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동료에 "폭행 없었다" 진술 강요
고(故) 최숙현 선수 유가족이 공개한 최 선수 일기. 최 선수는 "'너희들이 했던 행동들 때문에 힘들어'라는 말을 하면 너희는 너희의 잘못들을 인정할까?"라며 괴로운 심경을 적었다. /연합뉴스 |
고소를 당한 4명 중 경주시청에서 팀 닥터 행세를 했던 안주현씨는 최숙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3일 전인 지난달 23일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에 진술서를 보내 '술을 마시고 최숙현을 폭행했으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일부 시인했다. 김규봉 감독에 대해선 '선수를 때리는 나를 말렸다'며 두둔했다. 혼자만 잘못을 뒤집어쓰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최숙현의 팀 선배였던 김도환은 6일 국회에 출석해서 '(최숙현이 숨져)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때리지 않았으니 사죄할 것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날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 공정위에서 10년 자격정지를 받았고, 8일 한 매체에 "때린 걸 인정한다. 최숙현 선수에게 미안하다"고 뒤늦게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최숙현이 숨지고 나서 빈소에 찾아가 유족에게 사죄했으나 고인의 아버지로부터 '검찰 조사를 받고 오면 용서할지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듣고 물러났다고 한다.
◇'천편일률' 진술서 내용, 입 맞춘 정황
대한철인3종협회의 영구제명 징계를 받은 김규봉 감독과 주장을 지냈던 장윤정은 결백을 주장한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달 18일엔 경주시청 전·현직 선수, 지도자 출신인 11명의 진술서가 포함된 변호인의견서를 대한체육회 스포츠클린센터에 냈다. 하지만 '팀 내부에서 감독이나 선수의 폭행은 없었다'고 진술했던 선수 A는 9일 본지 통화에서 "5월 중순쯤 경주시청 숙소 1층 카페에서 두 사람(김 감독·장윤정)을 만나 (진술서를) 같이 썼다. 김 감독이 시키는 대로 받아 적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워드로 작성했는데, 감독이 '자필이 좀 더 효력 있다'고 해서 손으로 썼다"고 했다. 허위로 진술서를 쓴 이유에 대해선 "당시 김 감독과 사이가 나쁜 편이 아니었고, 거짓을 써야 하는 것을 알고나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감독이 내 앞에서 요구해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한편 경주시청 출신인 선수 2명은 9일 김 감독 등 4명을 폭행 등 혐의로 대구지검에 고소했다. 경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김 감독이 부임한 2013년부터 최근까지 경주시청 소속 전·현직 선수 27명을 조사한 결과, 17명이 폭언이나 폭행 등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10명은 경찰 조사에 아직 응하지 않았다. 본지는 김 감독과 장윤정에게 반론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두 사람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최숙현 사생활·훈련 태도를 문제 삼기도
김 감독 등이 변호인을 통해 낸 자료엔 최숙현이 "고등학생 때부터 술 마시고 운동하기 싫어서 훈련 중 자주 도망을 갔고, 거짓말을 많이 했다"는 내용이 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최숙현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었다.
김 감독은 진술서를 통해 "가족과의 불화, 가정적 문제로 인해 최숙현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지속됐다"며 "(나는) 관심과 배려를 하며 훈련했다"고 주장했다. 또 "최숙현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압박 때문에 강제로 운동을 했고, '운동을 안 하겠다'고 하면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며 "초등학교 및 중학교 1학년까지 당시 코치에게 심한 폭행을 당해 공포에 시달리다 자해를 하고 심리 및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때 힘들었다고 내게 호소했다"고 적었다. 그는 이를 뒷받침하는 최 선수와의 통화 녹취 기록이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최숙현이 자기 명의로 8300만원짜리 BMW 승용차를 구입하고, 포항 전지훈련 중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했다"는 사생활 관련 진술도 했다.
장윤정은 합숙 훈련 등을 할 때 최숙현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최숙현이 술을 먹으면 부모에 대해 나쁜 얘기를 한다" "합숙만 가면 잘 지내면서도 자기 부모님에게 '나 지금 자살할 거야' 등 문자를 보냈다" "훈련이나 합숙을 하다 무단 이탈하는 일이 매년 반복됐다" "외박을 보내주면 이틀 만에 4㎏씩 쪄서 오는데, '안 먹는데도 살쪄요 억울해요'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숙현 아버지 최영희씨는 9일 통화에서 "고인의 명예를 더럽히는 파렴치한 주장이다.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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