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취재파일] 단통법 딜레마…불법의 기준 30만 원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흔히 단통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이제 한 달이 됐습니다. 법 시행 효과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와 휴대전화 판매상, 일부 국회의원은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아예 법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비정상적이었던 이통시장이 정상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정반대의 자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휴대전화 판매상들을 취재하면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근 통신사들이 대리점에 주는 판매장려금을 크게 올렸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7만 원 이상의 고가 요금제와 결합해 스마트폰 한대를 팔 때마다 대리점이 받는 인센티브가 30% 이상 올랐다는 겁니다. 단말기 기종과 통신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많게는 한대에 80만 원까지 된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단통법 시행으로 소비자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가입자를 유치해야 하는 통신사들 입장에서는 판매 인센티브를 더 높여 대리점을 독려하게 된 것이죠. 또 아이폰6 국내 판매가 시작되자 이를 방어해야 하는 국내 제조사들이 내는 장려금도 상당히 올라 이 돈까지 포함됐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수요가 줄어드니 판매를 독려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올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딜레마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90만 원짜리 a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단통법에 따른 이 스마트폰의 공시 보조금은 보조금 상한액을 꽉 채운 30만 원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 정도 보조금으로는 여전히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선뜻 구입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한 통신사가 대리점에 정책 수수료, 이른바 판매장려금이라는 것을 책정해줍니다. a스마트폰을 9만 원짜리 요금제와 결합해 한대를 팔 때마다 대리점에 20만 원을 인센티브로 준다는 내용입니다.

그냥 주는 게 아니고 실제로 이 스마트폰을 팔아야 대리점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대리점에서는 인센티브의 일부인 10만 원을 소비자에게 줘서 가격을 더 낮춰주고 대리점은 10만 원의 인센티브를 갖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공시 보조금 30만 원에 10만 원이 더해져 소비자는 40만 원의 보조금을 받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40만 원이란 보조금은 정부가 정한 보조금 상한선 30만 원을 훌쩍 넘어서는 금액인데다 공시된 보조금을 지켜야 한다는 규정도 위반한 겁니다. 공시 보조금에 더해 대리점이 추가로 지급할 수 있는 15%를 합쳐도 34만 5천 원이기 때문에 40만 원 보조금은 여전히 법을 어긴 것입니다.

그럼 단통법은 누구를 처벌할까요? 인센티브를 준 통신사가 아니고 이 인센티브를 받아 그 일부를 소비자에게 지급한 대리점, 판매상입니다. 통신사가 처벌받지 않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통신사는 '소비자에게 주라고 인센티브를 준 게 아니라 대리점이 가지라고 인센티브를 줬다. 보조금 상한을 위반해 소비자에게 추가 지급한 것은 우리 책임이 아니라 대리점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라고 책임을 피할 수 있습니다.

대리점이 몰래 소비자에게 추가 보조금을 주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 그야말로 '걸리면 폐업을 각오'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대리점과 판매상들 사이에선 '판매장려금이 올랐지만 이게 꿀이 아니고 독약이니 절대 받아먹으면 안된다'는 이야기까지 돈다고 합니다. 즉 공시된 보조금 수준으로 만족하지 않는 소비자를 잡기 위해선 추가 보조금을 줘야 팔 수 있지만, 처벌이 무서워할 수 없고 그렇다고 공시 보조금만 지키자니 판매량이 급갑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겁니다.

저는 과연 이런 상황이 바람직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단통법이 보조금 공시제도를 통해 투명한 보조금 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은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는 많이 받고 누구는 적게 받는 차별을 줄인다는 입법 취지에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차별을 막기 위해 지나치게 경쟁을 제한한 것은 아닌지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30만 원은 합법 보조금이고 31만 원은 불법 보조금이 되는 단통법의 잣대가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공시제도의 장점은 살리되 보조금 상한선을 높이거나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 데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상 단통법을 만든 미래창조과학부가 '법령을 손대면 단통법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라는 생각에서 방어적인 자세를 고수하는 것은 정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단통법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 무엇이든 고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나선다면 비난이 아닌 박수를 보내는 국민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 [관련 8뉴스 리포트] 단통법 시행 한 달…다시 등장한 편법 보조금

[정영태 기자 jytae@sbs.co.kr]

[SBS기자들의 생생한 취재현장 뒷이야기 '취재파일']

☞ SBS뉴스 공식 SNS [SBS8News 트위터] [페이스북]

저작권자 SBS & SBS콘텐츠허브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