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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이수준의 부동산수첩] 아파트와 완전 경쟁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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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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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그 역사가 비교적 짧은 학문이다. 경제학의 근본이 되는 행위는 선사시대부터 있어 왔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비한 애덤 스미스가 등장한 지 불과 300년이 되지 않았다.

경제학은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어떤 생명체도, 심지어 식물조차도 각자의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진화해왔다. 시장 참여자들의 이기적 행동들이 모여 합리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시장의 수요 공급이 이미 균형을 이룬 상황에서 수요가 더욱 증가한다면 수요자들의 경쟁으로 인해 가격이 상승하고, 다시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내려가는 원리이다.

완전경쟁시장은 이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단순화한 시장 모델이다. 참여자들이 조건없이 경쟁하여 즉시 가격조정이 일어나는 완전경쟁시장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우선 시장에서 동일한 상품을 생산하는 공급자가 충분히 많아야 하며, 시장에 진입하고 퇴출하는 데 있어 어떠한 걸림돌이 없어야 한다. 또한 상품과 수요에 대한 정보가 수요자, 공급자 모두에게 완벽히 제공되어야 한다.

하나같이 부동산 시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부동산은 항상 걸림돌이 있고 상품은 동일하지 않으며 정보는 불균형하고, 때로는 각자의 신념이 정보를 앞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부동산 시장 역시 가격의 결정은 수요 공급곡선의 접점일 수밖에 없다. 완전 경쟁시장이 아니어서 생기는 문제는 가격의 일시적 왜곡과 얼마간 지체되는 시간일 뿐이다.

최근 분양이 침체된 지방 아파트 시장에 저렴하게 나온 미분양 물량을 두고 시행사 및 할인 매수자, 제값을 낸 수분양자 간의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대구 동구의 300세대 신규 분양 단지가 미분양 물량을 털기 위해 약 1억원 가량 할인 혜택을 제공하자, 기존 분양자들이 서울의 건설사 사옥까지 상경해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 수분양자들은 할인 분양자들에게 관리비를 20% 더 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에 앞서 수성구에는 분양률이 20%에 미치지 못하자 공매로 넘어가서 분양가보다 3억원 이상 낮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는 단지도 있었다. 이에 기존 입주자들은 가압류 등으로 대응하며 신규 입주자를 막기 위해 철조망을 치고 순번을 정해 보초를 서기도 했다.

광주 북구에서는 메이저 브랜드의 1600여세대의 대단지임에도 미분양 물량에 15%까지 할인혜택을 부여했다. 이 단지는 극심한 반발을 미리 예상했기에 기존 수분양들에게도 동일한 금액만큼을 환불해주었다.

서울 반포에서는 래미안 원베일리의 조합원 취소분 1세대를 갖기 위해 3만5000여 명이 청약을 접수했다. 당초 조합원이 계약하지 않아 공급이 취소된 단 하나의 물량이 일반분양 방식으로 공급된 것이다. 해당 아파트의 공급가는 19억5000만원. 그러나 같은 아파트를 40억원에 입주한 다른 소유자들은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3만 5000명이 참여한 대대적인 이벤트를 아파트의 인기가 올라가는 현상으로 즐겼다.

물론 위의 미분양 사례와는 사유도 절차도 다르다. 둘 다 가격표와는 확연히 다른 특수한 거래임에도 하나는 그 자체로서 변동된 시장가격의 발로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가격에 조금도 변동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는 점도 다르다.

부동산은 그 특유의 고정성, 이질성, 부증성으로 여타 재화의 시장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아파트와 같은 생산형 물건은 정보화 시대를 만나서 점차 완전 경쟁 시장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참여자의 수가 많을수록 가격의 왜곡은 줄어든다. 어느 지점에서건 수요와 공급이 만나면 개별 공급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 결정된 가격을 그대로 수용한다. 시장만큼 솔직한 것이 없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다수에게 합리적인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수준 로이에아시아컨설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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