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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공항에도 설치된 X-레이, 한의사는 못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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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의료기기' 못쓰는 한의사 ⓵] 법 규정 없지만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사실상 금지]

머니투데이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A원장은 최근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얼마 전 내원해 발목 치료를 받고 있는 40대 환자가 병가 처리를 위해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며 X-레이(X-Ray) 등의 검사기록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 환자는 아파트 계단에서 크게 접질려 한의원을 찾았고 침 치료를 받아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A원장은 한의원에선 X-레이 검사를 할 수 없으니 양방의원을 방문해 별도의 비용을 내고 검사를 받으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 나은 상태의 X-레이를 회사에 제출하면 아팠는지 여부를 회사가 알 수 없지 않느냐고 환자가 불평했지만 A원장도 어쩔 수 없었다.

◇법적 제한 없지만 의료기기 사용 못하는 한의사

한의사는 법으로 인정받는 의료행위자이고 국가가 인정한 면허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X-레이, 초음파는 물론 혈액검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방의료기관이나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의료법'이나 '의료기기법' 어디에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제한한다'는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원장처럼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잇따른 고소고발 때문이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두고 대한의사협회나 양방 의원 등이 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어 부담을 느낀 한의사들이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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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그동안의 법원 판결도 한의업계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제한 분위기는 환자들이 원하는 치료를 받고자 하는 권리를 제한할 요인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양방 측의 반발에 밀려 이슈가 금방 묻혀버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한의사의 안압측정기 사용이 합법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헌재는 의료기기로 눈질환을 진료한 혐의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한의사 하모씨 등 2명이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처분 취소를 결정했다. 수많은 의료기기 중 최소한 안압측정기에 대해서는 한의사들도 사용할 수 있는 법적인 조치가 마련됐다.

◇국회도 공감은 하지만…"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국회에서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한의학의 과학화를 위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복지부의 입장 정리를 요구했다.

같은 당 최동익 의원도 "한의사들의 진단 과학화를 위해서는 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은 서면질의를 통해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여부를 질의했다.

앞서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3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등을 포함한 한방의료행위의 독자성을 법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한의약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법에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제한이 명시돼 있지 않고 헌재의 결정으로 사실상 안압측정기 사용은 허용이 된 만큼 법 개정이 아닌 복지부의 지침 마련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복지위 의원들의 '공개적' 입장이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하다. 양방 의사업계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의 등 직능 단체 간 싸움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누구도 선뜻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려 하지 못하고 있는 것.

복지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내부적으로 규칙이나 지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괜히 나서서 건드려 '벌집'을 쑤실 필요가 없다"며 "정부가 안을 내 놓으면 진지하게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눈치보기 "직능 간 갈등 여지 있어, 접근 조심스럽다"

복지부는 현재 한의사가 쓸 수 있는 의료기기의 사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앞서 헌재는 한의사도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등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리며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한의대 교과과정 추가 △자동으로 결과가 도출되는 의료기기 △고도의 전문가가 아니어도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복지부는 이를 수용해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둘 수 있을지에 대해 검토 중이다. 그러나 단기간 내 결론이 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우선 개선안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공표하기 위해서는 한의사 업계 뿐 아니라 의료계와도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세관 기자 sone@mt.co.k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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