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중독된 스포츠] [下] 비인기 종목 '인권 사각지대'
전 경주시청 소속 선수들은 6일 국회에서 "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의 왕국이었다"고 말했다. 외부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지도자와 한 선배 선수가 다른 선수들에게 폭언과 폭행 등을 일삼았다. 김규봉 감독은 2017년 최숙현의 부모가 지켜보는 앞에서 선수의 뺨을 때리고, 최숙현의 어머니에게도 '딸의 뺨을 때리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성적 지상주의'는 가해자들이 절대자로 군림하며 선수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로 지자체 소속인 실업팀 감독과 선수는 기간제 노동자다. 1년 단위로 계약한다. 스포츠를 직업으로 삼는다는 환경 자체는 아마추어 선수·지도자들에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성적이 나쁘면 잘린다는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 '선수를 때려서라도 성과를 내겠다'는 비윤리적 마인드가 여기서 나온다.
주요 가해자로 지목된 장윤정(32)은 연봉이 1억원에 이른다. 다른 선수들 평균 연봉의 세 배쯤이다. 10년 이상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메달을 많이 땄기 때문이다. 특히 지자체팀들이 중시하는 전국체육대회에서만 통산 금메달 16개(개인전 8개, 단체전 8개)를 걸었다. 단체전(팀 3명 기록 합산) 입상을 위해선 고교 10년 후배인 최숙현 등 어린 동료 선수들을 다그쳐야 했을 것이다. 김 감독과 장윤정은 6일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에 나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영구제명 징계를 받았다.
경주시청에서 팀 닥터 행세를 한 안모씨가 감독 못지않게 선수들을 육체적·정신적으로 괴롭힐 수 있었던 것도 비인기 종목의 현실과 관련 있다. 협회 관계자는 7일 "국내에 팀 닥터나 물리치료사를 둔 실업팀은 없다.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운동처방사 2급 자격증을 가진 안씨는 장윤정의 추천으로 경주시청에 왔다고 알려졌다. 정식으로 고용되지 못한 신분이다 보니 선수들에게 물리치료비·심리치료비·해외전지훈련비 명목으로 돈을 걷어갔다. 최숙현 측도 약 3년 동안 1500만원가량을 안씨에게 줬다고 한다.
최숙현은 경북체고 졸업반이던 2016년 전국체전 개인전에서 4위를 했던 유망주였다. 경주시청에 들어갔던 2017년엔 전국체전 단체전 1위를 했다. 가혹 행위를 견디다 못해 2018년 1년을 건너뛰고 2019년 복귀했는데, 어깨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단체전 2위(개인전 14위)를 했다.
올해 들어 전국 중하위권 팀인 부산시체육회로 옮겨간 최숙현이 지난달 26일 새벽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팀의 새 간판으로 인정받으며 기량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한 트라이애슬론 지도자는 "체벌이나 폭력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주시청팀에서 일어난 일들은 너무 심했다. 요즘 세상에…"라면서 "아까운 선수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성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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