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간 7대회서 만든 ‘기적’… 22일 프레지던츠컵 출전 김주형 인터뷰
김주형이 2019년 필리핀 투어 대회에서 우승하고 캐디를 맡았던 아버지와 포옹하는 모습. /올댓골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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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TV에서 프레지던츠컵을 보며 꼭 나가보고 싶었는데 현실이 됐으니 꿈만 같고 설레요. 형들도 많이 사귀고 막내니까 팀에 에너지를 팍팍 불어넣어야죠. 하하하.”
전화로 들려오는 스무 살 김주형의 목소리는 청년의 씩씩함과 한없이 밝고 명랑한 소년의 느낌이 함께 묻어났다. 그는 9월 22일부터 세계연합팀과 미국팀의 골프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이 열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할로 골프장에서 전화를 받았다. 이곳에서 출전이 확정된 세계연합 선수와 이틀간 호흡을 맞춘 김주형은 “성재 형과도 한 팀으로 경기에 나가보고 싶어요. 형한테 더 많이 배워야죠”라고 했다.
김주형은 지난여름 일곱 빛깔 무지개 같았던 7개 대회를 통해 세계 최고 선수들이 겨루는 PGA투어의 최고 기대주로 떠올랐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기사에서 “첫날 트리플 보기를 한 매킬로이가 톰 킴(김주형)이 윈덤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하고도 끝내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한 내용을 강조했다. 톰은 김주형이 어린 시절부터 애니메이션 ‘토머스 더 트레인(토머스와 친구들)’을 좋아하면서 자신에게 붙인 영어 이름이다.
김주형이 지난달 7일(현지 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세지필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PGA 투어 윈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퍼트에 성공한 뒤 인사하고 있다. 그는 이 대회 우승을 비롯해 지난 여름 7개 대회를 통해 PGA 투어의 최고 기대주로 떠올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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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골프다이제스트는 윈덤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주형을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열차가 아닌 고속 열차”라고 불렀다. 김주형은 지난 6월 US오픈까지 PGA투어 4개 대회에서 3차례 컷을 통과했다. 최고 성적은 5월 AT&T 바이런 넬슨에서 거둔 공동 17위였다. 그때만 해도 잘하면 PGA 2부 투어 파이널 시리즈에 합류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7월 7일 막을 올린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을 시작으로 8월 21일 막을 내린 BMW 챔피언십까지 7주 연속 참가한 대회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다. 숨 돌릴 틈 없었던 그 7주간의 얘기를 김주형에게 들어봤다.
◇골프의 고향에서 첫 단추 꿰다
김주형은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스코티시오픈 최종 라운드 막판 잠시 선두까지 오르는 등 우승 경쟁을 벌이다 3위로 대회를 마쳤다. 김주형은 “메이저 대회인 디오픈을 앞두고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를 비롯해 20위 이내 선수가 대부분 참가했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천금보다 중요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스코틀랜드로 떠나기 전 바람이 강한 텍사스에 훈련 베이스캠프를 마련한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바람 영향을 덜 받도록 낮게 깔아치는 샷, 스핀이 덜 걸리는 샷을 집중적으로 연마해 처음 경험한 링크스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것 같아요. 준비를 도맡아 해준 부모님께 감사드려야죠.”
지난해 CJ컵 마지막 라운드에서 김주형과 함께 경기한 뒤 스코티 셰플러는 김주형의 친한 형이 됐다. 사진은 디오픈을 앞두고 함께 연습 라운드를 도는 모습. /김주형선수 가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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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열린 디오픈에선 공동 47위를 하면서 PGA투어 임시특별회원 자격을 얻어 초청 선수로 나갈 수 있는 대회 수 제한이 사라졌다. 추억도 많이 쌓았다. 김주형은 붙임성이 좋아 함께 라운드를 한 선수들과 금세 ‘형·동생’ 사이가 된다.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함께 연습 라운드를 하고 스월컨브리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주형은 “셰플러는 지난해 CJ컵 마지막 날 같은 조에서 친 뒤부터 함께 연습 라운드를 돌고 식사도 함께하는 사이가 됐다”며 “디오픈을 앞두고는 조던 스피스(미국)도 ‘요즘 정말 잘한다’고 칭찬해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처음 타본 전용기에 입이 쩍 벌어져
디오픈 후 3M 오픈에 초청받아 난생처음 전용기를 타보고는 입이 쩍 벌어졌다. 김주형은 “PGA투어의 멋진 스타 선수들과 한 비행기에 타고 가는 게 정말 특별한 체험이었다. 꼭 여기서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스코틀랜드에서 3M 오픈이 열리는 미국 미네소타로 이동하니 찜통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차와 푹푹 찌는 날씨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공동 26위를 했다. 이어 열린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7위에 올라 페덱스컵 125위 이내 포인트를 미리 확보, 단 8대회만 뛰고도 정규 시즌 최종전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여유 있게 다음 시즌 투어 카드를 따냈다. 김주형의 부모님은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해 거처를 마련한 댈러스로 출발했다가 윈덤챔피언십 출전 소식을 듣고 수천km 거리를 차를 몰아 대회장인 노스캐롤라이나 그린스버러에 도착했다가 다시 컷 통과하는 모습만 보고는 댈러스로 떠났다.
김주형은 “우리 가족은 여러 나라를 돌며 살았고, 경제적 여유가 있던 건 아니지만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덕선이네처럼 화목하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다. ‘애 어른’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에 태어난 김주형의 감성은 2000년대 이전 세대와 비슷하다. 그는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이문세 가수님 노래를 즐겨 듣는다. 성동일 배우님 연기가 참 재미있다”고 했다.
김주형이 8일 윈덤 챔피언십 시상식에서 인사하는 모습. 2002년 6월생인 그는 한국 선수로는 역대 PGA 투어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그는 1라운드 1번 홀(파4)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했지만, 나머지 71홀에서 24타를 줄이는 뒷심을 발휘하며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USA 투데이스포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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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월드컵 대표팀처럼 잘했다”
프로골프 선수들은 보통 3~4개 대회를 하면 한두 주 쉬고 또 대회에 나간다. 그만큼 골프도 체력과 정신적인 소모가 강하다. 그런데 김주형은 윈덤챔피언십 첫날 1번 홀에서 쿼드러플보기(기준 타수보다 4타 더 치는 것)를 하고도 꾸준하게 타수를 줄인 끝에 마지막 날 9언더파를 몰아치며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현지 방송 리포터와 농담까지 섞어서 한, 여유 있는 영어 우승 인터뷰가 국내에서 화제가 됐다. 장난꾸러기 시절부터 김주형은 남 흉내를 잘 냈다. 스윙 동작도 똑같이 따라 하고, 남의 말 흉내 내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한국, 중국, 호주, 필리핀, 태국 등 5국을 돌면서도 쉽게 적응했다. 아주 어렸을 때 배운 중국어는 잊었지만, 필리핀 타갈로그어도 잘하고 태국어도 곧잘 한다. 그는 “우승했지만 내친김에 플레이오프도 최종전까지 가보자는 생각 때문에 우승하고도 축하 파티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인 세인트주드 챔피언십은 70위 안에 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텨 공동 13위를 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2차전인 BMW 챔피언십에선 몸과 마음이 따로 놀기 시작하면서 부진해 결국 플레이오프 최종전에 나가지 못했다.
“정말 더 하고 싶었는데 더 이상은 어떻게 해도 안 됐어요. 체력이 바닥난 거죠. 하지만 마지막 홀을 마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요. 어렸을 때 제게 골프를 가르쳐 준 아버지가 ‘체력의 한계가 올 때까지 뛰고 또 뛰었던 2002 월드컵 국가대표팀이 떠오른다. 정말 잘했다’고 어깨를 두드려주셨어요.”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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