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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개훔방' 안틀어주니 못보지 vs 재미 없으니 안보지[Oh!쎈 맞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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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혜린 기자] 사람들이 안봐서 많이 상영하지 않는 걸까. 많이 상영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안보는 걸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어려운 문제가 또 한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좋은 영환데 많은 사람들이 못봐서 아쉽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배급사 리틀빅픽쳐스 엄용훈 전 대표가 지난 27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호소문을 남기면서다.

그는 호소문에서 '관객들의 개봉관 확대의 요구가 들불처럼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개봉 2주차가 지난 지금은 전국에 10여개 극장에서만 영화를 볼 수 있으며, 그나마 대기업 극장 체인점은 거의 사라져버린 상황'이라며 이 영화의 상영관 확보 실태를 강조,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짚었다.

영화가 '내 자식' 같이 소중한 영화 제작자와 수익이 우선인 극장으로서는 입장이 첨예하게 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 한 기업이 극장과 영화 제작, 배급을 동시에 해서 '수직 계열화'를 이루고 있다는 비판도, 꼭 자사 작품이 아니어도 잘 팔리면 상영을 많이 하고 있다는 극장의 입장도 모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1 극장, 자사 영화만 끌어안는다?

극장의 계열사가 영화를 제작하다보면, 아무래도 제 식구를 챙길 수밖에 없는 상황. 최근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중소배급사를 '차별'했다가 시정명령을 받고 과징금 총 55억 원을 부과받은 사례도 있다.

엄 전대표는 "현재의 영화산업은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돼 버린 상영관 구조에서,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의 양이 수요를 결정'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좋은 시간대가 많이 확보된 영화, 상영관이 많이 확보된 영화가 더 많이 팔리게 돼 있는, 즉 '수요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이 관객에게 어떤 영화를 보여줄지 선택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는 상당 부분 맞는 말이다. 영화 관람이 사실상 대안 없는 절대적인 여가 문화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꼭 특정 영화를 보겠다고 고집하기보다는 편한 시간에 편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더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집앞에서 다른 영화가 상영 중인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보기 위해 30분 이상 이동해서 새벽까지 기다리지는 않는 것이다.

극장 측도 좋은 시간대와 나쁜 시간대가 있고, 이는 분명 '차등'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 차등 기준이 자사/타사가 아니라, 팔리는 영화와 안팔리는 영화라는 입장이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거의 20편의 영화가 동시 상영 중인데, 스크린 수에 비해 공급되는 영화가 많다보니 극장이 작품을 선별할 수밖에 없다. 그 선별 기준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장이 자사 영화만 밀어준다면, 대형 배급사 영화는 다 잘돼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모두 알다시피 실패한 작품이 훨씬 더 많다. 반응이 안좋으면 계열사 작품도 가차없이 스크린에서 내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상영관 수가 적었던 것에 대해서는 "함께 개봉한 '테이큰3', '마다가스카의 펭귄'에 비해 예매수가 크게 떨어졌으며, 전체 흥행 성적을 20~30만 규모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주에도 '언브로큰', '워킹걸', '패딩턴' 등이 개봉을 하게 되고,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수요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봐서 전주 대비 70~80% 축소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차별'이 아닌 '합리적인' 판단이었다는 것.

#2 예매 오픈, 큰 영화만 먼저 한다?

엄 전대표는 예매율이 낮아서 상영관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가 애초에 작은 영화에 불리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자사계열 배급 영화에 대해서는 영화 예매 오픈시기를 대부분 2주 전에 열어줬지만, 중소배급사 영화의 경우에는 개봉일 1주일도 이내로 임박해서야 열어줬다. 예매 오픈 극장의 수도 지극히 작은 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예매율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후 상영관이 조조 및 심야 시간대 중심으로 배정을 함으로써 좌석점유율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제대로 상영이 안되니, 관객이 볼 수 없는 건 당연지사. 온라인 상에서는 이 영화를 보고 싶었으나 동네 극장에 상영되지 않고, 시간도 새벽 시간대라 볼 수가 없었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극장에선 모든 영화를 '좋은 장소, 좋은 시간대'에 배치할 순 없다는 입장.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외에도 많은 영화제작자들이 같은 불만을 갖고 있다며, 현재로선 불가피하다는 의견이다.

극장 관계자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모두 자신의 영화가 좋은 영화겠지만, 극장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찾는 영화냐, 아닌 영화냐를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 예매 오픈도 '인터스텔라' 등 사람들 사이에 인지도가 높은 작품일 경우에 관객들의 요청을 고려해 일찍 시작할 순 있지만, 대체로 1~2주 전에 시작된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도 늦은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매를 일찍 열어도 오히려 예매율이 0이 나오는 경우도 있으므로, 예매를 일찍 시작한 게 꼭 예매율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예매율이 '기준'이 되는 건 그 외 달리 기준으로 할 만한 게 없기 때문. 팔리는 영화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데 있어 예매율이 그나마 가장 객관적인 증거인 셈이다. 극장이 객관적인 '숫자'와 별개로 좋은 영화, 안좋은 영화를자의로 판단하는 것 또한 위험할 수 있기도 하다.

#3 재미 있으면 다 잘된다?

상영관 확보가 무조건 흥행으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이같은 의혹 제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엄 전대표는 "당연히 영화 자체의 만듦새가 객관적인 기준으로 별로인데 상영관을 많이 확보한다고 해서 잘 될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영화 산업은 초반에 상영관을 얼마나 확보했는가가 영화의 흥행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예매사이트나 영화관에 가서 예매율이 높거나 상영 횟수가 많은 영화를 보면 "이 영화가 상영관이 많은 걸로 봐서 요즘 잘 나가는가보다. 다들 저걸 보나보네. 그럼 나도 볼까?"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도 "영화가 가까운 곳, 볼만한 시간대에 얼마나 상영되느냐도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큰 관에 여러개가 걸려있으면 '대세'로 보여서 선택을 유도할 수도 있다. 극장에서 밀어주는 영화가 늘 잘되는 건 아니지만, 영향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즉 '규모'가 흥행을 결정한다는 의미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덜 좋은 영화'가 마케팅 덕에 좀 더 잘 될 수는 있어도, '좋은' 영화가 안될 수는 없다는 것. 관객들은 결국 좋은 영화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한 인기 감독은 "관객들은 귀신 같이 좋은 영화를 알아낸다"면서 "좋은 영화라면 분명히 좋은 반응을 끌어낼 것이고, 이는 입소문 확대 등으로 연결될 것이다. 만약 입소문이 더 번지지 못했다면, 반드시 상영관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그만큼 좋진 않았던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말했다.

불균등한 기회 속에서도 될 작품은 된다는 논리. 잔인하지만, 맞는 말일 수 있다. 맞는 말이지만, 매우 잔인하기도 하다.

오랫동안 제기돼온 문제지만 대통령 호소문까지 등장하며 '새삼' 이슈를 모으고 있는 이번 사태가 보다 더 구체적인 합의점을 끌어낼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ri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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