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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운전자 없는 자동차 타고 달린 느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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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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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친풀뉴스 공식 도로주행 첫 시승기

우리나라 길을 달린 최초의 자동차는 1903년 들여온 고종 황제의 ‘어차’(포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으로 100여년이 지나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우리나라 도로를 달린 최초의 날짜는 2015년 11월22일이다’라는 기록이 역사에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날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 등이 주최한 ‘창조경제 박람회’ 개막을 앞두고 사전 행사로 서울 영동대교 북단에서 다리 건너 강남 코엑스까지 약 3㎞의 도로를 자율주행 자동차가 달리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사람이 몰지 않는 자동차가 ‘공식적으로’ 실제 도로를 달리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실 비공식적으로는 국내 자율주행차 연구팀이 도로에서 몰래 운행해본 적이 있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시승 행사엔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자율주행차가 쓰였는데 최양희 미래부 장관이 탔습니다.

29일, 그에 이은 두번째이자 박람회 마지막날 행사로 다시 한번 자율주행 시승식이 열렸습니다. 추첨을 해 3개 언론 매체에 시승 기회를 주었는데 운 좋게 당첨된 덕분에 자율주행차의 도로 시승 기회를 잡았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영동대교 북단에 도착했습니다. 이날 시승식에는 국내 자율주행차를 연구하는 대학 연구진 가운데 대표적인 7개 팀이 참여했습니다. 국민대 ‘KUL’, 건국대 ‘KUAV’, 계명대 ‘비사’, 서울대 ‘Team SNU’, 성균관대 ‘SAVE’, 카이스트 ‘EureCar’, 한양대 ‘A1’ 등입니다. 이날 저는 국민대팀의 자율주행차에 탑승해 운명을 같이하기로 했습니다.

레이저·카메라 센서로 주변 파악

이날 쓰인 자율주행차는 흔히 보는 일반 승용차를 가져다가 핸들과 액셀 등 조종장치를 기계가 조작할 수 있도록 개조하고 이를 두뇌에 해당하는 컴퓨터에 연결한 차들입니다. 운행의 핵심 기술은 센서입니다. 크게 두 종류인데 레이저를 쏘고 반사값을 얻어 주변 사물과 거리를 측정하는 레이저 센서, 해당 사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분석하는 카메라 센서입니다. 이 결과를 조합해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속도를 조절하고 방향을 바꾸는 식으로 자동차가 움직입니다.

뒷좌석 쿠션 뒤 컴퓨터가 운전

자율주행차는 겉보기로는 당장 알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조석 뒷자리에 앉는 순간 바로 감이 오더군요. 운전자가 있을 자리를 휑하니 비워둔 채로 움직일 차에 탔다는 것을요. 문득 ‘본인은 위험을 알고 탔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을 했던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보조석 앞에 달린 제어 모니터와 뒷자리 양편에 달린 센서 모니터들은 차가 멈춘 동안에도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함께 탄 김종민(28) 연구원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빗방울까지 센서에 잡히기 때문에 착오를 일으킬 위험도 크다”며 겁을 주더군요. 차에는 모두 7대의 컴퓨터가 탑재되어 있는데 뒷자리 시트 안쪽에 감춰져 있다고 합니다. 운전자가 내가 앉은 쿠션 뒤에 깔린 컴퓨터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막상 주행을 시작하니 우려는 금새 녹아버리고 오히려 싱겁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람이 모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차는 부드럽게 나아갔거든요. 사거리에 가까워 오면 속도를 줄이는 폼이 배려 있는 운전자를 떠올리게도 했습니다. 김 연구원은 “미리 짜둔 컴퓨터 알고리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원래 목적지까지 구간은 차와 사람의 출입을 통제할 예정이었는데 건널목을 건너는 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돌발 상황에서도 차는 안정적으로 가고 멈추고를 무사히 해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시승 행사를 계기로 국내에 자율주행차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발전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국민대팀을 지도하고 있는 김정하 교수(자동차공학과)는 “자율주행차는 개발 수준을 0에서 완전 자율주행인 4까지 5단계로 구분하는데 미국이 3이라면 우리나라는 2.5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추격을 서두르면 따라잡을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돌발 상황에서도 안정적 주행

하지만 자율주행차를 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아직 엇갈렸습니다. 아이와 함께 박람회를 찾은 정아무개(48)씨는 “실생활에 무인차가 한 걸음 다가온 것을 느껴 기대된다”고 했지만, 다른 관람자 서윤정(45)씨는 “기계에 안전을 맡긴다는 게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법체계가 ‘운전자’를 상정해 짜여 있습니다. 자율주행차는 현행법으론 규제가 어려운 외곽의 존재인 셈이죠. 미국에선 구글차가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상황들이 발생하면서 ‘그럼 누구에게 딱지를 떼나’ 하는 논란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율주행을 이미 도입한 비행기가 타산지석이 될 수도 있겠네요. 디지털 사상가 니컬러스 카의 저서 <유리감옥>을 보면 비행기의 자동운항은 파일럿들의 노동 강도를 줄이고 비행 효율을 크게 높여주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큰 인명 사고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기술일수록 의존에 앞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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