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빌라 떠난 수요, 아파트로…‘예고된 대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주요 변수로 들여다본 전셋값 상승
임대 사업 활성화·다주택 규제 풀어야


“전세 매물이 있어야 가격 예측이라도 하죠. 매물이 나온다 해도, 신규 계약이냐 갱신 계약이냐에 따라 시세가 천차만별이니 전셋값이 어떻게 될지 저희도 도무지 가늠이 안 돼요.” (서울 강동구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전세 매물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1000가구 넘는 대단지에서도 전세 매물이 ‘0건’인 사례가 심심찮게 등장하는가 하면 전세 계약을 두 바퀴(4년) 돈 세입자는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한꺼번에 전세금을 올려줘야 한다며 울상이다. 2020년 7월 말 임대차법 시행 이후 4년이 지난 올 8월부터는 계약 만기가 도래하는 전세가 속출할 예정이라 시장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매경이코노미

임대차 2법으로 계약 연장한 전세 만기일이 다가오면서 전세 시장 혼란이 예고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 전세 매물들이 붙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경이코노미

임대차법에 입주 물량 역대 최저치

1%대 저금리 대출 활용 전세 수요 급증

전문가들은 시장 작동 원리인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번 사태가 ‘예고된 전세난’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뜩이나 매물이 부족한데 입주 물량까지 줄어드는 추세고, 빌라를 떠나 아파트를 찾는 실수요자가 늘면서 전셋값 상승 압력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전세대란을 불러온 핵심 변수를 분석해봤다.

‘예고된 전세난’이라고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전세 공급이 그동안 꾸준히 줄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5월 8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2만9697건으로 3만건을 밑돌았다. 3개월 전(3만4345건)보다 13.6% 감소했고, 1년 전(3만38985건)과 비교하면 23.9% 감소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지난해 4월 4만건대를 유지하다 지난해 5월부터 3만건대로 쪼그라들었다. 이후 점차 전세 물건이 소진되면서 2만9000건대까지 내려왔다.

전세 매물이 감소하는 데는 최근 서울 입주 물량이 급감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올해 서울에는 아파트 2만4139가구가 입주할 전망이다. 3만570가구가 집들이를 한 지난해와 비교해 21% 줄었다. 지난 2월 645가구, 3월 996가구, 4월 815가구 등 최근 3개월 연속 월 입주가 1000가구를 밑돌았다. 게다가 5월에는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아예 없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전세 매물 자체가 적어지면서 앞으로 전셋값이 상승할 거라는 기대감에 전세 매물을 거둬들이는 집주인도 적잖다”고 귀띔했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한, 일명 ‘임대차 2법’도 한몫했다. 2020년 7월 말부터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덕분에 그동안 세입자들은 인상폭이 5%로 제한된 임대료로 최대 4년(2+2년)간 거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4년 동안 전세가 묶이면서 매물 자체가 줄었고, 거주지를 찾는 전세 수요자 입장에서는 전셋집 선택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갱신 계약은 5% 상승에 그친 데 반해 신규 계약 전셋값은 크게 뛰어 이중 가격이 발생하는 부작용도 속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당분간 전셋값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매경이코노미가 부동산 전문가 1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7명은 올 한 해 동안 전세 가격이 적어도 3~5% 오를 것으로 봤다. 5~7% 상승, 7~10% 상승을 내다본 전문가도 1명씩 있다. 전세 가격 상승폭이 1~3%에 그칠 것으로 본 전문가는 2명이고, 하락을 전망한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다.

특히, 오는 8월부터 전세계약갱신권을 행사한 임차인들의 전세 계약 만기(4년)가 돌아오면 전세 시장 불안이 더욱 커질 거라는 전망이다. 기존 임차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전셋집을 찾는 것보다 살던 집에 계속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큰 반면, 집주인은 이번 계약으로 가격 인상폭이 또 제한될 거라는 불안감에 한꺼번에 전셋값을 올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는 “임대주택은 투자자가 주택을 매수해야 공급되는데, 지금은 이 길이 막혀 있는 상황”이라며 “공급이 제한된 상태에서 임대차법 개정 만 4년을 맞아 수요가 늘어나면 올 하반기까진 전셋값 상승 압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또다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 이어 착공·분양이 미뤄지는 사례가 많아 향후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여서다. 부족한 입주 물량 역시 전세 가격에는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는 아파트(주상복합·임대 포함) 1만921가구가 입주를 시작할 전망이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9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1990년부터 2023년까지의 평균 입주 물량인 4만5044가구와 비교해도 약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둔촌주공을 재건축한 1만2032가구 규모 ‘올림픽파크포레온’ 입주가 올 11월로 앞당겨질 가능성은 있지만, 해당 물량을 더하더라도 2만3483가구에 불과하다. 2013년 2만751가구 이후 11년 만의 최저치다. 여기에 지난해 전국 주택 착공 물량은 전년 대비 약 45%, 인허가 물량은 25.5% 줄어든 탓에 수급 불안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주택 매매 시장이 관망세인 가운데, 최근 몇 년간 속출한 빌라 전세사기 여파로 세입자 사이에 아파트 선호 현상이 더욱 강해졌다”며 “올해에 이어 내년 이후에도 입주 물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할 예정이라 전셋값 상승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리가 높으면 수요가 위축될 법도 한데, 전세 시장은 예외일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낮은 이자에 전세자금을 빌려주는 정책 대출로 얼마든지 우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올 1월 말에 나온 신생아특례대출이 대표적이다. 최저 1%대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신생아특례대출은 주택 구매뿐 아니라 전세자금대출로도 활용 가능하다. 이 밖에도 버팀목전세자금대출 등 주택 자금 관련 상품이 많이 나와 있는 상황이다. 기존 전셋집에 살던 사람들은 계약을 갱신하며 대응할 수 있는 셈이다. 올 들어서 체결된 전세 계약 중 갱신 계약만 35%에 달하는데, 지난해와 비교하면 8%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낮은 수준에 유지되면서 전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고, 세입자에게는 조금 더 높은 가격에 전세를 구할 여력이 생겼다”며 당분간 전세 수요가 감소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9호 (2024.05.15~2024.05.21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