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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새 일왕 즉위하는 나루히토는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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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겸손한 인물 평가 많아

마사코와의 결혼 때는 결단력 보여

나루히토 이후 왕위 승계 문제도 논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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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이 30일 퇴위함에 따라 장남인 나루히토(59) 왕세자가 1일 일본의 새 일왕으로 즉위한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이날 오전 10시반 도쿄 ‘황거’에서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3종의 신기’인 청동검·청동거울·초승달 모양 구슬을 넘겨받는 의식을 연다. 이 행사엔 아베 신조 총리와 각료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각료 전원이 참석 예정이어서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가타야마 사쓰키 지방창생상이 의식을 지켜보게 된다. 왕실규범에 따라 왕세자비 마사코의 참석은 제한된다. 즉위식을 마친 새 일왕은 11시10분 국민들 앞에 처음으로 발언한다.

나루히토 왕세자의 정치성향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성격은 겸손하고 부드럽다는 평을 얻고 있다. 왕족과 옛 화족(귀족)을 위한 교육기관인 ‘가쿠슈인’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1983~85년 옥스퍼드대학에서 유학했다. 당시를 회고한 에세이 <템즈강과 같이>(1993)를 보면, 영국을 떠나기 전의 심경에 대해서 “다시 옥스퍼드를 찾을 때는 지금처럼 자유로운 한 학생으로서 이 마을을 둘러볼 수 없을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 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라고 적었다. 행동이 자유가 없는 일본과 달리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영국 생활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영국에서 템스강의 수상 교통사를 연구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왕세자비인 마사코와 결혼 과정에서 끈기 있고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1986년 스페인 공주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열린 환영식에서 막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마사코를 만났다. 왕세자는 러시아어·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전문직 여성인 마사코에게 호감을 느꼈다. 하지만 할아버지인 히로히토 일왕 등 왕실에선 반대 의견이 많았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포기하지 않고 1990년 영국 연수에서 돌아온 뒤 교제를 시작했다. 둘은 1993년 결혼했다. 마사코는 당시 “내가 평생 전력을 다해서 지켜주겠다”고 한 말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마사코가 엄격한 왕실생활로 적응장애 판정을 받은 뒤인 2004년 “(궁내청 내에서) 마사코의 경력과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는 말로 파문을 일으켰다.

즉위 후 나루히토는 부친이 확립한 ‘상징일왕’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올 2월 생일을 맞아 임한 기자회견에서 “폐하(아버지)가 하신 것처럼 국민에게 항상 다가가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상징으로서 책무를 수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아버지처럼 피해 지역을 위문 방문했다.

나루히토 부부는 외동딸 아이코를 낳았다. 한때 여성도 왕위에 오를 수 있게 왕실전범을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나루히토 이후 왕위 승계 순위는 아키히토 일왕의 차남인 후미히토(53), 그의 아들인 히사히토(13), 아키히토 일왕의 동생 마사히토(85) 순이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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