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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이란 차기지도자 1순위 사망 … 권력 공백에 내부 혼란 커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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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대통령 사망 ◆

매일경제

19일(현지시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태우고 추락한 헬기가 20일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 산악 지대에서 꼬리 부분만 빼고 완전히 전소된 채 발견됐다. AFP연합뉴스


'이란 2인자'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중동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집권 36년 동안 측근들과 구상해 둔 '후계 시나리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하메네이는 다음 최고지도자로 라이시 대통령을 세우고, 실권은 자신의 둘째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에게 쥐여주려고 했다. '세습' 논란을 피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라이시 대통령 대신 내세울 꼭두각시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어서 혼란이 예상된다. 권력 공백을 틈타 정계나 시민사회 등에서 새로운 인물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고, 체제 안정과 집안 단속을 위해 하메네이가 군사적으로 더욱 강경한 태세를 취할 위험도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일(현지시간)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해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 자리를 세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험난한 길이 열렸다"고 전했다.

모순되는 내용으로 보이지만 이란이 1979년 이슬람 혁명을 통해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왕조를 무너뜨린 공화국에서 하메네이는 사실상 독재를 하고 있지만, '세습'까지 나아간다면 거대한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이슬람 혁명 정신을 숭상하는 성직자들이 반발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최고지도자는 종교적 리더이기 때문에, 성직자들은 하메네이의 지지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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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한 뒤 타브리즈로 돌아오기 위해 헬기에 탑승한 모습.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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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하메네이와 집권 세력들이 구상한 후계 구도가 위기를 맞게 됐다고 분석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하메네이는 라이시 대통령을 후임으로 세우고 모든 결정을 자신의 둘째 아들과 상의에서 하도록 하는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있는데, 예상치 못하게 라이시 대통령이 사망했다"며 "하메네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성직자들에게 읍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에서 최고지도자 선정은 88명으로 구성된 '전문가회의'가 전담한다. 위원 상당수는 80·90대 고령의 성직자다.

최고지도자로 내세울 인물이 없다는 현 상황은 하메네이의 자충수다. 하메네이는 정권 유지에 위협이 되는 인사들을 정치적으로 제거하고 자신의 심복인 라이시 대통령만을 밀었다. 모든 선거에서 출마한 후보의 자격을 심사하는 이란의 헌법수호위원회는 2021년 대선에서 수백 명의 예비 후보를 실격시키고 라이시 당시 후보의 승리를 유력하게 하는 후보 구도로 선거를 진행했다.

하메네이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될 모하마드 모흐베르 부통령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 헌법은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50일 이내 새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흐베르는 12명의 이란 부통령 중 가장 선임이다.

모흐베르는 하메네이의 권력 기반이자 비밀 기업 조직인 세타드(Setad)의 수장을 지내 '하메네이의 자금줄'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세타드는 100조원 이상의 초거대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하메네이 입장에서 꼭두각시로 적합한 인물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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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내부 혼란' 이상의 '권력 투쟁 국면'을 예상하기도 한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라이시 대통령의 유고에 따른 혼란이 중차대한 권력 투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군부 세력이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될 경우 하메네이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역할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혁명수비대는 정규군과 달리 하메네이의 직접 지휘를 받는 조직이다. 안보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정과 정권 유지, 사회 통제 역할을 수행한다.

온건파, 개혁파 정치인들이 부상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지난 3월 이란 총선 이후 온건파·개혁파는 의회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 등 온건파·개혁파 거물들의 경우 정치적 감시를 받고 있다. 장 센터장은 "이란에서 권력 투쟁에 나설 만한 사람을 지금으로서는 찾기가 힘들다"며 "다만 예상되는 권력 공백에 따라 내부적으로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성명을 통해 이날부터 5일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이에 이란 증시는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폐쇄됐고, 모든 문화예술 활동은 7일 동안 중단됐다.

[김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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