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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메르스’ 슈퍼 전파자는 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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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대응 실패로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한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참사’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기억하는 국회 보건복지위 여야 관계자 2명이 최근 똑같이 언급한 이야기다. 당시 보건당국의 책임자였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새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비판한 것이다. 전직 장관이 산하기관의 기관장에 지원한 만큼 다른 경쟁 후보들이 희망을 아예 접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메르스 확산에 책임을 져야 할 인사의 무책임한 지원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12월 17일 현재 정부의 메르스 현황판에는 치료 중 환자 수 2명, 퇴원 환자 146명, 격리 해제 수 1만6752명, 확진 환자 수 186명, 사망자 수 38명으로 나타나 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메르스 감염으로 고통받고, 격리됨으로써 불편을 겪었지만 아직까지 누구의 책임인지는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올해 안에 메르스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2015년 봄에 시작된 메르스 참사의 진상이 올해 말에야 제대로 밝혀질지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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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선별진료소가 설치된 삼성서울병원 야외 주차건물에서 의료진들이 방역복을 착용하고 근무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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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당국의 부실과 정부의 뒷북 대응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참사였던 메르스의 확산은 봄이 절정기에 달한 5월에 시작됐다. 최초 감염자는 바레인에서 카타르를 거쳐 5월 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 환자는 일주일 후 고열과 기침 증상이 나타나면서 네 군데 병원을 거쳤다. 5월 20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최초로 메르스 감염자로 확진됐다. 이때 이미 메르스 1번 환자의 부인 역시 메르스에 감염됐고, 1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전에 입원했던 평택성모병원이 메르스의 첫 번째 대규모 확산지가 됐다. 단순히 세계보건기구(WHO)의 메르스 대응지침을 따른 방역당국의 소극적인 초기 대응은 실패했다. 병원 내 감염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병동 폐쇄 역시 메르스 확산에 불을 지폈다.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메르스에 감염된 14번 환자가 병원 폐쇄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들어오면서 슈퍼 전파자가 됐다.

6월 1일 첫 사망자가 발생했고, 메르스 감염자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정부의 뒷북 대응은 메르스 확산에 불쏘시개가 됐다.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자, 국민들의 공포심은 더욱 커졌다. 첫 환자의 감염을 확인한 지 18일이 지난 6월 7일 정부는 메르스 감염자가 거쳐간 병원 명단을 처음 공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남인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정부는 신종 감염병 대비와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메르스의 국내 유입 차단에 실패하고 방역의 골든 타임을 놓쳐 확산 방지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6월 초 감염자가 100명을 넘어서고 격리자가 수천명에 이르면서 메르스의 진짜 모습이 하나둘 드러났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방역 역량 역시 민낯을 드러냈다. 의료선진국을 자부하던 우리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메르스 감염환자가 많다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병원으로 소문난 삼성서울병원의 응급실이 감염병에 취약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사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또한 메르스 확산 초기에 메르스 3번 환자의 아들이 홍콩을 경유해 중국에 입국하면서 중국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격리 대상자를 출국시킴으로써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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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전문가 차관 신설은 유야무야

7월 이후 수그러든 메르스는 아직도 메르스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소식으로 다시 각인되고 있다. 지난 11월 25일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80번째 확진자(남·35세)가 기저질환인 악성림프종 치료 중 경과가 급격히 악화돼 사망했음을 밝혔다. 12월 6일에는 메르스 확진 이후 치료를 받던 35번 환자가 퇴원했다. 현재 입원치료 중인 환자는 2명이다. 아직도 메르스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12월 1일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12:00부로 감염병 위기경보단계를 현행 ‘주의’에서 ‘관심’으로 하향조정했다”고 밝혔다. 메르스 위기경보수준은 ‘관심·주의·경계·심각’으로 나눠진다. 이 중 가장 가벼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다.

메르스가 낳은 사회 현상은 감염병에 대한 공포였다.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전 국민은 공포에 떨었다. 무더운 날씨가 시작됐지만 길거리에서 사람들은 마스크를 꼈다. 사람들은 바깥 약속을 대부분 최소했다. 밤이면 길거리가 한산해졌다. 메르스 전염 위험으로 격리됐던 인원이 늘어나면서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불경기이던 경제는 더욱 침체됐다.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이나 시장 상인들은 손님이 급감하면서 두 번 울게 됐다. 국내총생산(GDP)의 0.4%인 6조원이 메르스 탓에 날아가버렸다는 통계도 나왔다.

대형재난을 겪었지만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복지부에 복수 차관제를 도입해 새 차관 자리에 보건 전문가를 임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유야무야됐다.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됐지만 질병관리본부장을 실장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하는 선에서 미봉됐다. 우석균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메르스 확산 이후 정부가 포괄간호서비스제 실시, 문병 제한 같은 해결책을 내놓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며 “모든 문제는 대형병원 중심의 의료산업화 정책에서 비롯된다”고 비판했다. 우 위원장은 “간호사 1명이 보살펴야 하는 환자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3배 이상 많은데, 병원으로서는 돈이 많이 드는 포괄간호서비스제를 실시할 수도 없고, 병원에 베이커리·커피숍 등이 들어가는 마당에 문병을 제한하면 병원의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우 위원장은 또 “정부는 병원의 이름을 공개하면 병원의 손해가 클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쉬쉬하다가 메르스가 확산돼 국민을 사지와 공포에 몰아넣었다”며 “메르스를 계기로 의료산업화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메르스 유행과 함께 이에 관련된 단어도 유행했다. ‘슈퍼 전파자’가 대표적인 유행어다. 메르스의 슈퍼 전파자는 1번 환자, 14번 환자, 16번 환자, 76번 환자였다. 14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접촉한 594명 가운데 85명에게 메르스를 전염시킬 정도로 전염력이 높았다.

사람들은 슈퍼 전파자를 비난했지만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메르스 방역에 무능했던 정부였다. 메르스가 확산되던 초기에 정부는 우왕좌왕하며 사태를 키웠다.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에게 전가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6월 22일 오전 국회에서 메르스 관련 특별 성명을 발표하며 “‘메르스 슈퍼 전파자’는 다름 아닌 정부 자신”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정부의 불통, 무능, 무책임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했으며 민생경제를 추락시켰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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