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커버스토리] 반세기 버텨온 약방 정겹구나 … ‘새우깡’ 먹는 갈매기 반갑구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다리 놓인 교동도, 다리 놓일 석모도

강화도에는 사람이 사는 섬이 모두 10개가 있다. 본섬을 포함한 숫자다. 이 중에서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는 두 섬이 교동도와 석모도다. 두 섬은 전혀 다른 풍경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섬 전체가 출입통제구역에 속한 교동도가 우리네 옛 풍경을 더듬으려고 찾아가는 여행지라면, 석모도는 하루 나들이로 유명한 수도권 인근 여행지다. 늦여름, 진짜 여유를 누리기 위한 여행지로 두 섬을 갔다왔는데 마침 남북관계가 요동치면 서 이번 늦여름 섬 여행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교동도 │ 추억과 아픔이 있는 섬

중앙일보

교동도 대룡시장은 1960~7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다. 50년 이상 묵은 약방과 시계방, 이발소가 아직도 문을 열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광복 70년.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지만 교동도는 빛바랜 흑백영화 같은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시장, 한국전쟁 때 피난 온 실향민의 굵게 팬 주름진 얼굴, 여전히 냉전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철책선. 교동도에는 추억과 그리움, 이별의 슬픔과 아픔이 뒤섞여 있었다.

중앙일보

50년이 넘은 대룡시장 시계방. 올해 일흔일곱 살인 황세환 씨가 시계를 고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교동도 여행 1번지는 대룡시장이다. 교동면사무소 인근 대룡시장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인근에 노래방·편의점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일제 강점기 시대 건물이 남아 있다. 마치 1960~70년대의 거리 풍경 같다. 온갖 풍상에도 반세기 넘게 꿋꿋이 버텨온 시계방이나 이발관·약방·다방 등을 보고 있노라면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시계방 주인 황세환(77) 할아버지는 교동도 토박이다. 교동도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통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고향 친구나 피난온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났지만 내 기억은 저기 멈춘 괘종 시계처럼 옛날 그대로여. 시계방을 시작한 것이 한국전쟁 이후니깐 60년쯤 됐지. 한 때는 참 장사도 잘 됐는데….”

황 할아버지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추억이 깃든 고향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언론에 여러 번 소개되면서 대룡시장의 스타가 된 교동이발관 지광식(76) 사장의 고향은, 바로 교동도에서 보이는 황해도 연백이다.

“빨갱이 피해서 전쟁통에 잠깐 내려온 게 벌써 65년이나 됐어. 한 때 3만 명이나 되던 고향 사람들이 지금은 100명도 안돼.”

교동 이발관도 주인을 따라 많이 늙었다. 벽에 걸린 이용사 면허증이 65년 7월10일 발급됐으니 50년이 넘었다. 빗·가위·솔·면도 크림통도 수십 년은 된 듯했다.

대룡시장을 벗어나 교동도에서 가장 북쪽인 인사리 북진나루로 걸음을 옮겼다. 넓은 논이 눈에 들어왔다. 안내를 맡은 한기춘(66) 교동역사문화 협의회장은 “원래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이었는데 피난민과 교동도 사람들이 억척스럽게 간척을 해서 만든 논”이라고 했다. 섬이지만 논만 2300만㎡(약 700만 평)나 된다.

“한 때는 교동도 한 해 쌀 생산량이 인천시민 3년 먹을 쌀과 맞먹었어. 지금도 교동쌀은 유명하잖아.”

간척지가 끝나는 곳에 철책선이 있었다. 철책 너머로 황해도 땅의 연백평야가 보였다. “맑은 날에는 연백평야에서 노는 개도 보일 정도로 가까워”라고 한 회장이 말했다. 가장 가까운 거리는 약 2㎞. 진짜 개가 보이겠느냐마는 그만큼 가깝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듯했다.

중앙일보

교동도 철책 앞에서 바라본 연백 마을. 약 2㎞ 거리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아이들은 연백 5일장을 구경하려고 헤엄쳐서 바다를 건넜다고 해. 물때를 맞추지 못해 다음날 넘어와서는 부모님에게 혼나기도 했고….”

지금은 철책에 가로막혀 실향민들은 눈으로만 고향을 오가고 있을 뿐이다. 교동도는 섬 전체가 철책에 갇혀 있다. 해안선 3㎞를 제외한 섬 전체에 철책이 있다.

“교동 숭어라고 들어봤어? 70년대까지만 해도 배타고 북쪽바다로 나가서 많이 잡았었지. 그런데 80년대부터 군의 통제가 심해지더니 지금은 아예 바다로 나갈 수가 없어.” 섬이지만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안타까운 섬이 교동도다.

최근 북한의 지뢰 도발 이후 한때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교동도는 평화를 꿈꾸는 섬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새우리누리평화운동 대표인 김영애(59)씨는 철책선을 따라 평화의 길을 내고 있는 중이다.

“아무런 제재 없이 낮에 철책선을 붙들고 북한을 볼 수 있는 곳은 교동도뿐입니다. 철책선을 따라 걸으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다 보면 언젠가는 이 철책선이 분단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이 되지 않겠습니까.”

석모도 │ 갈매기가 반겨주는 섬

중앙일보

석모도로 가는 10분 남짓한 뱃길에서는 갈매기와 ‘새우깡’ 놀이를 즐긴다. 2년 뒤 삼산연륙교가 놓이면 사라질 풍경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 석모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강화군 외포리 선착장을 찾았다. 여름철 성수기가 지나서인지 선착장은 한산했다. 주변 상점에서는 ‘새우깡’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꿀과 버터를 바른 과자가 선풍적인 인기라지만 강화도에서는, 석모도 가는 뱃길에서는 아직도 새우깡이 대세였다. 갈매기가 좋아해서다. ‘강화도 명물 새우젓보다 새우깡이 더 잘 팔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배가 뜰 채비를 하자 갯벌에서 쉬고 있던 갈매기들이 귀신처럼 알아채고 고물로 모여들었다. 승객 대부분이 2층 갑판으로 올라섰다. 갈매기와 인간의 한바탕 놀이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족히 100마리가 넘는 갈매기가 쇼트트랙 선수처럼 배 주변을 한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과자를 든 사람을 향해 돌진하는 갈매기 눈빛이 매서웠다. 머리 위로 바짝 다가선 녀석들은 아슬아슬하게 과자만 낚아챈 뒤 달아났다. 어른·아이 가릴 것 없이 까르르 소리를 지르며 갈매기와 놀았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즐거워 했다. 한 중년 여성은 과자 한 봉지를 바닷물에 뿌리더니 숙연한 표정으로 합장을 했다.

“용왕님께 기도했어요. 우리 딸 사법시험 합격하게 해달라고.”

중앙일보

석모도 보문사. 나한상 500개가 모두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배는 10분 만에 석포리 선착장에 닿았다. 배에서 내린 사람 대부분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보문사다. 낙가산(245m) 기슭에 자리한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창건했다. 경남 남해 금산 보리암,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3대 관음 도량으로 불린다. 한마디로 ‘기도발’ 좋은 곳으로 통한다. 고 육영수 여사가 통통배를 타고 와 기도를 했고, 지금도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소원을 빌러 찾아온다.

일주문부터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는 산 중턱까지 매달린 연등에는 갖가지 소원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가족 건강, 만사형통, 합격 기원, 사업 번창, 주택 매매 등등. 관음 성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우리 시대의 질박한 욕망이었다.

보문사를 조금만 둘러보면 예사롭지 않은 사찰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극락보전에서 약 20분을 걸어 올라가면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아랑곳하지 않고 절을 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엄숙한 기도처이지만 산을 등지고 내려다본 바다 풍경이 환상적이었다. 그저 일몰을 보기 위해 관음 성지로 올라가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천연동굴을 활용한 석실과 마당 한쪽에 있는 오백나한상도 유명하다. 오백나한상은 불교 성자인 나한 500명을 기리는 조각상인데, 모두 다른 생김새와 표정을 하고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중앙일보

석모도 민머루해수욕장은 백사장과 드넓은 갯벌이 어우러졌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석모도에는 강화도 전체에서도 흔치 않은 해수욕장이 하나 있다. 섬 남쪽에 있는 민머루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이 있지만 해수욕보다는 썰물 때 훤히 드러나는 수십만 평의 갯벌에서 바지락·게·짱뚱어 등을 잡는 사람이 많다.

지난 18일 한적한 해수욕장에는 갯벌체험을 즐기는 가족, 유유히 해변을 산책하는 연인이 늦여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해수욕장 인근에는 일몰 명소인 장구너머 포구와 횟집이 몰려 있는 어류정항이 있다. 제철 해산물을 맛보고 싶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최근 석모도의 명물로 떠오른 곳은 낙가산 북쪽 자락에 있는 자연휴양림이다. 강화군청이 2011년에 개장했다. 펜션보다 저렴한 숙소 덕에 인기다. 안세옥(76) 석모1리 이장은 “삼산연륙교가 개통하면 가장 각광받을 곳”이라며 “강화도에 단 하나뿐이고 우리나라 최서북단에 있는 휴양림이라 남다르다”고 말했다. 휴양림 안에는 수목원도 있다. 아직 정식 개장하지는 않아 입장료 없이 들어가 볼 수 있다. 산책로가 좋고, 다양한 우리 야생화와 식생을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행정보=석모도로 가기 위해서는 강화 외포리에서 배를 타야한다. 삼보해운(kangwha-sambo.co.kr) 카페리는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30분마다 다닌다. 왕복 어른 2000원, 승용차 1만6000원. 보문사 입장료 어른 2000원. 석모도 자연휴양림(forest.ganghwa.go.kr) 객실은 4인용 원룸부터 최대 10명이 묵을 수 있는 투룸까지 다양하다. 비수기 4인실 4만2000원. 교동도는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다. 대신 섬 전체가 민통선 안쪽에 있어서 교동대교 앞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tour.ganghwa.go.kr, 032-933-3624.

교동도 · 석모도 여행




글=이석희·최승표 기자 seri1997@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관련 기사] │ 늦여름에 떠나는 교동도·석모도

[커버스토리] 애달프다! 철책선 … 비나이다! 마애불




[관련 기사] │ 강화도 먹거리

새우 백마리 튀김, 연백식 물냉면 ‘군침도네’







이석희.임현동 기자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당신이 꼭 알아야 할 7개의 뉴스 [타임7 뉴스레터]

ⓒ 중앙일보: DramaHouse & J Content Hub Co.,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