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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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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 헬기 추락사에…이란 “美제재 탓” vs 美 “노후헬기 띄운건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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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 장례에 이란 전역 추모 행렬

이하메네이 후계 구도에 주목도

동아일보

헬기 추락 현장 사진 - 이란 국영방송 SN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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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헬기 추락사를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신경전이 격화하고 있다. 이란 측은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로 대통령까지 노후 헬기를 탈 수 밖에 없었다”며 불만이 가득하다. 미국 정부는 “악천후 속에서 56년 된 노후 헬기를 띄운 것은 이란”이라며 책임론을 반박했다. 또한 라이시 대통령의 죽음에 애도를 표명하면서도 그의 인권 탄압 행적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꼽혔던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하메네이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권력다툼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메네이의 강한 신뢰를 얻고 있는 그의 차남 모즈타바(55), 시아파 고위 성직자 알리레자 아라피(68) 등이 후계자로 거론된다. 이와 별개로 대통령 보궐선거는 다음달 28일 치르기로 했다.

● 이란 “美 제재 탓” … 美 “이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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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당국은 공식 사고 원인을 발표하지 않았다. 다만 20일 국영 IRNA 통신은 라이시 대통령이 탑승한 미국산 ‘벨-212 헬기’의 기술적 고장을 지목했다. 1968년 첫 비행을 했고 1976년 이란에 도입된 노후 기종이다. 1972년 이후 최소 430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 민간인 희생, 주이란 미국대사관 소속 미국인 억류, 핵개발 의혹 등으로 수십 년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의 경제 제재를 받아 왔다.

이란 측이 문제 삼는 부분이 이 대목이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외교장관은 20일 “미국의 제재가 대통령 일행의 순교를 초래했다. 미국의 범죄는 이란 국민의 마음과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오랜 제재로 인해 제대로 된 항공부품을 조달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란은 기껏 구한 항공부품도 대부분 암시장에서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같은 날 “이란 정부가 악천후에 헬기를 띄우기로 결정했다”고 받아쳤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미국이 사고에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동조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란 정권이 이 문제로 미국을 탓하는 것이 놀랍지도 않다”고 꼬집었다.

특히 국무부는 애도 성명에서 라이시 대통령이 정치범 5000여 명 처형, 반정부 시위 탄압 등을 주도한 사실을 거론하며 “그는 손에 많은 피를 묻혔다. 역내 안보 저해 행위에 대한 이란의 책임도 계속 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란 측이 사고 발생 직후 “헬기 수색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물류 문제로 지원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 하메네이 후계자에 ‘차남 유력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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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의 발리-에-아스르 광장에서 열린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애도식에 참석한 여성이 흐느끼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은 아미르 압돌라히안 외무장관 등과 함께 19일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했으며 장례식은 오는 23일 그의 고향인 북동부 마슈하드에서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2024.05.21. 테헤란=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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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시 대통령의 장례는 2박3일 동안 치러진다. 21일 사고 장소와 가까운 타브리즈에서 시작해 시아파 성지(聖地) 쿰, 수도 테헤란 등을 거쳐 23일 그의 고향 마슈하드에 안장된다.

이란 전역에는 추모 움직임이 일고 있다. 테헤란 도심 발리아스르 광장 등에도 추모하려는 시민들로 가득찼다. 특히 검은색 차도르를 입은 채 그의 사진을 들고 울부짖는 여성들도 외신에 다수 포착됐다. 반면 일부 젊은층이나 2022년 9월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의 고향 사케즈 등에서는 그의 죽음을 반기는 모습이 나타났다. 일부는 환호의 의미로 불꽃을 터뜨리고 차량 경적을 울렸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전했다.

이란 안팎의 관심은 절대 권력을 보유한 하메네이의 후계 구도에 쏠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그간 공식 직책이 없었음에도 하메네이의 ‘돈줄’로 꼽히는 국영기업 세타드 등을 관리했던 차남 모즈타바의 존재감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슬람혁명의 이유가 ‘세습왕조 타파’였던 만큼 하메네이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줄 경우 심각한 반발과 권력투쟁이 뒤따를 수 있다. 하메네이는 표면적으로는 지난해 “권력 세습은 반(反)이슬람적”이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경제난 등에 따른 국민 불만이 가속화하면 자신과 지지 세력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세습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성직자 아라피는 모즈타바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낮지만 종교계에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방송은 “하메네이가 라이시 대통령만큼 충성심이 강하면서도, 본인을 드러내지 않는 후계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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