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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오너 일가 배불리는 면세점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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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롯데, 지난해 영업이익 96% 면세점서 나와… ‘황금알 낳는’ 특혜성 독과점사업



지난 11월 14일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계기로 업계와 정치권에서 면세점 특허를 놓고 여전히 말들이 많다. 떨어진 롯데나 SK는 그들대로 5년짜리 사업의 한계를 지적하며 볼멘소리를 한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늘었다. 면세점 사업에도 한국 경제의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숨어 있다. 특혜성 독과점사업의 열매 상당 부분을 재벌 오너 일가가 따먹고, 해외로도 상당 부분이 빠져나가는 구조라면 어떻게 봐야 할까. 면세점 사업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근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됐다.

국내 면세점 사업의 선두주자이자 산 역사라고 할 만한 롯데를 보면 거의 모든 모순점이 드러난다. 서울 을지로에 자리한 40년 역사의 호텔롯데는 34층에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 집무실이 있을 만큼 그룹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상식처럼 호텔을 운영해서 돈을 벌고, 그룹을 키워 왔을까. 사실은 좀 다르다. 비결은 뜻밖에 면세점 사업이다.

신영자·신격호·신동주 수억~수십억 챙겨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호텔롯데 매출(4조7165억원)의 83.7%(3조9494억원), 영업이익(4073억원)의 96.1%(3915억원)가 면세점 사업에서 나왔다. 호텔업은 243억원 이익을 냈으나 롯데월드(-28억원), 리조트(-29억원) 등은 모두 적자였다. 소공동 본점을 비롯한 롯데의 서울, 부산 등 시내 면세점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13%(3933억원)나 된다고 알려졌다. 이것만 보면 회사 이름을 아예 롯데면세점으로 바꿔야 할 판이다. 세간에서 일컫듯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맞는 것 같다.

황금알이 누구에게 많이 굴러들어갔는지를 살펴보는 것 또한 면세점 사업의 성격 규정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신영자 호텔롯데 이사(73·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는 지난해만 성과급 11억6700만원을 더해 총 30억6700만원을 받았다. 호텔롯데에서 면세점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급여의 대부분을 면세점으로 챙겼다.

회사 측은 사업보고서에서 “주총에서 승인된 보수총액 한도 내에서 매출액, 영업이익으로 구성된 계량지표와 리더십, 전문성, 윤리경영, 기타 회사 기여도로 구성된 비계량지표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11억6700만원을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량지표와 관련해 본 등기임원(신영자)이 담당하는 면세사업부의 2013년 매출이 전년 대비 약 12%,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18% 증가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신 이사는 앞서 2013년도에도 32억3780만원을 받아갔다. 회사 측은 “면세사업부의 2014년 매출이 전년 대비 약 25%,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46% 증가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호텔롯데 등기임원인 신격호 총괄회장과 아들 신동주 이사는 지난해 각각 8억7500만원, 8억2800만원씩을 급여로 받았다. 신동빈 회장은 미등기 임원이어서 급여액이 드러나지 않는다.

신라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신라의 이부진 사장도 비슷하다. 이 사장은 지난해 급여 11억9500만원과 상여금 14억1500만원, 기타 근로소득 500만원을 더해 총 26억1500만원을 호텔신라에서 받았다. 호텔신라는 사업보고서에서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2014년 매출 2조9090억원, 영업이익 1390억원을 달성한 점을 감안해 상여금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부진 사장은 2013년에는 상여 5억6900만원에, 기타 근로소득 14억원을 포함해 총 30억900만원을 보수로 챙겼다. 이 사장은 올해 상반기에는 총 11억2300만원을 받아갔다.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도 작년에 26억 받아

호텔, 생활레저업 등을 하는 호텔신라의 지난해 매출(2조9089억원)에서 면세점 사업이 89.8%를 차지했다. 영업이익은 호텔신라 전체보다 많은 1489억원(107.2%)을 면세점 사업에서 거뒀다. 호텔사업은 206억원 적자를 냈지만, 면세점 이익이 전부 메운 것이다. 이부진 사장의 월급 대다수가 면세점 쪽에서 나온 셈이다. 참고로 지난해 매출 59조원, 영업이익 1조8285억원을 거둔 LG전자의 구본준 부회장 급여는 13억7400만원이었다. 면세점 문제를 수년 동안 지적해온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면세점은 일반 사업과 달리 정부에서 특허권을 받아야 한다”며 “정부의 특혜로 얻은 수익 다수를 오너 가족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면세점 사업은 면허를 받기 때문에 ‘특혜’ 성격을 피할 수 없다. 면세점은 내국인이 밖에서 뿌릴 돈을 안으로 거둬들이고, 외국인의 지갑을 열게 하는 ‘외화벌이 효자 산업’ 성격이 분명히 있다. 그 대신 면세점 사업은 관광 진흥을 위해 정부가 관세, 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같은 세금 징수를 포기한 특수한 영역이다. 특정 기업에 독점적인 판매 특허를 제공한다. 말하자면, 기업에게 거둬서 국민에게 쓰일 세금을 덜 받고 운영되는 사업이므로 혜택은 사회에 상당 부분 쓰여야 마땅해 보인다.

그러나 기업이 정부에 낸 특허수수료가 매출 및 이익에 비해 크게 낮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지난해 국내 면세점 시장규모는 8조3000억원 수준이지만, 특허수수료는 5억8203만원이었다. 그나마 지난해 법이 개정되어 매출규모에 따라 특허수수료율이 적용(대기업의 경우 매출의 0.05%)된 것이다. 앞서 2013년의 경우 롯데면세점은 매출 3조5758억원에, 특허수수료는 512만원을 냈다. 본점인 소공점은 1조 매출에 특허수수료가 90만원만 냈다. 신라면세점은 같은 해 매출 2조904억원에 특허수수료 309만원을 냈을 뿐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면세점과 같이 정부 특허를 받고 운영되는 카지노 사업은 특허수수료율이 10%다.

이것도 모자라 배당금 형태로 수익이 해외로 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홍종학 의원은 호텔롯데가 지난 5년간 일본 기업에 1200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지급한 사실을 지난 국감에서 밝혔다. 홍 의원은 “지난해 호텔롯데 매출의 83.7%가 롯데면세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세수를 포기하면서 특허를 준 면세점 사업으로 얻은 수익의 대부분이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호텔롯데는 주당 500원 현금배당을 실시했고, 배당금 총 254억원이 일본 쪽으로 흘러갔다. 올해 6월 말 기준 호텔롯데 최대주주는 19.07%를 보유한 일본 롯데홀딩스다. 이밖에 광윤사, L투자회사 등 일본 기업이 모두 호텔롯데의 주주사다.

면세점은 성격상 고가의 해외 명품 브랜드를 주로 판매하는 점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2010년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18개 주요 면세점의 품목별 비중을 보면 주로 명품 핸드백과 시계가 서울 시내 면세점 위주로 팔린 사실이 드러난다. 호텔롯데는 핸드백 매출이 5901억6400만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소공점에서만 3396억7700만원어치가 팔렸다. 시계는 3778억7900만원어치가 판매됐다. 호텔신라도 핸드백이 3115억7500만원 매출을 올려 가장 많이 나간 품목이었다. 시계는 2470억5800만원어치가 팔렸다.

브랜드별로는 지난해 롯데면세점 소공점 판매 1위는 루이비통으로 722억8000만원어치가 나갔다. 이어 MCM(663억4300만원), 샤넬(559억7400만원), 프라다(488억9900만원)의 순서다. 상위 10위 브랜드 가운데 국산은 MCM이 유일하다. 소공점의 시계 판매 1위는 롤렉스로, 517억9100만원을 기록했다. 이어 까르띠에(426억8200만원), 오메가(338억5900만원) 등 순서다. 호텔신라 서울점도 핸드백은 루이비통(269억45만원)을, 시계는 롤렉스(354억3500만원)를 가장 많이 팔았다. 판매액 상위권에 국산은 후, 설화수, 라네즈 같은 화장품이나 담배, 홍삼을 빼면 많지 않다. 지난해 대기업(롯데·신라·SK·신세계) 면세점 전체 매출의 69%가 해외 상품이었다. 홍 의원은 “면세점 사업을 통해 재벌 대기업과 해외 명품 브랜드의 배를 불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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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익에 비해 특허수수료 ‘쥐꼬리’

서울 등 대도시 중심의 대기업 면세점 쏠림 현상도 논란거리가 돼 왔다. 관광 활성화 측면에서 지역 면세점을 키울 필요성이 있어서다. 지난해 서울, 부산 등 대도시와 제주 및 공항이 위치한 인천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 면세점 매출 비중은 2%를 조금 넘는 수준이며 매년 줄어들고 있다. 반면 서울 시내 면세점의 매출액은 지난 4년간 10% 늘었다. 롯데, 신세계 같은 대기업 면세점 매출은 7조3398억원으로 88.3%나 차지했다.

면세점 운영과정에 연간 수천억원대의 ‘고객 모집용 수수료(리베이트)’가 동원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4년간 재벌 면세점의 리베이트 금액은 평균 60% 이상 늘었다. 대기업 면세점의 리베이트 규모는 2011년 매출의 2.8%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7.1%까지 치솟았다. 중소·중견 면세점은 지난해 대기업 면세점 리베이트의 6% 수준인 307억원이었다. 이것도 가장 오래된 동화면세점의 리베이트가 306억원을 차지했다. 중소 면세점은 리베이트를 통한 판촉활동을 거의 못한다는 뜻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경제정책팀장은 “특혜성 사업인 면세점 허가가 롯데, 삼성처럼 일부 대기업에 편중된 건 문제가 있고, 얼마를 남기는지 정부도 정확히 파악조차 못한다”고 지적했다. 권 팀장은 “통신사에 주파수를 할당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매 방식을 도입해야 면세점 사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수익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70~1980년대 수출입국을 지향하며 외화벌이에 기치를 올릴 때 면세점은 애국사업으로 보였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바뀐 지금도 같은 가치를 부여해도 될지, 편승한 재벌 오너 일가가 수익을 다수 챙기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정치권, 면세점 제도 개편 갑론을박



두산과 신세계의 신규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제도 개편 움직임이 일고 있다. 5년으로 줄인 특허기간을 다시 예전처럼 10년으로 늘리자는 주장도 있고, 특허수수료를 올려야 한다거나 지방·중소 면세점 확대나 리베이트 관행 개선 같은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허 기간을 늘리자는 주장의 배경에는 일단 고용불안 문제가 있다. 운영 면에서도 5년 시한은 빠듯하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현재 5년으로 제한돼 있는 사업권을 2012년까지처럼 10년으로 재조정하는 관세법 개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허수수료가 매출 및 수익 비해 낮아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경매입찰 방식으로 바꿔서 사업권을 내주자는 견해가 나왔다.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경매에 부쳐 높은 가격을 써내는 업체를 선정하자는 관세법 개정안을 지난 9월 30일 발의했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도 경매 방식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틀에서 특허수수료를 대폭 높이려는 움직임도 있다. 홍종학 의원은 11월 8일 면세점 특허수수료를 지금의 100배인 5%까지 올리는 관세법 개정안을 냈다. 현재 매출액의 0.05%(중소기업은 0.01%)인 특허수수료가 너무 낮아 대기업은 5%, 중소기업은 1%까지 올리자는 내용이다.

여행사나 여행가이드에게 고객 유치 대가로 지급하는 리베이트를 규제하자는 법안도 제시됐다. 윤호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원칙적으로는 리베이트 제공을 금지하고, 시장의 공정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없다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 안에서는 일부 허용하자’는 관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매출의 20~30% 정도가 리베이트로 통용된다. 롯데, 신라, SK, 신세계 등 4개 대기업은 지난해 시내 면세점 매출 5조790억원의 10.2%(5175억원)를 모객용 리베이트로 썼다.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은 매출액의 5%(중소·중견기업은 1%) 안에서 관광진흥기여금으로 납부하도록 초과이윤을 환수하자는 견해를 냈다. 류 의원 측은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라 제조업 영업이익률(약 4%)과 면세점 영업이익률(약 8%)의 차이를 고려해 환수하되, 일률적으로 할 건 아니고 경기상황을 봐서 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면세점 특허제를 아예 폐지하고, 신고만으로 자유롭게 하는 등록제로 전환하자는 의견도 있다. 또 윤호중 의원은 ‘담배와 술 등은 중소·중견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에서만 판매하도록 하자’는 관세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홍종학 의원은 면세점 면적을 기준으로 특허를 중소기업에 30%, 한국관광공사 및 지방공기업에 20%를 할당하는 관세법 개정안도 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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