소싱을 하는 것만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만들면 더 잘 만들 수 있는걸요."

센존은 1962년 패션모델 마리 세인트 존 그레이(Marie St. John Gray)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니트 기계를 사들여 직접 옷을 만들면서 시작된 패션회사다. 처음엔 20~30달러짜리 옷을 만들어 파는 작은 회사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 26개국 230여개 매장을 거느린 고급 브랜드로 성장했다. 니트 기계로 짜낸 재킷 하나가 보통 2000~4000달러씩 한다.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미국 대선 경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등이 즐겨 입는 옷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들 옷을 만드는 공장의 생산 라인 80%는 어바인에, 20%는 멕시코에 있다. 많은 패션회사가 생산 라인 전체를 보통 중국·인도·베트남 등에 분산시켜 두는 것과 대조된다. 페터씨는 "미국 경제가 지금 성장하고 있는 건 제조업이 부활했기 때문이고, 그건 미국 공장이 가열하게 돌아가서 그렇다"면서 "우리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핵심 목표로 삼겠다고 선언했던 시절 이전부터 미국에서 쭉 옷을 만들어왔다. 그게 가장 현명한 결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페터씨와 어바인 공장 구석구석을 함께 돌면서, 왜 이들이 상대적으로 비싼 인건비를 감수하면서도 미국에서 생산을 고집해왔는지 들어봤다. 페터씨는 "살아남으려면 남달라야 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선일보

5일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본사에서 조선일보 ‘Why?’ 독자를 위해 카메라 앞에 앉은 센존 CEO 브루스 페터. 그는 “우리가 눈앞의 손익만을 따져 공장을 옮기거나 섣불리 아웃소싱을 하려 했다면 지금의 센존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건비가 비싸도 미국에서 만든다

페터씨와 처음 가본 곳은 실(yarn) 생산 공장이었다. 센존의 미국 공장은 크게 실·염색·니트 제작·바느질 공장 등 네 곳으로 나뉜다. 전체 공장 넓이는 1만3935㎡(약 4215평) 정도. 멕시코 공장에선 센존의 보석 액세서리를 만들어낸다. 페터씨는 "모든 작업의 시작은 실 생산에 있다"고 했다. 중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다량의 실을 사들이는 다른 업체와는 달리, 센존은 실의 70~80%를 미국에서 직접 짜낸다. 1년 동안 이들이 짜내는 실의 양은 대략 100만 파운드(약 45만3500㎏). 페터씨는 "외국에서 사오는 실로는 아쉬운 게 많다"고 했다. 뭐가 아쉽다는 걸까. 공장 한가득 빙글빙글 돌고 있는 수십만 개 뿔(cone)에 감기는 실을 일일이 살펴보니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떤 실은 염색만 세 번 돼 있었다. 푸른 빛깔의 가느다란 빗살무늬가 찍힌 실 위에 다시 작은 붉은 빛깔 점을 찍고, 그 위에 다시 투명한 시퀸(반짝이)을 일일이 감고 붙여서 다시 광택이 있는 흰 빛깔로 전체 염색을 했다. "옷이 좋으려면 천이 남달라야 하고 천이 특별해지려면 실이 또 남달라야 하는데, 밖에서 사온 실이나 천으로는 디자인 욕구가 다 채워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돈을 더 들여가면서 우리가 직접 실을 만들고 천을 짜낸다."

완성된 실은 이제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움직이는 베틀 기계로 옮겨진다. 기계는 즉각 2~3개, 때론 10~20개의 각기 다른 실을 교직(交織)해 뜨개질 천(knit)을 짜내기 시작한다. 페터씨는 "처음엔 수작업이 많이 필요한 전통 기법의 베틀을 썼는데, 1990년쯤 한 대 10만 달러(약 1억2000만원)씩 하는 최첨단 베틀 기계를 일본과 독일에서 각각 수십 대 들여왔다"고 했다. 공장 한쪽엔 '니팅 랩(knitting lab·뜨개질 실험실)'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래밍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기계가 짜낼 프린트와 빛깔, 실의 종류를 입력한다.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팀장인 티파니 아나스타사키스(Anastasakis)씨가 완성된 천의 샘플을 들고 와서 손에 쥐여줬다. 십여 가지 빛깔의 실이 한데 엮여 꽃무늬를 이루는 천이었다. "그림을 인쇄해서 천에 찍어내는 것과는 많이 다르죠." 실제로 그랬다. 이 회사 수석 디자이너 그렉 마일러(Myler)씨는 "많은 패션회사가 매년 그해의 유행을 미리 예측해 프랑스나 이탈리아 박람회에서 천을 사들이고 그 재료를 바탕으로 옷을 만든다면, 우리는 원하는 디자인의 천을 현지에서 바로바로 뽑아낼 수 있다"면서 "바로 이 점에 끌려 나 역시 센존으로 옮겨왔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미국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센존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 센존의 이브닝드레스는 5000~7000달러씩 한다. / 센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5년씩 근속하는 기술자들

페터씨와 차를 타고 이번엔 바느질 공장으로 건너왔다. 공장 문을 열자마자 수백 명 여성 기술자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바느질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페터씨가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 회사의 꽃이자 자랑이죠. 여기 있는 기술자들은 최소 5년, 길게는 35년씩 우리 회사에서 일했어요." 기술자들의 국적은 제각각이다. 미국·영국 출신도 있고 중국·베트남·파키스탄·터키 출신도 있다.

작업은 제법 고돼 보였다. 몇몇은 베틀 기계에서 짜낸 뜨개질 천을 일일이 손으로 다려서 일정한 사이즈와 두께로 맞추는 작업을 했고, 어떤 이들은 이 천을 각각 소매·등판·앞가슴 부분 등으로 조각하고 연결하는 일을 했다. 옷에 자수만을 놓는 이도 있었고, 옷에 자잘한 반짝이나 구슬을 특별한 모양으로 붙이기 위해 수천 개의 모양 틀에 구슬이나 보석을 담고 이를 옷에 바느질로 고정시키는 작업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의 기술자는 이 일을 하루 10시간씩 주 4일 동안 지속한다. 이 회사에서 20년 넘게 염색 기술자로 일한 독일 출신 콘라드 리드(Reed)씨는 "똑같은 작업을 오래하면 몸이 아프기 마련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이들을 위한 운동·요가·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근속자일수록 인센티브를 더 주고 매년 이들을 위한 시상식도 따로 연다. 기술자일수록 우대받는다. 가족 구성원 서너명이 다 같이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바느질 기술자 베티(Betty)씨 역시 "이 회사에서 일한 지 15년 됐다. 친척 언니는 이곳에서 25년을 일했다. 작업 자체가 쉽진 않지만 제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보람 있고 또 즐겁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실을 염색하는 모습. 디자인 팀에서 요구하는 빛깔을 뽑아낼 때까지 미국 현지 공장 기술자들이 한 뭉치의 실을 수차례 염색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바느질 공장에서 기술자가 손바느질로 옷을 꿰매고 있다. 천이 상할까 봐 재봉틀로 박지 않고 손바느질을 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옷을 장식하는 보석과 구슬을 일일이 손으로 고정시키는 모습. 한 벌의 옷을 완성하려면 첨단 기술과 수작업이 동시에 필요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성이 잘 돼야 우리가 잘 된다

공장에서 본사 사무실로 옮겨 인터뷰를 계속했다. 페터씨에게 물었다. "이런 수작업과 첨단 기계 공정을 거쳐 완성한 옷이라고 해도 여전히 값비싸다. 센존의 고객은 어떤 사람들인가?" 페터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힘과 능력을 자랑하는 여성이 우리 고객이다. 이런 여성들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잘 된다. 우리는 그래서 여성의 사회 지위가 올라갈수록 있도록 열심히 돕고 있다"고 했다.

센존은 매년 어바인을 비롯한 미국 내 수십여개 커뮤니티에 센존의 옷 수백 벌씩을 기부한다. 페터씨는 "취업 면접시험을 보려는 여성들에게 옷을 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여성들이 취업을 하고 진급하고 매니저가 되고 사장이 되고 회장이 돼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우리 옷을 살 수 있다. 그렇지 않겠는가? 우리는 하이힐을 신고 달려나가는 여성들, 그들의 속도만큼 성장하는 회사다."

센존이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에서 활동하는 IT기업 여성 리더 75명을 선정해 이들을 위한 포럼을 열고 옷을 협찬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페터씨는 "우리 옷을 앤젤리나 졸리나 케이트 윈슬렛 같은 할리우드 배우가 입을 때도 기쁘지만, 힐러리 클린턴이나 칼리 피오리나 같은 여성들이 현장에서 바쁘게 일하기 위해 입을 때 또한 즐겁다"면서 "이들이 우리 옷을 입고 나가 바쁘게 할 일이 많을수록 미국이 한 걸음 또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센존은 한국에 현재 7개 매장을 두고 있다. 페터씨는 "1998년 한국에 첫 매장을 냈다. 센존의 첫 아시아 진출이기도 했다"면서 "한국 고객들은 유행을 주도할 줄 안다. 한국 고객들이 입어야 다른 아시아 고객들도 따라 입는다. 우리가 종종 한국 고객만을 위한 상품(exclusive item)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페터씨는 이렇게 물었다. "한국의 패션 기업은 어떻습니까?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의류를 어디서 생산하고 또 누굴 위해 만드나요?" 한국의 제조업이라는 과녁을 향한 작은 화살처럼 느껴졌다.



[어바인(미국)=송혜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