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한우가 삼겹살보다 싸요' 中 관광객도 찾는 마장동 우시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있는 축산물시장의 서문 입구. 한 손에는 관광책자를,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든 중국 관광객들이 2015번 버스에서 삼삼오오 내린다. 입구 주변을 둘러본 관광객들은 한 가게를 골라 고기를 주문하고 식당으로 올라간다.

의류 쇼핑 명소 동대문, 전통의 외국인 밀집지역인 이태원, 도심에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에 이어 마장동 축산물시장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규모인 마장동축산물 시장에서 고깃집 ‘우리한우’를 운영하는 서한준씨는 “요즘 인터넷 블로그나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을 보고 찾아오는 중국, 홍콩, 싱가포르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동대문구청에서 2015번 시내버스를 타면 축산물시장까지 한 정거장. 동대문에서 한국 옷을 산 외국인들이 가까운 마장동으로 와서 한우를 맛보는 것이다.
조선일보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 있는 축산물시장 서문 입구. /우고운 기자


국내외 식객(食客)들이 마장동을 찾는 이유는 싸고 질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 등급인 투플러스(1++) 한우 등심 100g이 8500원~9000원 수준이다. 현재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에서 파는 1++ 한우 등심 100g은 약 1만원~1만3000원이다. 신선한 고기를 아예 시장에서 먹을 수도 있다. 인기 메뉴는 한우 등심에 치마살, 살치살, 안창살, 토시살, 제비추리 등을 섞은 모듬 세트. 1인당 200g씩 3~4인분에 대략 5~6만원대다. 5~6인분은 8~10만원 수준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삼겹살 먹을 돈이면 고가의 모듬세트를 먹을 수 있는 셈이다.

수도권 축산물 유통의 약 80%를 차지하는 50년 전통의 마장동 축산물시장이 변신 중이다. 11만6150㎡ 넓이에 한우, 돼지고기, 부산물 도·소매점 3000여개가 모여 있는 시장을 연간 약 200만명이 찾는다. 이곳에 축산물 시장이 들어선 것은 1958년 4월. 이른바 ‘우(牛) 시장’이 들어섰다. 도축장과 경매장이 생겼고 마장동 우시장은 서울 전체에 고기를 공급하는 푸줏간 노릇을 했다. 그러나 과거 우시장 사람들은 오해를 받기도 하고 냉대도 겪었다.
조선일보

축산물시장 내부 전경. /우고운 기자


과거 우리 사회는 도축과 해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는 우시장에 대한 괴담이 이를 잘 보여준다. 1970년~1980년대 성행했던 조직폭력배들이 유일하게 피해간 곳이 도살꾼들이 있는 우시장이었다는 것. 도살꾼들의 칼 다루는 솜씨가 남달랐기 때문이라고 것이다. 이른바 보호비를 요구하던 조직폭력배가 마장동 상인들의 칼에 맞아 수십명이나 죽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도 있다. 1982년 한 조직폭력배가 12㎝ 칼을 들고 행패를 부리자 한 상인이 “돼지 멱따는 소리 들어봤냐”며 대수롭지 않게 칼을 폭력배의 배에 꽂았다는 것이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당시 신문 등을 아무리 찾아봐도 실제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다는 기록은 없다. 말하자면 현대판 도시 괴담이다. 시장의 협동조합 관계자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960년대 마장동 우시장의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문화관 제공.


마장동 우시장은 혐오시설이란 손가락질을 받아 규모가 줄어드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98년 도시개발로 이 일대에 아파트와 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35년간 운영해온 도축장의 문을 닫아야 했다. 핏물이 흐르고 냄새가 나는 도축장을 도시 한가운데 둘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마장동 우시장은 지방의 도축장에서 잡은 소를 들여와 팔고, 고기집을 운영하는 지금의 축산물시장 형태로 변했다.

이곳 상점들은 대부분 대(代)를 이어 운영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집들이다. 20~30대에 가게를 차린 창업자들이 어느덧 70~80대의 고령에 접어들어 그 자식들이 가게를 물려받았다. 시장 북문 입구 쪽의 ‘먹자골목’의 가게 14곳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특수부위 전문 전라도집을 운영하는 남주영씨는 “어머니가 20년 가게를 운영하고 내가 물려받은 지 20년됐다”면서 “상호를 고향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가게 이름이 전라도집, 광주집, 남원집 이런 식”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축산물시장 북문 입구에 있는 먹자골목 전경. /우고운 기자


축산물시장 사람들은 이른 새벽에 일어난다. 충청북도 음성과 경기도 부천 등지에서 도축한 한우가 새벽 4시쯤 시장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마장동 상인들은 새벽에 직접 뼈를 바르고 부위별로 손질해 오전 10시쯤부터 본격적으로 고기를 팔기 시작한다. 전국 마트와 정육점, 식당 등으로 고기를 보내고 나면 어느덧 오후다. 남겨 놓은 고기를 오후 9시까지 시장에서 직접 판다. 전국 각지에서 도축한 쇠고기와 내장, 간·천엽 등 부산물이 1톤 냉동탑차에 실려 끝없이 시장에 들어 온다.

축산물시장에서는 노량진의 횟집 시장처럼 가게에서 고기를 맘대로 골라 계산하고 위층의 식당에 올라가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 식당에서는 기본 상차림 비용 1인당 4000원~5000원에 술과 밥값 등은 따로 내야한다. 시장의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고기 익는 마을’이 5년 전 처음 문을 열고 나서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 19개가 뒤따라 생겼다. 야외 옥상에서 고기를 숯불에 구워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다. 금~토요일 저녁 7~8시 무렵에는 각 식당의 100석 좌석이 꽉 찬다.
조선일보

축산물시장의 한 가게에서 파는 모듬고기 세트. /우고운 기자


한번 먹어 본 사람들이 계속 오기 때문에 단골이 많다. 단골 가운데는 연예인도 많다. 배우 유인촌, ‘뽀빠이’ 이상용, 개그맨 홍록기 등이 마장동 우시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배우 김상경의 친누나가 운영하는 한우집(충북상회제인)엔 젊은 연예인들이 많이 온다.

마장동 시장을 인기 식당가 나아가 관광명소로 바꾼 주역은 시장 상인들이 만든 비영리단체인 마장축산물시장상점가 진흥사업 협동조합이다. 조합은 어둡고 냄새 사는 낡은 시장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시장 내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설치하고 매일 물청소와 정화작업을 한다. 매월 1일 ‘한우·돼지데이’ 할인 행사도 벌이고 있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서문에 공영주차장을 개설하고 ‘배송센터’ 서비스도 시작했다. 작년 8월에 문을 연 배송센터는 주문받은 고기를 전국 각지로 배송하는 곳이다. 도매업자부터 일반 소비자까지 모두 이용 가능하다.
조선일보

배우 김상경의 친누나가 운영하는 한우집(충북상회제인). 고기를 주문하면 직접 꺼내 잘라서 접시에 담아 준다. /우고운 기자


이런 노력 끝에 외국인 관광객까지 찾기 시작하자 조합은 축산물시장을 ‘문화관광형시장’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조합은 올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문화관광형시장을 허가를 받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뛰고 있다. 정부가 문화관광형시장에 3년간 사업비 18억원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엔 6개 문화관광형시장이 있다. 협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축산물시장에 생소한 젊은 층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문화관광형시장’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라면서 “기본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통역서비스와 단체 관광버스 주차장 설립 등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고운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