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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일답]'은퇴' 구자철 "브라질 월드컵 아쉬움…한국 유스 키워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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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축구회관에서 은퇴 기자회견 진행

친정팀 제주 유스 어드바이저로 새 출발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제주SK FC 구자철이 14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구자철은 은퇴 후 제주SK FC의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활동한다. 2025.01.14. mangust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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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진엽 기자 = 은퇴를 선언한 '전설' 구자철(36)이 지난 18년 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눈물을 삼켰다.

구자철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축구회관에서 진행된 은퇴 기자회견을 통해 "홀가분하다. 무한한 책임과 감사의 마음이 든다"며 "내가 한국 축구를 위해 축구화를 신고 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은퇴 후에도 내가 받았던 사랑과 경험을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수년 동안 (은퇴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선수 최초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는 데 함께 했던 멤버로 기억되면 행복할 것 같다. 2014년 아쉬움도 있었지만, 기쁨을 드렸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긍정적이고 즐거운 이미지로, 팬들을 기쁘게 했던 선수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구자철은 지난 2007년 프로축구 K리그1 제주SK에서 프로 무대를 밟은 뒤, 2011년 독일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에 입단해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이후 마인츠, 아우크스부르크(이상 독일), 알 가라파(카타르)를 거쳐 2022년 친정팀 제주로 복귀했다.

또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2회(2014·2018년), 아시안컵 3회(2011·2015·2019년) 등 다양한 메이저 대회에 참가해 76경기 19골의 기록을 남겼으며, 2012 런던 올림픽 때는 한국 축구 최초의 메달 획득(동메달)에 기여하기도 했다.

구자철은 "(런던 올림픽 때) 동메달을 목에 걸고 단상에 올라갈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시상식에 올라가서 대한민국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메달을 걸었을 때, 그때 기억이 많이 남는다"며 선수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으로 런던 올림픽을 꼽았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제주SK FC 구자철이 14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구자철은 은퇴 후 제주SK FC의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활동한다. 2025.01.14. mangust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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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순간으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다. 아쉬움을 떠나서 그땐 내가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사실은 은퇴한다고 했을 때 프로필에 대표팀 최연소 주장, 월드컵 최연소 주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온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자랑스럽지 않다. 그때 너무 어렸다"며 "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란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못 했었다. 좀 부족했던 시기인 것 같다"며 울먹거리기도 했다.

또 구자철은 은퇴하는 자신에게 해줄 말이 있냐는 질문에는 가족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나보다는 여기까지 나를 만들어준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준 아내와 옆에서 도와준 처제도 고맙다. 그리고 유년기 때 키워준 고모한테도 감사하다"며 "그래서 나한테까지 (인사가) 안 와도 상관없을 정도로 가족들한테 감사하다.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준 건 다 가족의 힘이었다"고 말했다.

은퇴한 구자철은 곧장 친정팀 제주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제2의 인생을 출발한다. 해외 교류를 위해 당장 15일 출국한다.

구자철은 "좋은 선수를 발굴해 내고, 그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어드바이저 역할을 해야 한다. 선수가 꿈을 위해 떠날 때 팀에는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며 "1군에 잘 정착하고, 한국 축구에 큰 대들보가 되도록 돕는 게 내 기본적이고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제주SK FC 구자철이 14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앞두고 제주SK FC 유소년 어드바이저 위촉식을 하며 구창용 제주SK FC 대표이사로부터 대형 명함을 전달받고 있다. 2025.01.14. mangust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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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구자철 은퇴 기자회견 일문일답.

-은퇴 기자회견 소감

"나도 은퇴한다고 마음먹고 준비하면서 홀가분하다. 더 빨리 은퇴하고 세상에 나와 한국 축구를 위해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무한한 책임과 감사의 마음이 든다. 고맙다. 은퇴를 수년 전부터 생각하고 준비해 왔다. 단지 내가 한국 축구를 위해 축구화를 신고 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은퇴 후에도 내가 받았던 사랑과 누렸던 경험들을 통해서 '우리 세대들은 간과하지 말자', '자기 역할을 해내자'는 생각이 강해서 수년 동안 준비했다. 시대, 세대가 빨리 변해서 얼마나 빨리 융화가 되느냐가 중요하지만, 독일에 있을 때 행정, 경영, 유소년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우크스부르크에 있을 때 뮌헨을 왔다 갔다 하면서 프런트 일을 배우기도 했다. 다행히 나를 키워준, 낳아준 중요한 팀에서 유소년 어드바이저 직책을 줬다. 서두르지 않되, 매듭이 있는 일을 해보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사실 축구화를 신고 있을 때가 아니다. (런던 올림픽 때) 동메달을 목에 걸고 단상에 올라갈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시상식에 올라가서 대한민국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메달을 걸었을 때, 그때 기억이 많이 남는다."

-올림픽 1년 전 한일전 패배 후 '지면 축구화를 벗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하는데.

"2011년 8월11일 삿포로에서 경기였다. 유럽 진출하고 첫 번째 아시아에서 하는 A매치였다. 볼프스부르크에서 하노버 갔다가, 프랑스 갔다가, 인천에서 삿포로로 갔는데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0-3으로 졌다. 그것도 한일전에서 패배했다. 선배 때부터 패배해선 안 된다고 이어온 한일전에서 져서 부끄러웠다.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한 채, '다음 한일전 때 내가 지면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필사즉생이란 마음으로 경기에 들어갔다. 그런 경기가 있다. 내가 진다는 생각이 안 들고,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누구도 용서치 않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경기 후 인터뷰 때도 0-3 패배로 오늘 승리를 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표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을 3골 정도 뽑는다면.

"2009년 이집트 청소년 월드컵 미국전에서 페널티킥 넣고 세리머니를 팔을 벌리고 했다. 그때 그 전율은 '내가 이 전율을 느끼기 위해 그 과정들의 고통을 이겨냈구나'라는 느낌이 아직도 팔에 있는 듯한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2011년 아시안컵이다. 아시안컵에서 호주랑 할 때 넣었던 골이다. 이유는 첫 경기 바레인전 때 골을 넣었을 때는 그저 좋았지만, 그게 바로 다음 경기인 중요한 매치에서 넣었을 때의 짜릿함이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터치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찼을 때의 짜릿함은 아직도 내 발끝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월드컵도 많고 한일전도 있지만, 남은 하나는 정확히 언젠지는 기억이 안 난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우즈베키스탄이랑 할 때 홍철이 하프라인에서 크로스 올려주고, (김)신욱이가 떨어트려서 내가 왼발로 슈팅했던 기억이 있다. 이상하게 그 골이 잊히지 않는다. 한일전 골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뛴 메이저 대회에서 골을 안 넣은 적이 없다. '내가 한 골도 못 넣지 않겠다', '필요할 때 골을 넣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왔다. (런던 올림픽 4강을 앞두고) 최초 결승이라는 대기록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대회에서 결승에 올라간 적이 없었다. 4강까지 올라오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브라질전에서 내가 중요한 골을 넣어 결승에 가보자는 마음을 했는데, 골이 안 나왔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제주SK FC 구자철이 14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구자철은 은퇴 후 제주SK FC의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활동한다. 2025.01.14. mangust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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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 남는 순간은 있을까.

"아픔과 속죄, 아쉬움이 남는 게 있다. 지금까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다. 그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다. 아쉬움을 떠나서 그땐 내가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사실은 은퇴한다고 했을 때 프로필에 대표팀 최연소 주장, 월드컵 최연소 주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온다. 개인적으로는 그게 자랑스럽지 않다. 그때 너무 어렸다. 돌이켜보면 많은 선수란, 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란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에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생각을 못 했었던 경험이었다. 좀 부족했던 시기인 것 같다. 그 경험을 통해 많이 성장했지만, 나의 부족함 때문에 그 월드컵에서의 결과가 국민들에게 조금은 아쉽고, 월드컵이라는 대회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에 덕을 볼 수 있었던 분들에게 돌이켜보면 너무 책임감이 없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죄송하다. 제주 후배들한테도 항상 이야기한다. 프로 선수는 이 사회에, 제주라는 사회에 어린이들에게는 꿈이 됐으면 좋겠고, 동경이 대상이 됐으면 좋겠고, 배울 수 있는 행동이나 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게 프로 선수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한다. 제주SK가 제주 전반의 꿈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도 한다.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들도 모든 이들의 꿈과 희망이다. 어린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월드컵은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일들이 있지만, 2014년을 그렇게 담아두고 있는 것 같다."

-구자철, 이청용, 기성용은 가장 큰 족적을 남겼는데, 가장 먼저 은퇴한다. 셋이서 나눈 이야기가 있나.

"청용이 성용이는 나에게 있어서 큰 힘이 되는 친구들이다. 단체 톡방이 셋이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사소한 게 있어도 톡방이 시끄러워진다. 거두절미하고 아쉬워하고, '고생했다'라는 말을 둘이서 많이 해줬다. 친구들한테 너무 고맙다. 성용이 청용이를 같은 선수로서 존경하면서, 그들의 장점을 보면서 많이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너무 훌륭한 선수들이었고, 한국 축구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내가 흔들릴 때도 그들의 말이나 대화를 들으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나도 생각도 많고 말도 많은데, 그 친구들이 나보다 크면 크지 작진 않은 것 같다. 은퇴하고 나서 구체적으로 작은 컨설팅도 해줬다. 내가 이것저것 오퍼도 들어오고 하면 '하나만 해라' 등의 조언도 해준다. '네가 은퇴를 먼저 하니, 잘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친구들에게 부끄러움 없게, 그들도 곧 은퇴할 것 같은데 잘하고 있겠다고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다."

-이청용, 기성용과 은퇴 후 방향을 논한 건 있을까.

"성용이는 공식적으로도 유럽 돌아다니며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다. 행정적으로도 수업받고 있다. 셋이서 공통적으로 '행정, 지도자 다 배우자'고 한다. 기회 있을 때 행정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고,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배워야 한다고 한다. 단톡방을 보면, 성용이가 외국에 갔다 오면 계속 이야기 해준다. 전반적으로 우리가 뭘 하겠다고 그들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나도 지도자 A급, P급 자격증을 따야 한다. 행정적으로도 구단 유스에 내 경험을 공유하면서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욕심내서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치지 말자는 것이 셋의 공통된 의견이다. 훗날 우리 셋 다 아무것도 안 하진 않을 것 같다.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현명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혼자 독단적으로 하면 조금 더 그르칠 확률이 높은데, 나에게는 기성용, 이청용 한국 축구를 위해 해낼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열심히 해보겠다."

-어떤 노하우를 제주에 전수하고 싶나.

"급하게 뭔가를 바꿀 생각은 없다. 기존에 한국에서 일하시는 분들에 대한 존중과 존경심이 있다. 내가 무언가를 우월하거나, 더 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올해 1년은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 도움을 청하는 역할을 하겠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걸 하자', '이걸 해야 된다'고 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기성용, 이청용보다 1년 더 먼저 은퇴하지 않았나 싶다. 2년, 3년이 되면 더 좋을 것 같긴 하다. 내가 아는 것과 현장의 어려움을 아는 건 다르다. 난 아직 현장의 어려움을 모른다. 우리나라 유스 시스템이 긍정적으로 변했으면 하는 건 확고하다. 매듭을 지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지혜롭게 현명하게 해보겠다.

-예전의 K리그와 지금의 K리그 차이는?

"내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K리그에서 뛰었다. 돌아온 건 2022년이다. 12년 만에 돌아왔다. K리그에서 배출하는 유럽 선수도 많아졌고 기회도 많아졌다. K리그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행정적인 부분도 그 시간에 맞게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국 축구 시장이 굉장히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왔던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난 어떻게 이 축구판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면 설레서 잠이 안 온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줄 수 있는 것도 많고 잘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아직 한국 축구가 좀 더 발전해야 된다고 전반적으로 보고 있다. 이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어쨌거나 긍정적인 거로 보고 이야기하면 '훌륭한 인프라에서 축구하고 있다. 변해야 할 건 많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먼저 잔디를 바꿔야 한다. 잔디가 기본이다. 가장 중요하다. 구단에도 많이 이야기한다. 그래도 K리그에선 제주 구단이 1, 2위라고 한다. 늘 감사하다. 내가 구단에 잔디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적극적으로 관리에 힘써주셔서 감사하다. 무엇보다 잔디는 파고들어서, 제도적으로 바꿔야된다고 생각한다. 날씨가 더우니 상하는 건 맞지만, 그걸 핑계로 삼아 방치할 수 없다. 피해를 보는 건 선수고 경기를 보러 오는 팬들이다.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을 보러 오는 지역의 팬들도 중요하다. 그들이 피해를 봐선 안 된다. 잔디는 제도적 개선을 해서라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표팀을 봤을 때 구자철의 리더십과 현 주장 손흥민 리더십을 비교하면.

"흥민이의 리더십은 내가 주장으로서는 보지 못했다. 특별하게 내가 코멘트할 건 없을 것 같다. 내 리더십은 워낙 오래전 일이다. 최대한 선수들이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부담과 압박에서 자유롭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은 얼마만큼 이 경기에 집중하느냐, 즐기느냐에 승패 영향을 미친다.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이야기했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제주SK FC 구자철이 14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구자철은 은퇴 후 제주SK FC의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활동한다. 2025.01.14. mangust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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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은퇴를 결정한 이유가 있나. 제 2의 축구 인생 최종 꿈은.

"내 근육이 버텨주질 못한다. 무릎도 그렇고 발목도 그렇다. 예전에 운동하다가 데미지를 받으면 이 정도의 회복력이 있어야 하고, 이 정도의 통증은 안고 했어도 됐다. 유독 한국에 돌아와서 그 회복 기간이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이 정도면 됐으니까 해보자'가 안 됐다. 이런 시간이 반복되니, 그게 가장 은퇴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어야겠다,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나를 발굴해 주고 키워준 제주에 은퇴하는 게 꿈이었다. 그걸 이뤄 감사하다. 은퇴 후의 꿈은 아직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다. 차마 입 밖으로는 안 나오는 것 같다."

-은퇴하는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나보다는 여기까지 나를 만들어준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내가 결혼을 일찍 했다. 결혼을 일찍 한다고 했을 때, 축구화 스폰서에서 아디다스에서 싫어했다. 아내에게 고맙다. 독일에서 너무 고생했다. 외국에서 대표팀 경기하러 가면, 10일씩 자리 비울 때도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줬다. 옆에서 도와준 처제도 고맙다. 나한테 이야기한다. 다 그럴 것 같다. 남자는 아무거나 먹어도 살 수 있다. 가정이 생기면 더 일을 하고 책임감을 갖게 된다. 나도 자신한테 이야기하지만, 가족한테 너무 고맙다. 그리고 나 유년기 때 키워준 고모한테도 감사하다. 그래서 나한테까지 안 와도 상관없을 정도로 가족들한테 감사하다.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준 건 다 가족의 힘이었다."

-유소년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우리 팀에 입단하라고 해주고 싶다. 농담이다. 목표를 정해야 한다. 중2 때 목표가 U-20에 나가는 거였다. 그때 백지훈 형이 공항에서 인터뷰했던 게 기억이 난다.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청소년 대표 너무 하고 싶다'고 싶단 생각으로 5년을 뛰었다. 목표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나처럼 별을 보며 이야기하던, 목표를 정하는 게 가장 첫 번째다. 그 목표가 없으면 동기부여라는 게 있는 사람하고 차이가 난다. 그 동기부여는 행동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목표를 명확하게 갖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꿈을 그려볼 만한 목표를 세웠으면 좋겠다. 모든 한국 유소년을 책임질 수는 없지만, 제주 유소년은 어떻게서든 좋은 선수가 오고 좋은 선수를 발굴하도록 노력해 보겠다."

-주목하는 선수가 있다면.

"일단은 우리나라의 돌연변이가 한 명있다. 흥민이는 섭섭할지 모르겠다. (박)지성이형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갈 때도 놀랬고 흥민이가 EPL 득점왕할 때도 멋있었다. (이)강인이가 PSG 갈 때도 놀랐고 (김)민재가 뮌헨에서 뛰는 것도 놀랍다. 후배들이 꿈을 크게 하는 것 같다. 눈여겨볼 선수는 이제부터 찾아보겠다. 우리나라 수준이 높아졌다. 후배들이 꿈을 크게 갖는 원동력이 됐다. 단지 해외 진출에 목표를 두는 게 아니라, 더 큰 클럽에서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빅클럽에서 뛰는 선수가) 나왔으면 좋겠다. 나올 수 있는 시스템도 잘 따라와줬으면 좋겠다."

-제주 유소년 어드바이저로서 목표는.

"제주 팀에 선수 구성을 탄탄하게 하고 싶다. 재정적으로도 선수를 키워내서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그 선수들이 꿈을 찾아 떠날 때 재정적으로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그게 유소년 시스템 기본의 목표다. 좋은 선수 발굴해 내고, 그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어드바이저 역할을 해야 한다. 1군에 잘 정착하고, 한국 축구에 큰 대들보가 되도록 도우는 게 내 기본적이고 중요한 목표다."

-지금의 양민혁과 과거의 구자철을 비교한다면.

"양민혁이 낫다. 지금 토트넘에 가 있지 않느냐. 양민혁 화이팅."

-해외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이 많은데,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외 간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 중심에는 지성이 형이 있었다. 또 기성용, 이청용도 동기부여가 됐다. 성용이가 나보다 6개월 먼저 갔다. 내가 가고 싶었던 곳에 그들이 가서 가고 싶다에서 가야 돼로 바뀌었다. 시즌 시작할 때 구단에도 이야기했고, 시즌 종료 후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명확하게 생각을 정리해서, 그 목표를 잘 해냈다. 비슷한 또래, 동경의 대상에 대한 동기부여를 줘야 한다. 얼만큼 설레느냐, 이뤄내느냐의 차이다. 미친 듯이 하고 싶으면, 사람이 몸이 움직이게 되고 하게 되더라. 기술적으로는 내가 이야기하기가 애매하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우리나라 선수 최초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는 데 함께 했던 멤버로 기억되면 행복할 것 같다. 2014년 아쉬움도 있었지만, 기쁨을 드렸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긍정적이고 즐거운 이미지로, 팬들을 기쁘게 했던 선수로 남고 싶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제주SK FC 구자철이 14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구자철은 은퇴 후 제주SK FC의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활동한다. 2025.01.14. mangust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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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언론 뉴시스 wlsduq123@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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