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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박종인의 眞景山水] 붉은 암벽 가르는 50m 물줄기… 치마 입은 여인이 연못에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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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통리 미인폭포

조선일보

삼척 통리협곡 상류에 있는 미인폭포. 중생대 붉은 암벽 틈을 가르며 조형미를 제대로 갖춘 폭포수가 쏟아져 내린다. /캐논 5D Mark2 24-70㎜ USM ISO320 1/125초 f4.5 촬영 시각 오전 8시 24분


어렵게 찍은 여행 사진이 실제 풍경이 줬던 감동을 전달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눈으로 본 그대로 추억을 기록하십시오. 전 국민이 사진작가인 시대, 비경(秘境) 속으로 떠나는 여행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시작합니다. 지구촌 곳곳에 있는 비경과 그 비경을 비경답게 찍을 수 있는 여행 사진 촬영 비밀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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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에 있는 미인폭포 전설은 미녀와 얽혀 있다. 남편 떠나보낸 여자가 뛰어내렸다, 멀리 사는 남자랑 정혼을 했는데 끝내 돌아오지 않자 뛰어내렸다, 콧대 높은 여자가 수많은 청혼을 물리치며 살다가 맘에 드는 남자를 발견했는데 이 남자한테 거부당하고 물에 얼굴을 비춰보니 어느새 주름 자글자글한 노파가 돼 있더라, 그래서 자살했더라…. 전설은 비련의 여자를 죽여 버리고 끝을 맺는다. 미인폭포는 많은 안내서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 기경(奇景)이다.

미인폭포를 보려면 어떤 방법으로든 일단 태백시까지 가야 한다. 태백시 황지교삼거리에서 동해 방면으로 가다가 통리삼거리에서 신리 쪽으로 건널목 건너 5분 정도 가면 도로 공사가 한창인 길목 왼쪽으로 '미인폭포 여래사'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폭포는 그 길 끝 주차장에서 산길을 20분 내려가면 나온다. 폭포가 있는 곳은 삼척과 태백 경계인 통리 협곡 초입이다.

통리 협곡은 1억50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졌다. 길이 10㎞에 이르는 좁은 골짜기다. 백악기 퇴적층이 수천만 년 동안 비바람에 파이고 꺼지면서 고생대 석탄층 사이로 노출돼 만들어졌다. 실제로 가보면 계곡 양쪽이 맞닿을 정도로 좁다. 그 퇴적층이 아직 덜 꺼진 곳이 미인폭포다. 폭포 아래부터 위까지 높이는 50m다. 계곡수는 석회질이 많아서 물색이 불투명한 비췻빛이다. 절대 마실 수 없다.

이 난해한 지질학적 설명을 한 단어로 풀면 '아름답다'다. 크고 작은 자갈돌들이 뭉쳐서 거대한 바위를 만들었다. 대개 붉다. 계곡 위쪽은 거무튀튀하다. 그 모든 풍경 최상류에 높이 50m짜리 폭포가 세차게 떨어지는데, 폭포수는 어느 틈에 비현실적인 새파란 계곡수로 변해 붉고 검은 바위들 틈으로 흐르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옛 화가들이 상상하던 이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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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타임캡슐공원 위편 구름 속 고랭지 배추밭. /ISO125 셔터스피드 1/400 조리개 f4.5


이상향으로 가는 길 또한 어렵지 않다. 주차장에서 작은 절 여래사까지 한적한 오솔길이 연결돼 있고, 폭포 가는 길은 여래사 법당 앞에서 시작한다. 후반은 급경사라 밧줄을 붙잡고 내려가야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다. 법당 앞에서부터 폭포소리가 들리고 오솔길 띄엄띄엄 폭포 전경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러다 나무에 가렸던 폭포가 몸을 보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밧줄 구간 시작 지점이다. 그때 카메라를 꺼내 몇 컷 찍어본다.

밧줄이 끝날 무렵 폭포 주변 암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황홀할 정도로 질감이 현란하다. 만 가지 색깔과 추상화 같은 무늬가 암벽을 가득 채우고, 그 암벽 가운데를 흰 물줄기가 가른다. 물줄기는 중간에 바위와 부딪쳐 부챗살 무늬를 그리며 한복 치마처럼 연못에 떨어져 내린다. 상상력을 가지고 보면 그 물살 모습이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를 닮았으니, 이를 보고 미녀 전설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 풍경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삼척 여행 다리품 값은 충분하지만, 이번에는 그 풍경을 추억으로 남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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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관광지(괄호 속은 내비게이션 검색어) 1. 황지 연못: 낙동강 발원지(황지) 2. 바람의 언덕: 풍력발전소와 고랭지 배추밭(태백 삼수령) 3. 검용소: 한강 발원지(검용소) 4. 구문소: 물이 산을 뚫은 지형(구문소) 5. 타임캡슐공원: 영화 ‘엽기적인 그녀’ 소나무 촬영지(타임캡슐공원/정선군 신동읍 엽기소나무길) 6. 자미원 아마란스 밭: 드라이브를 겸한 풍경 촬영코스(정선군 남면 문곡리 자미원역) 7. 상장동 벽화마을: 탄광촌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장소(태백 상장동) 8. 백전리 물레방아: 100년 넘은 현역 물레방아(백전리 물레방아) 9. 정암사 수마노탑: 진신사리 모신 탑과 적멸보궁(정선 정암사)

추천 맛집 초막고갈두(태백 황지동317/ 033-553-7388): 고등어, 갈비, 두부 정식

추천 숙소 태백 M모텔(태백 먹거리길92/ 033-552-2605): 깔끔하고 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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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보다 비올 때… 렌즈는 광각렌즈로

1. 물줄기를 비단실처럼 매끄럽게 표현하려면 1/15초보다 느리게, 격렬하게 튀어 오르는 물줄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1/125초보다 셔터스피드를 빠르게 한다. 느린 셔터스피드를 위해서는 당연히 삼각대 필수. 위 사진은 미인폭포의 디테일을 묘사하기 위해 셔터스피드 1/125초로 찍었다. 미인폭포처럼 디테일이 재미난 풍경은 가급적 개방조리개(숫자가 작은 조리개)를 피할 것. 또렷한 사진이 되기 힘들다.

2. 광각렌즈를 준비한다. 요체는 물줄기 자체보다 폭포 양쪽 암벽이다. 넓은 화각이 필요하다.

3. 맑은 날 푸른 물빛을 살리고 싶다면 편광필터를 준비한다. 빛의 난반사를 막아서 맑은 물빛을 촬영할 수 있다.

4. 촬영 최적 시각은 이른 아침 혹은 늦은 오후다. 한낮에는 태양이 머리 위에 있어서 폭포 양쪽 바위 질감이 살아나지 않는다.

5. 비가 살짝 내리는 날이 좋다. 맑은 날에는 빛이 반사돼 바위 질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6. 적정 노출보다 반 스텝 정도 부족하게 찍는다. 바위와 물줄기 노출 차이가 심해 적정 노출로는 물줄기 질감이 다 사라져 버린다.

[사진·글=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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