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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김가연의 어떤씨네] 송사에 휘말린 '명량',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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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강풀이 그린 영화 '명량'의 인물관계도. 이 관계도에 나오지 않은 배설 장군이 영화 속에서 잘못 그려졌다며 배설 장군의 후손들이 '명량'의 김한민 감독을 비롯해 3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눈길을 끈다./CJ엔터테인먼트 제공


[더팩트ㅣ김가연 기자] 누적 관객 1700만 명을 넘기면서 한국 영화사에 흥행 기록을 새롭게 쓴 '명량'이 송사에 시달리고 있다. 영화 속 인물 배설 장군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했다며 배설 장군의 후손인 경주 배씨 문중이 지난 15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명량' 제작 관계자들을 고소한 것이다.

배설 장군의 후손들은 실제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내세우면서 칠천량 해전 장면과 왜군과 내통해 이순신 장군 암살을 시도한 장면, 거북선 방화, 거제 현령 화살에 맞아 죽는 장면을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배설 장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훌륭한 전략으로 12척의 전함을 살렸고 명량 해전 15일 전에 병을 치료하기 위해 뭍으로 내렸기 때문에 나머지 사실은 다 허구다. 1700만 명이 넘는 관객에게 사실이 아닌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명량' 관계자는 정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서 "창작물은 창작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아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극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것은 '명량'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된 문제였으며 최근엔 지난 4월 종영한 MBC '기황후'가 몸살을 앓았다. 역사의 기록과 다르게 기황후를 영웅으로 묘사한 것이 문제였다. 50부작이 방송될 동안 숱하게 역사 왜곡 논란에 시달렸지만, 이 조차도 '전화위복'이 된 듯 '기황후'는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를 놓치지 않았고 해외 여러 나라에도 팔렸다.

당시 기황후 제작진은 꼬리표처럼 붙어다닌 역사 왜곡을 불식시키려는 듯 마지막 회에 "본 드라마는 기황후의 삶을 드라마적으로 재구성했다. 1368년, 기황후는 주원장에게 대도를 정복당하고 북쪽 초원지대로 물러나 북원을 건국했다. 기황후의 아들 아유시리다라는 북원의 황제가 되었다"는 것을 자막으로 넣었지만 역사 왜곡 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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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시청률을 자랑했지만, '역사 왜곡' 논란에 숱하게 휩싸이면서 오점으로 남은 '기황후'./MBC 제공


기록을 바탕으로 한 사극이 왜곡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픽션(fiction 허구)과 논픽션 사이에서 갈등하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등 대부분 작품은 '팩션(fact와 fiction을 합친 신조어.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문화예술 장르)'에 속한다. 사실과 허구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섞어 관객과 시청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다.

문제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해 비중을 어떻게 두는지에 따라서 다른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드라마 기황후는 영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비교적 후폭풍이 적었지만 배설 장군처럼 악인으로 묘사하면 역풍이 클 수밖에 없다. 논픽션에 좀 더 가까우면 다큐멘터리같은 이야기 구조가 되고, 픽션에 가깝다면 허구의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픽션에 가까운 이야기인데 자꾸만 다큐멘터리식 구조를 원한다면 당연히 역사 왜곡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계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가져올 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화의 내용에 배치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필요한 부분만 사실적인 내용을 더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경계가 모호해지고 이도 저도 아닐 경우 영화는 산으로 가며, 관객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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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에서 개봉한 '명량' 포스터. 관계자들은 사극은 국외에도 수출되므로 최대한 역사 왜곡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영화 포스터


한 영화계 관계자는 "아무리 창작물이라고 해도 완전히 왜곡하면 안 된다. 허구의 이야기, 즉 픽션이라면 픽션임을 인정하고 그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홍보나 마케팅 분야에서는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에 간과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역사 왜곡에 휘말리기도 한다. 영화를 만들면서도, 만들고 나서도 중요한 이유"라고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제작사와 배급사 관계자들은 "창작물은 창작물을 보는 것이 맞다"는 의견으로 입을 모은다. 한 대형 배급사 관계자는 "역사적 사실이 바탕이지만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이다. 어느정도 허구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 두 시간이라는 상영 시간 안에 영화를 맞추려면 불필요한 부분은 줄여야 한다. '명량'의 예를 들면 '명량'은 배설보다는 이순신의 이야기 위주다. 그러다 보니 주변 인물을 다소 놓친 경향도 있다. 영화는 극이고 픽션임을 인정하면 사실 창작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대형 배급사 관계자는 "요즘은 사극 장르가 대세다. '명량' 뿐만 아니라 '광해: 왕이 된 남자' '관상'의 성공만 봐도 천만 영화를 만드려면 사극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많이 만들려고 할수록 기본적인 것을 간과하는 경향도 있다. '이정도면 되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잘 만든, 완성도 높은 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가에게 '명성황후가 누구냐'고 물으면 '이미연이요', 혹은 이순신이 누구냐고 물으면 '최민식이요'('명량' 전까지만 해도 '이순신은 김명민이었다')라는 식의 답변이 나올 때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해당 드라마와 영화를 본 어린 관객의 입에서 전해진 말일 게다. 작품을 통해 해당 인물을 연상하게 된다면 사극을 단순히 창작물이라고 간주하기도 어렵다. 사극의 정의가 뭔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한 드라마나 연극, 영화'를 말한다. 사극을 둘러싼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와 논란은 분명 끊이지 않겠지만 많은 대중이 이해할 만한 수준에서 창작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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